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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대첩광장조성터서 진주성 '남문' 추정지 기단석 발굴

등록 2019.04.26 15:4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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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시장 "남문으로 확정될 경우 우선 복원 고려"

【진주=뉴시스】정경규 기자 = 진주성 남문 추정지 기단석 발굴 모습.

【진주=뉴시스】정경규 기자 = 진주성 남문 추정지 기단석 발굴 모습.


【진주=뉴시스】정경규 기자 = 경남 진주시는 26일 진주대첩기념광장조성터에서 진주성 '남문'으로 추정되는 기단석이 발굴됐다고 밝혔다.

시는 이날 조규일 진주시장을 비롯해 한국문물연구원 발굴단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진주대첩광장조성터에 대한 문화재 정밀발굴조사 학술자문회의를 가졌다.

조 시장은 현장방문을 통해 "110m에 달하는 진주외성에 이어 남문지로 추정되는 기단석이 발견된 것은 의미있는 결과다"며 "남문의 의미는 진주성의 상징이자 주된 통과문으로 남문으로 확정될 경우 우선적으로 복원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진주=뉴시스】정경규 기자 = 조규일 경남 진주시장이 26일 진주성 남문 추정지 기단석이 발굴된 진주대첩기념광장을 방문해 현장 관계자들로부터 설명을 듣고있다.

【진주=뉴시스】정경규 기자 = 조규일 경남 진주시장이 26일 진주성 남문 추정지 기단석이 발굴된 진주대첩기념광장을 방문해 현장 관계자들로부터 설명을 듣고있다.


이어 올해 하반기에는 진주외성에 대한 장기적 계획을 세워 복원할 수 있는 청사진을 그릴 계획이다고 덧붙였다.

이날 문화재 발굴조사로 확인된 남문지의 추정 규모는 길이 약 15m, 너비 4m로서 남문 기초부분의 기단석이 일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진주외성 남문은 임진왜란 이후 축조된 것으로 조선후기 외성 남문위치는 기록과 진주성도 등 고지도를 통해 현재의 진주교 북측 사거리로 이어진 도로 일원이 남문지로 추정됐다.

그러나 조선후기에 남문과 신북문을 연결하던 남북도로는 현재의 진주교에서 중앙광장을 연결하는 진주대로와 거의 유사하지만 이 도로는 일제강점기에 철골 구조의 진주교가 건설되면서 자리 잡은 도로이다.

그 이전까지는 1910년대에 놓인 배다리를 이용해 통행했다. 이 배다리의 위치는 기존의 남문과 이어지는 도로로 통했다고 추정 가능한데, 현재의 진주교보다 상류쪽에 위치하고 있다.

배다리와 외성벽이 만나는 지점은 풍화암반 기반층이 남아있어 외성일원에서 가장 안정적인 지반이다. 또한 이곳의 성벽은 지대석과 적심부에 비교적 대형의 석재가 깔려있다. 이것은 고지도에 묘사된 2층의 누각을 가진 남문이 설치되기 위한 기초로 추정된다.

특히 진주대첩광장 경계지점에서 진주외성 추정 남문지의 발견은 오래전부터 찾던 진주시민의 염원으로 남문지가 맞다면 앞으로 진주성 복원 사업 등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시는 문화재 조사결과와 문화재청의 문화재위원회 심의내용을 바탕으로 진주 내성과 연계한 외성 복원 등의 방안이 구체적으로 정해지면 이와 병행해 관련 전문가와 시민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 공감대 형성 후 진주대첩광장 조성방안을 마련해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한편 시는 진주대첩기념광장조성을 위해 지난해 4월부터 시작된 문화재 정밀발굴조사에서 발굴된 유구와 출토유물을 보면 통일신라시대 배수로부터 고려시대 토성, 조선시대 외성까지 각기 다른 형태의  유구가 나왔다.

또 진주성이란 한 공간에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 조선시대까지 여러 시대가 공존하는 역사적 현장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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