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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안재용 "백야 DVD가 제 삶을 바꿔놓았습니다"

등록 2019.04.19 11:4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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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코 몬테카를로 왕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안재용 ⓒ마스트미디어

안재용 ⓒ마스트미디어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영화 '백야'(1985)에서 주연 '니콜라이'의 11회 연속 회전은 나비처럼 우아하고, 벌처럼 강렬하다. 세계적인 발레리노 미하일 바리시니코프(71)가 니콜라이 역을 맡아 가능했던 동작이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며 1학년 때까지 성형외과 의사를 꿈꾼 안재용(27)의 인생 항로를 바꾼 몸짓이기도 하다. 어릴 때 본 다큐멘터리에서 화상 환자들의 이야기를 보고 '재건성형'을 공부하고 싶었던 그는, 바리시니코프로 인해 '남자무용수의 멋있음'을 깨닫는다. 이후 성형외과 의사와 다른 형식으로 몸을 탐구하기로 진로를 틀었다.

모나코 몬테카를로 왕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안재용은 마스트 미디어를 통한 e-메일 인터뷰에서 "고1때 누나가 제게 '키가 크고 운동도 잘하니 발레를 하면 어울리겠다'고 말했어요. 당시에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죠. 그런 누나가 준 영화 '백야' DVD가 제 삶을 바꿔놓은 거예요"라고 말했다. 누나는 독일에서 오페라 가수로 활동하는 성악가다.

안재용은 '백야'를 본 직후 발레를 시작했다. 고1에서 고2로 넘어가는 시기였다. 당시 집이 부산이어서 2학년 때 부산예고로 전학했다. 3학년 때 다시 서울 선화예고로 전학했다.

17세에 입문한 발레 늦깎이였지만 성악과 오보에뿐 아니라 스노보드, 스피드스케이팅이 취미였던 안재용은 쑥쑥 자라 전국의 날고 긴다는 학생들이 모인다는 한예종 무용원에 진학했다.

안재용의 성공기는 이어진다. 2016년 세계 정상급 발레단인 몬테카를로 왕립발레단에 입단했다. 군무(코르드발레)로 시작한 안재용은 입단 첫해부터 주요 배역들을 잇따라 연기한 뒤 2017년 세컨드 솔로이스트로 승급했다. 이후 예술감독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 감독의 신뢰로 1년 만인 지난해 여름 두 단계를 승급, 수석무용수의 영예를 안았다.
'신데렐라' 안재용 ⓒAlice Blangero·마스트미디어

'신데렐라' 안재용 ⓒAlice Blangero·마스트미디어

안재용은 "감사하게도 입단 직후부터 중요한 배역을 많이 주셨어요. 제 예술세계를 펼칠 기회를 많이 주셨죠. 발레마스터가 제 리허설 태도나 방식을 아주 좋아하셨다고 들었어요"라면서 "한번 지적을 하면, 다음에 완전 고쳐서 올뿐만 아니라 완전히 제 것으로 새롭게 만들어왔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 점이 어필했던 것 같아요"라고 했다.

더구나 이곳은 안재용에게 첫 컴퍼니다. "수석이기는 하지만 저는 아직 어린 무용수에요. 리허설에서 많은 것을 끊임없이 배우고 있죠. 아무래도 제가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부족한 점이 있을 수 있는데, 발레단에서 제게 많은 것을 주고 있어요. 매일매일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14년 만인 6월 12~14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몬테카를로 왕립 발레단의 ‘신데렐라’가 공연하는데, 안재용도 나온다. 전통에서 벗어난 자유로움과 신선함으로 가득한 연출로 호평을 듣는 마이요의 특징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몬테카를로 발레단은 전설적인 발레리노 디아길레프가 1929년 사망하고 해산된 프랑스 발레단 '발레 뤼스'의 뒤를 이어 1932년 창단했다. 이후 분열과 해산의 역사를 거쳐 1985년 발레에 애정을 지닌 모나코의 공주 카롤린에 의해 왕립발레단으로 새출발했다. 마이요는 1993년부터 예술감독 겸 안무가를 맡고 있다. 무엇보다 '네오 클래식'을 선보이는 현대적인 발레단으로 통한다.

한예종 김용걸 교수가 모던발레·네오클래식을 좋아하는 안재용에게 '몬테카를로 발레단이 네게 좋은 옷이 될 것'이라고 추천했고, 그에게 정말 '꼭 맞는 옷'이 됐다. 
'신데렐라' 안재용 ⓒAlice Blangero·마스트미디어

'신데렐라' 안재용 ⓒAlice Blangero·마스트미디어

이번에 내한공연하는 '신데렐라'도 모던하다. 유리구두, 호박마차는 무대에 등장하지 않는다. 무도회장에 도착해 왕자의 시선을 사로잡은 신데렐라는 유리구두를 신는 대신 맨발이다. 극중 계모와 언니들도 나쁜사람들로 보이지 않는다.

'신데렐라'에서 왕자와 아빠를 맡고 있는 안재용은 "공연 당일 어떤 상황이 돼 봐야 알기 때문에 이번 한국 공연에서 어떤 역을 할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고 했다.

다만 "'신데렐라'는 동화적이면서도 현실적이고 또 동화보다도 더 동화 같은 내용이에요. 전처가 죽고 나서 딸을 괴롭히는 건 현실에서도 일어날 법한 일인데, 돌아가셨던 엄마가 요정이 돼 나타나고, 왕자와 결혼하는 것은 동화죠. 이런 것이 공존하는 게 이 작품의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신데렐라'에서는 '발'에 주목해야 한다고 귀띔했다. "모든 것이 발에서 다 이뤄집니다. 동화에서는 유리구두가 이야기의 키 포인트인데, 몬테카를로 버전에서는 '맨발'이 키포인트에요. 신데렐라 발의 금가루가 유리구두를 대체합니다. 무도회 장면에서도 왕자들에게 여자들이 구혼하는데 왕자는 그녀들의 '발'만 봐요. 재미있는 설정"이라고 부연했다.

'한여름밤의 꿈' '잠자는 숲속의 미녀' '로미오와 줄리엣' '백조의 호수' 등이 안재용이 출연한 작품이다. 차이콥스키의 아름다운 선율이 인상적인 '백조의 호수', 마이요 감독 버전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한국에 소개하고 싶은 작품으로 꼽은 안재용은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서 활동도 꼭 하고 싶어요"라고 바랐다.
'신데렐라' 안재용 ⓒAlice Blangero·마스트미디어

'신데렐라' 안재용 ⓒAlice Blangero·마스트미디어

"아직 몬테카를로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는 여기에 최선을 다해서 집중해야 하죠. 하지만 언젠가는 한국에서도 활동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해외 활동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는 "춤출 때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 있게 표현했으면 좋겠어요. 또 춤 외에 음악을 많이 들어야 합니다. 클래식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다른 장르의 음악을 들으면 많은 도움이 됩니다"라고 조언했다.

몬테카를로 발레단에서 최고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동료무용수에게 인정받는 무용수가 되고 싶어요. 진정한 실력과 인품을 갖춰야 가능하기 때문이죠"라고 한다.

발레가 안재용에게 숨겨졌던 표현을 발산하는 통로가 됐듯, 관객들 역시 '자신을 표현하고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자기를 표현하는 방법이 꼭 춤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글을 쓰거나, 노래, 그림 등 아주 여러가지 방법이 있죠."

이처럼 젊은 발레리노는 유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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