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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갑질과 현장의 눈물, 공무원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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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3-27 10:4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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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뉴시스】위용성 기자 = 작년 가을쯤 공정거래위원회 기자 브리핑실에 '깜짝 손님'이 찾아왔다. '듀얼회전 물걸레청소기'로 유명세를 탔던 제조사 '아너스'의 기술탈취 행위를 적발한 공정위의 브리핑 자리였다. 아너스는 하도급업체 A사의 핵심기술 자료를 빼돌려 다른 하도급업체에 유사 제품을 만들게 하고 다시 이를 가져다 A사에게 들이대면서 납품 단가 인하를 요구했다.

이날의 깜짝 손님은 A사 대표이사 ㄱ씨. 브리핑을 마친 공정위 실무진에 이어 단상에 오른 ㄱ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간의 일들을 전했다. 원청 업체의 단가 인하 요구를 마지못해 들어줬다가 영업이익률은 곤두박질쳤고 15~20명 가량 되던 직원들은 다 회사를 떠났다고 했다. 그는 "말할 수 없이 비참하다"고 했다.

이 사건은 공정위가 ㄱ씨의 '3배 손해배상' 소송을 지원하고 나서 주목받았다. 공정위는 2011년 기술유용 행위에 대해 3배 배상소송제를 도입했는데 이 사례가 첫 케이스였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 ㄱ씨는 결국 아너스와 조용하게 합의를 봤다고 한다. 당시 사건을 맡았던 공정위 관계자는 "3배 소송이라고 해도 3배까지 받는단 보장이 없기 때문에, 또 지난한 소송 과정을 버텨낼 자신이 없기 때문에, 당장 눈앞에 손에 쥘 돈이 있으면 합의를 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과 하도급업체들간 거래에선 불공정거래 행위가 더욱 횡행할 것으로 짐작된다. 하도급 거래 분야의 갑을 관계 개선은 김 위원장이 꼽는 재벌개혁의 핵심축이다. 그중에서도 수급사업자의 기술을 유용하는 행위는 유망 강소기업의 싹을 자른다. 공정위는 기술유용에 대해 3배에서 10배 배상으로 상향을 추진하지만 현장에서 작동될진 의문이다.

이번엔 '94%'라고 하는 조금 뜬금없는 숫자가 있다. 공정위가 지난해 제조·건설·용역 업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무려 9만5000개의 하도급업체의 94%가 지난해보다 하도급 거래관행이 "개선됐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이 조사 결과는 종종 공정위 성과 홍보에도 이용된다.

국무회의에 참석했던 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의 말을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공무원의 보고서상에는 '문제가 없다'고 돼 있는데 실제 현장에선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경우가 있다. 세심히 챙겨달라".

94%의 숫자가 공허하게만 보이는 이유다.

 up@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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