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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 문화소통]훈민정음 창제, 천하를 아우르다

등록 2019.03.26 06:02:00수정 2019.04.01 09:5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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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은 중국음 표기를 규정한 ‘훈민정음 언해본(서강대본)’ 14장 뒷면. 오른쪽은 중국 명나라 한자음을 세종의 명에 의해 훈민정음으로써 표기해놓은 ‘홍무정운역훈’ 권9(고려대본) 1장 앞면.

<사진> 왼쪽은 중국음 표기를 규정한 ‘훈민정음 언해본(서강대본)’ 14장 뒷면. 오른쪽은 중국 명나라 한자음을 세종의 명에 의해 훈민정음으로써 표기해놓은 ‘홍무정운역훈’ 권9(고려대본) 1장 앞면.

【서울=뉴시스】 박대종의 ‘문화소통’

2019년 3월 2일 뉴시스 ‘나랏말소리’ 중국과 달라···훈민정음 창제 목적② 편에서 밝힌 것처럼, 세종대왕은 중국과 공용이자 ‘한문 국어’의 주축인 ‘문자(文字)’에 대한 중국과의 어음 불통 문제를 해결하고, 동시에 ‘언문 국어’인 ‘리어(俚語: 우리말)’를 누구나 쉽고 편안하게 표기할 수 있도록 세계 최첨단 표음문자인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다. 

어제훈민정음 첫 문장 “國之語音, 異乎中國, 與文字不相流通, 故愚民有所欲言, 而終不得伸其情者多矣”는 축약된 한문으로 쓰여 있어 현대인들에겐 이해가 어렵다. 생략된 부분들을 집어넣어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의 (이중 국어 토속) 어음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 더불어 (어음 면에서) 서로 물 흐르듯 통하지 아니하기에, 이런 까닭에 (중국 어음이나 이중 국어의 방면에서) 우매한 백성들이 (중국 또는 우리 조정을 향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능히 (말과 글로써) 실어 펴지 못하는 자들이 많으니라.”(박대종 번역)   

세종대왕은 이중 언어를 사용하는 조선의 만백성이 각자 능력과 용도에 맞게 편안히 쓸 수 있도록 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진>의 훈민정음 언해본과 홍무정운역훈에서 증명되는 바와 같이 중국의 어음까지도 모두 적을 수 있도록 안배하였다. 그로써 가히 천하=세계를 아우르는 최첨단 표음문자 ‘정음’을 창제하는 불세출의 대위업을 달성하였다.

그렇다면 훈민정음에 대한 두 가지 창제목적 중, 공용문자에 대한 중국과의 어음불통 문제를 해결하고자 함은 그 결과가 어찌되었을까? ‘홍무정운역훈(洪武正韻譯訓)’ 서문에서 신숙주는 “우리 동방에서 천백년 동안 알지 못하던 것을 열흘도 되지 않아 배울 수 있다”라고 하였다. 또 기초 중국어 학습서인 ‘직해동자습역훈평화(直解童子習譯訓評話)’ 서문에서 성삼문은 “(중국어를) 배우는 자는 진실로 먼저 정음 몇 글자를 배운 다음에 이 책으로 익히면, 열흘쯤이면 중국어를 통할 수 있다”고 하였다. 

정조실록 1783년 음력 7월 18일자 대사헌 홍양호의 상소문 중에 위 결과와 관련된 대목이 나온다. “훈민정음으로써 중국음을 번역해나가면 칼날로 실을 끊어 풀 듯하여, 이로써 글자의 운을 맞추게 되고 성률도 맞아 당시 사대부들은 많은 이가 중국어에 통달하게 되어, 사신으로 가라는 명을 받들거나 중국 황제의 조서를 맞이할 적에 통역관의 혀를 빌리지 않고서도 메아리처럼 중국어음으로써 응답하였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 집필에 참여했던 8명의 학자들 중, 정인지·신숙주·최항 3명은 성종 때까지 살았다. 그래서 훈민정음의 바른 왕맥이 이어졌던 세종~성종 시기엔 많은 조선인들이 훈민정음으로 중국 한자음을 표기한 교습서를 익혀 완벽하게 중국어를 구사했다.

1446년 9월, 훈민정음 해례본이 완성되고 얼마 지나 해례본 중 ‘어제훈민정음’ 편에 대한 언해본이 제작된다. 그 과정에서 세종은 훈민정음 언해본(서강대본) 14장 뒷면에서 15장 뒷면에 걸쳐 중국의 어음을 표기하는 ‘법=기준’을 기술한다. 아설순치후 5음 중에서 어금닛소리, 혓소리, 입술소리, 목구멍소리는 훈민정음 28자 중의 것을 가지고 그대로 쓰면 통한다. 그러나 치음(齒音)의 경우, 중국음에는 우리말과는 다른 치두(齒頭)와 정치(正齒)의 구별이 있으니 치두음은 ‘ㅅ·ㅆ, ㅈ·ㅉ, ㅊ’의 왼쪽 사선을 오른쪽보다 더 길게 쓰고, 정치음은 오른쪽 사선을 왼쪽보다 더 길게 쓰는 자형을 사용하라고 제시하였다.

훈민정음 언해본에 기술된 중국어음 표기 규칙과 그에 맞는 표음문자를 가지고 세종~성종 시기 조선의 많은 이들이 중국어음에 통달했다. 이 놀라운 사실에 대해, 시선을 돌려 오늘날까지도 자국의 소리를 제대로 표현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국인들의 입장에서 역지사지 바라볼 필요가 있다. 세종의 그림은 당시 천하의 중심인 중국도 아울렀다. <계속>

대종언어연구소 소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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