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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이순신 동상 제작 참여 이진수 옹…해군 '감사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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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4-24 15:41:36
"충무공 동상 보면서 전쟁 끝낼 수 있다는 자신감 들어"
1952년 진해 북원로터리에 제막...광화문보다 16년 빨라
6·25전쟁 국난극복 염원 담아…국민들 놋그릇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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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24일 해군 군수사령부 장병들이 경남 창원 북원로터리 충무공 동상 앞에서 호국정신과 애국정신을 기리며 경례를 하고 있다. 2019.04.24. (사진=해군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김성진 기자 = "우리 손으로 만든 충무공 동상이 진해만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면서 이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국내 첫 충무공 이순신 동상 제작에 참여했던 이진수(95)옹이 67년 전 제막식 당시 기억을 회고했다.

해군 정비창 소속 장병 및 군무원들은 24일 충무공 탄신 제474주년을 나흘 앞두고 국내 최초로 대형 충무공 이순신 동상을 제작했던 이진수 옹에게 67년 만에 감사패를 전달했다.

경남 창원시 진해구 북원로터리에 세워져 있는 충무공 동상은 당시 국내에서 가장 앞선 주물 기술을 보유했던 해군 조함창(현 해군 정비창)이 1951년 11월 제작에 착수해 1952년 4월 제막한 동상으로 대형 충무공 동상의 효시다.

동상의 제작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1월 해군 내부에서 국난극복의 염원을 담아 충무공 이순신 동상을 세우자는 논의로 시작됐다.

마산시장을 중심으로 동상건립기성회가 결성됐고, 전쟁 중이라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장병들과 국민들의 성금을 모았다. 놋그릇 등 기부도 이어졌다.

제작은 당시 대규모 동상을 제작할 수 있었던 유일한 기관인 해군 조함창이 맡았다. 제작 시기는 광화문의 충무공 동상보다 16년이 빨랐고, 높이 482㎝, 너비 140㎝로 만들어져 당시 국내 최대 규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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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해군은 24일 국내 첫 대형 충무공 동상 제작자에 감사패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박정일 금속직장장(4급)을 비롯한 정비창 대원들이 국내 첫 대형 충무공 동상 제작자인 이진수 옹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9.04.24. (사진=해군 제공) photo@newsis.com
임진왜란 발발 360년이 지난 1952년 4월13일 충무공 동상 앞에서 지낸 이 충무공 추모제는 1963년부터 문화축제인 군항제로 바뀌어 오늘날에는 전국 최대 규모의 지역문화관광축제로 자리 잡았다.

동상 제작에 참여했던 이진수 옹은 1949년 해군 조함창에 주물 군속(군무원)으로 임용돼 충무공 동상 제작에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20여 년간 조함창을 지킨 해군 정비분야의 '산 증인'으로 재직 기간 초대 해군 참모총장인 손원일 제독에게 받은 표창장을 비롯해서 20개가 넘은 표창과 상장을 받았다.

그는 "당시 국내에서 4m가 넘는 대형 동상을 만들 수 있는 곳은 해군 조함창 뿐이었다"며 "나를 포함해서 10여 명의 대원들이 4개월 이상 주형을 만들고 쇳물을 부어 동상을 만들었다"고 회고했다.

해군 정비창을 대표해 감사패를 전달한 정비창 박정일 금속직장장은 "주물분야를 담당하는 후배 군무원으로서 '정비창의 기술력이 해군의 전투력'이라는 다짐 아래 정비기술의 발전과 완벽한 정비지원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진수 옹의 차남인 이치관(58) 주무관도 25년째 해군 군수사 정비창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 주무관은 "부친께서는 해군과 정비창의 일원이었다는 점을 항상 자랑스럽게 이야기 했고, 동상에 대한 애정도 자주 표현했다"며 "부친이 자랑스럽고, 해군 정비 군무원 후배로서 맡은 바 직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ksj8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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