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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임영웅 "이 지랄 더는 못하겠다, 다들 하는 소리"···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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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4-24 11:29:15  |  수정 2019-04-24 15:5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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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창단 50주년을 맞은 극단 산울림 임영웅 대표가 23일 오후 서울 서교동 산울림 소극장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9.04.23.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뭐 특별히 복잡하고 어려운 뜻은 없어요. 우리말로 우리의 연극을 할 거니, 극단의 이름이 한자나 외국어가 아닌 순우리말이었으면 했고, '뭔가 세상에 울림을 남길 수 있는 그런 연극을 하면 좋겠다'는 의미로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1969년 연극계에 '고요한 굉음'처럼 번진 울림은 메아리가 돼 돌아왔다. 창단 50주년을 맞이한 극단 산울림은 한국 연극계의 증인이자 버팀목이다.
 
'한국 연극계 대부'인 임영웅(83) 극단 산울림 대표는 "공연을 올렸으면 올린대로, 못 올렸으면 또 그런대로 한 해 한 해가 늘 새롭지요. 연극을 한다는 게 늘 쉽지 않은 길이었습니다"라고 돌아봤다. 얼굴에는 주름이 늘고, 왼손에는 지팡이를 들었지만, 여전히 형형한 눈빛으로 말했다.

방송사 PD와 신문 기자 생활을 한 임 대표는 1955년 '사육신' 연출로 데뷔했다. 1969년 12월 한국일보홀에서 한국연극계에서 전환점으로 통하는 아일랜드 작가 사무엘 베케트(1906~1989)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국내 초연했다. 이 연극을 기점으로 이듬해 극단 산울림이 창단됐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나무 한 그루가 전부인 어느 시골길에서 부질 없이 '고도'라는 인물을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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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 1969년 한국일보 소극장 초연 ⓒ극단 산울림
'사실주의'에 반기를 들며, 인간 인간존재의 부조리성을 보여준 이 부조리극은 공연 개막 1주 전, 베케트의 노벨문학상 수상과 함께 모든 표가 동이 났다.

"베케트에 대해서 정보가 많은 것도 아니었고. 그냥 '고도의 말을 전하는 소년처럼 베케트의 말을 전하는 사람'이 되려고 했어요. 그런데 베케트가 노벨 문학상을 받는 바람에 한국일보 홀이 전석 매진되고, 난리가 난 거죠. 그건 정말 운명이라는 말로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어요."

난해한 내용을 공감 가능한 메시지로 풀어내 작품성을 인정 받은 것은 물론, 약 1500회 동안 22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프랑스 아비뇽 연극제를 비롯한 해외 연극제와 더블린, 폴란드, 일본 등 한국 연극 최초 초청 공연 등의 기록을 써왔다.초연 50주년 기념이자, 국립극단 기획 초청공연의 하나로 5월9일~6월2일 명동예술극장에서 선보인다.

"공연 때마다 대본을 다시 보게 되지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몇 시간씩 배우들 디렉팅도 하고 그랬는데, 올해는 쉽지가 않네요. 뭐 워낙 이 작품을 잘 아는 배우들이라 알아서 잘들 하리라고 믿어요."

오랜 기간 이 연극과 함께 해온 블라디미르 역의 정동환, 에스트라공 역의 안석환, 포조 역의 김명국 등이 나온다. "연출가와 배우의 관계는 서로 믿고 의지하는 거죠. 같이 오래 작업을 한 배우들일수록 그런 믿음이 더 생기는 거고. 자꾸 같이 하다 보면 이 배우는 뭘 잘 하고, 뭐가 부족한지, 어느 정도 알게 돼요. 물론 배우들도 임영웅이라는 연출가에 대해서 기대하는 거랄까, 이런 게 생기고. 그렇게 인연을 이어가면서 서로 발전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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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창단 50주년을 맞은 극단 산울림 임영웅 대표가 23일 오후 서울 서교동 산울림 소극장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뒤에 붙은 사진은 출연 배우들. 2019.04.23. chocrystal@newsis.com
초기 연출과 달라진 것이 있다. 예전에는 인물들로부터 코미디를 끌어내려고 했는데, 요즘에는 인물들에게서 연민을 느낀다.

"기약도 없는데 뭘 저렇게까지 기를 쓰고 기다리나, 하는. 그런데 그게 인생이 아닌가 싶어요. 우습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고. 현대 관객들에게도 그런 느낌을 주면 좋겠어요. 살면서 늘 뭔가를 기다리잖아요. 이 작품이 그렇게 어렵기만 한 건 아닙니다. 처음 읽었을 땐 나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점점 그냥 사람 사는 게 다 이런 모습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게 돼요."

극단 산울림은 한국 연극계에 현대극을 본격적으로 소개했다. 신극의 시대를 끝내고 현대 연극의 막을 올렸다는 평을 받고 있다. 49년간 총 150여편의 번역극과 창작극을 선보였다. '고도를 기다리며' 외에 '위기의 여자'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등이 대표작이다.

하지만 연극 생태계가 척박한 대한민국에서 연극인과 연극 단체가 그저 순탄하기만 할 리는 없다. 임 대표에게는 특히 1980년대에 위기가 찾아왔다. "연극을 계속 해야하나 하는" 고민까지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때 임 대표의 부인인 불문학자 오증자 서울여대 명예교수가 "아예 전용 극장을 짓자"고 제안했다. 임 대표는 "지금 생각해보면 참 대단한 결정이었어요"라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1985년 홍대 앞 임 대표·오 교수 부부의 자택을 허물고 세운 산울림 소극장 건물은 시대의 흐름에 맞춰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지만, '한국 소극장 운동에 이정표'를 세운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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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창단 50주년을 맞은 극단 산울림 임영웅 대표가 23일 오후 서울 서교동 산울림 소극장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9.04.23. chocrystal@newsis.com
"대학로엔 이미 많은 극장들이 있었어요. 그때 우리가 홍대에 살고 있기도 했고. 집과 연습장과 극장, 이걸 한 번에 해결하려다보니 자연스럽게 홍대 앞이 된 거죠. 또 홍대 주변의 독특한 문화적 분위기도 있고. 아내인 오증자 교수가 아예 전용 극장을 짓자고 했죠. 다행히 주변 지인들이 후원도 해주고 해서 1985년에 산울림 소극장이 문을 열 수 있었습니다."
 
지난 60여년 간 새로운 시도와 활발한 활동으로 연극계와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임 대표는 2016년 금관 문화훈장을 받았다. 여든이 훌쩍 넘은 지금도 새로운 작가들을 궁금해하고 있다. "그래서 기회가 되면 또 해보고 싶기도 하고. 그래도 '고도를 기다리며' 만한 작품은 아직 못 만난 거 같아요. 건강 때문에 예전처럼 현장에서 작업하기 어려워진 게 아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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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창단 50주년을 맞은 극단 산울림 임영웅 대표가 장녀 임수진 산울림 극장장과 함께 23일 오후 서울 서교동 산울림 소극장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9.04.23. chocrystal@newsis.com
그러면서 '고도를 기다리며'의 대사를 언급했다. 연극을 하는 사람으로서 참 공감이 된다고 여기는 부분이다.

에스트라공 "이 지랄은 더는 못 하겠다."

블라디미르 "다들 하는 소리지."

연극계의 이러저런 형편에서 초탈, 긍정의 미학으로까지 승화시킨 거장의 외침처럼 들렸다.

한편 극단 산울림은 '고도를 기다리며' 재공연과 함께 창단 50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를 벌인다. 5월 7~25일 마포아트센터 스튜디오Ⅲ에서는 '소극장 산울림과 함께 한 연출가 임영웅 50년의 기록'전이 펼쳐진다.

산울림의 역사를 함께 한 배우, 관계자들이 관객들과 함께 하는 토크 콘서트도 5월 18일, 26일, 6월1일 세 차례 연다.

산울림의 역사는 임 대표의 두 자녀로 이어지고 있다. 장녀 임수진(56)이 극장장, 동생 수현(54)이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임 극장장은 "50년 동안 산울림을 사랑해온 관객들이 이번 공연, 전시, 토크 콘서트에 관심을 갖고 함께 하는 뜻깊은 자리가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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