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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른용 잔혹동화, 13년만의 재개봉 영화 '판의 미로'

등록 2019.04.30 15:3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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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른용 잔혹동화, 13년만의 재개봉 영화 '판의 미로'

【서울=뉴시스】남정현 기자 = 일상을 살다 보면 매일의 평범한 일상에 고단함을 느낀다. 때로는 이보다 더 무거운 감정이 짓눌러 이를 피해 하루에도 몇 번씩 어딘가로 도망갈 곳을 찾게 된다. 짧게는 수 분 간 담배 연기를 통해 혹은 퇴근 후의 술 한잔이나 영화 한 편을 통해 잠시나마 현실을 벗어나 스스로를 위로한다. 길게는 며칠 동안 일상을 떠난 여행이 될 수도 있을 테다.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는 앞선 일상적 감정보다 훨씬 더 절망적인 전쟁이라는 상황 속, 성인도 아닌 한 아이가 '동화'라는 매개를 통해 절박한 상황을 회피하고자 했던 여행이 영화의 주 얼개를 이룬다. 이를 통해 전쟁의 참혹함과 그 속에서 사람들이 겪게 되는 처절한 심리적 고통을 전한다. 감독은 '판의 미로'를 통해 프랑코 시대, 파시즘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 

'판의 미로'의 배경은 1944년 스페인이다. 내전은 끝났지만 숲으로 숨은 시민군은 파시스트 정권에 계속해서 저항했고, 그들을 진압하기 위해 정부군이 곳곳에 배치된다. ‘오필리아’(아바나 바케로)가 만삭의 엄마 ‘카르멘’(아리아드나 힐)과 함께 새아버지 ‘비달 대위’(세르지 로페즈)가 있는 숲속 기지로 거처를 옮기며 영화는 전개된다.

정부군 소속으로 냉정하고 무서운 비달 대위를 비롯해 모든 것에 낯선 두려움을 느끼던 오필리아는 어느 날 숲속에서 숨겨진 미로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을 '산이고 숲이자 땅'이라 소개하는 기괴한 모습의 요정 '판'(더그 존스)과 만난다. 오필리아를 반갑게 맞이한 판은 그녀가 지하 왕국의 공주 '모안나'이며 보름달이 뜨기 전까지 세 가지 임무를 끝내면 돌아갈 수 있다고 알려주면서 미래를 볼 수 있는 '선택의 책'을 건넨다. 오필리아는 전쟁보다 더 무서운 현실에서 인간 세계를 떠나 지하 왕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임무를 수행하고자 애쓴다.

[리뷰]어른용 잔혹동화, 13년만의 재개봉 영화 '판의 미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동화를 통해 현실의 냉혹함을 비춘다. '판의 미로'는 실제와 동화의 절묘한 조합을 통해 극을 긴장감 있게 밀고 나간다. "공포와 역사적 사실을 결합하는 혼합된 장르를 좋아한다"는 델 토로 감독의 말처럼 '판의 미로'는 스페인 전쟁이라는 역사적 소재에 공포스런 동화와 신화적 구조를 결합해 탄생했다. "모든 동화는 집 혹은 천국으로 돌아오거나 세상에서 방황하는 문제를 마주하는 이야기며 우리는 모두 스스로의 이야기 속에서 방황하는 아이들이다"라면서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만들어내고자 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제작부터 동화라는 장치의 효과를 극대화시키는데 집중했다. 감독은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영화보다 동화책을 더 많이 참고했다. 특히 그림 형제의 동화나 아더 래크함, 에드먼드 둘락, 케이 닐슨의 동화처럼 특색 있는 비주얼로 화제를 모으던 작가들의 삽화를 주로 참고했고, 이런 영향으로 '판의 미로'는 상상으로만 가능했던 모든 것을 스크린에 고스란히 옮겨놓았다.

특히 그 결과물은 CG를 사용하지 않고 특수분장만으로 완성됐다. 판과 괴물들, 벌레들의 모습이 너무 실감나게 표현돼 섬뜩할 정도다. 컴퓨터 그래픽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수공으로 완성한 영화 속 모든 이미지는 한 사람만을 위해 공들여 만들어진 그림책처럼 장면들마다 작품을 향한 제작진의 정성과 소망이 가득 배어 있다. 그만큼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어린 시절의 동화 속 세계로 관객들을 초대하는 영화 속 세트와 독특한 캐릭터다.

캐릭터들의 외형적 특징 자체도 독특하다. 그동안 판타지 영화를 수놓은 여러 캐릭터들은 선과 악의 전형적 모습을 따랐다. '판의 미로'는 기존의 그런 발상을 완전히 뒤집는다. 요정에게 화려함과 아름다운 자태는 찾아 볼 수 없다. 대신 다소 징그러울 수도 있는 외모만 발견할 수 있다. 많은 관객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괴물은 눈을 손에 붙여서 사물을 보는데 다소 기괴하지만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캐릭터다. 그중 압권은 숫양의 뿔과 신비로운 눈에 아름다운 금발을 갖고 있는 ‘판’이다. 이 기이한 모습 탓에 ‘판’의 친절한 모습은 관객들로 하여금 의심의 끈을 끝까지 놓지 못하게 만든다.
세르지 로페즈

세르지 로페즈

'판의 미로'는 판타지 장르지만 기존의 판타지 영화와는 차별화된 영화다. 기존의 판타지가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등 거대한 제작 시스템에 의한 스케일 중심의 판타지였다면, '판의 미로'는 재기 넘치는 아이디어와 그를 실현시켜 줄 수 있는 독특한 표현력으로 전혀 새로운 스타일의 판타지 장르를 만들어 냈다. 이 현실에 기반한 판타지 세계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장르로도 정의 내릴 수 있다. 

'판의 미로'는 개봉 당시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늘 영화제에서는 외면을 당했던 판타지 영화로서는 드물게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출품돼 수작으로 평가 받았기 때문에 언론의 큰 관심을 받았다. 같은 해 스페인 판 아카데미 시상식인 고야상에서 신인여우상, 각본상, 촬영상, 편집상 등 대부분의 상을 휩쓸었다. 제79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촬영상, 미술상, 분장상을 탔다. 전 세계 유수영화제에서 108개 부문에서 후보에 오르고, 103개 부문을 수상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제작은 감독 겸 제작자 알폰소 쿠아론(58)이 맡았다. 그는 찰스 디킨스의 소설을 각색해 만든 귀네스 팰트로(47), 이선 호크(49) 주연의 '위대한 유산',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를 감독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감독에 올랐다. '판의 미로'는 당시 쿠아론과 델 토로 감독의 만남만으로도 기획 단계부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는 지난해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으로 지난해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을 받아 판타지 스릴러의 거장으로 거듭났다.
[리뷰]어른용 잔혹동화, 13년만의 재개봉 영화 '판의 미로'

2006년 개봉 이후 팬들의 사랑에 힘입어 13년 만에 다시 개봉하는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실제와 판타지를 절묘하게 뒤섞어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는 '어른들을 위한 잔혹 동화'는 5월2일 개봉 예정이다. 119분,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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