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종 문화소통]훈민정음 ‘•(속칭 아래아)’ 소리, 아직 전국에 살아있다
<사진> 훈민정음 중성 ‘속칭 아래아’ 소리, 아직 전국에 살아있다. 1904. 8. 9일자 ‘대한매일신보’ 제호는 ‘每’의 음을 ‘매’가 아닌 ‘ㅁㆎ’로 썼다. 창간자인 Bethell은 자기 이름을 ‘ㅂㆎ說’로 썼다.
우리 민족의 말소리는 조상 대대로 전래되어온 유구한 것이다. 세종대왕은 그 무형의 말소리를 훈민정음으로써 유형화하였다. 형체가 있는 글자는 권력에 의해 왜곡되거나 일시적으로 삭제될 수 있어도 무형의 말소리는 민족 구성원 전체를 몰살하지 않는 한 없앨 수 없다. 훈민정음 제1번 기본 중성인 ‘•’는 가장 핵심 글자인데도 후손들에게 잊혀 쓰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에 해당하는 ‘소리’는 지금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에서 여전히 전국에서 발성되고 있다. 순경음 ㅸ 소리가 지금도 경상도 등에서 여전히 발음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날마다 ‘•’ 발음을 하고 있음에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데는 역사적 이유가 있다. 비록 나라에서 그 실상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세종대왕이 물려주신 훈민정음 해례본과 일제 때까지 썼던 자료들 및 각자의 발성을 근거로 하여 알아낼 수 있다. ‘사람’과 ‘사랑’, 그리고 ‘바람’을 발성하며 자기 입모양을 주시해보자.
‘사람’의 ‘사’는 입이 많이 벌어지는 반면, 그 뒤의 ‘람’은 앞의 ‘사’에 비해 입이 덜 벌어진다. 그 ‘람’의 ‘ㅏ’가 ‘•’이다. ‘사랑’의 경우는 ‘사람’과 반대다. 뒤의 ‘랑’ 소리가 앞의 ‘사’에 비해 입이 더 크게 벌어진다. 그래서 조상들은 앞의 ‘사’를 ‘ㅏ’가 아닌 ‘•’로 구별하여 표기했다. ‘사람’이나 ‘사랑’과는 달리 ‘바람’의 경우 ‘바’와 ‘람’ 둘 다 입이 덜 벌어진다. 그러니 ‘바람’은 두 글자 모두 ‘•’를 쓰는 것이 올바른 훈민정음 식 표기다.
훈민정음 해례본에서는 “ㅏ與•同而口張”이라 하여 발음 시 입의 벌어짐 정도, 즉 개구도(開口度)로써 ‘ㅏ’와 ‘•’의 차이점을 정밀하게 설명하였다. 구체적으로, 입 벌어짐 정도의 4단계 ‘개모음, 반개모음, 반폐모음, 폐모음’ 중에서 ‘ㅏ’는 ‘개모음’이고, ‘•’는 ‘ㅗ’와 같은 ‘반폐모음’이다. 모음 발음 시 혀의 위치 정도로써 말하자면, ‘ㅏ’는 ‘중설모음’이고, ‘•’는 ‘후설모음’이다. 7단계 혀의 높낮이 정도로써 말하면, ‘ㅏ’는 ‘근저모음’이고, ‘•’는 ‘중고모음’이다. 자기 발음들을 비교 관찰하여 그 차이점에 대해 감을 잡기만 하면, 훈민정음 1번 중성 ‘•’와 5번 중성 ‘ㅏ’를 구별하여 표기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세종대왕이 ‘위→하늘’을 뜻하는 ‘•’가 들어있는 ‘天(천)’의 고전에서 취한 ‘•’자는 창제 이후 지금까지 3대 수난을 당해 왔다. 첫 번째는 조선 중종 때 최세진이 ‘훈몽자회’(1527)에서 ‘•’의 모음 서열을 맨 위에서 가장 아래로 강등시켜버린 일이다. 그 후 사람들은 ‘대한문전’(1909)부터 지금까지 최세진을 섭정으로 모시고 ‘•’를 ‘아래아’로 부르고 있다.
두 번째 수난은 일제 치하 시 조선총독부에 의해 1912년 4월부터 ‘•’자가 폐지된 일이다. 조선총독부는 공권력으로써 ‘•’와 연계된 모음인 ‘ㆎ’ 자도 함께 쓰지 못하도록 대못을 박았다. <사진>에서처럼 1904년 8월 9일자 ‘대한매일신보’에선 오늘날과 달리 ‘매(每)’를 ‘ㅁㆎ’로 썼다. ㅏ와 •의 차이가 입의 벌어지는 정도에 있음을 알면, ㅐ와 ㆎ의 차이도 저절로 알 수 있다. ‘대(大)’는 입을 크게 벌려 발음하고, ‘ㅁㆎ(每)’는 그보다 입을 작게 벌린다.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영국인 Bethell은 <사진>에서처럼 자기 이름을 훈민정음을 섞어 ‘ㅂㆎ說’이라고 썼다. ‘ㆎ’자가 복원되어야, ①ㆎ→[e], ②ㅔ→[ε], ③ㅐ→[æ]의 관계가 명료해져 세 유사모음들의 외국어 표기 체계 등이 제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세 번째 수난은 지금 우리들에 의한 핍박이다. 본 기사에서도 입증되듯 현용 키보드에서는 ‘•’와 ‘ㆎ’가 포함된 글자들을 칠 수 없다. 일제가 그런 만행을 저질렀더라도 광복하자마자 복원했어야 마땅한 일인데 아직까지도 복원치 않고 있으니, 지금은 우리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 ‘•’는 이 세상에 태어난 유형의 생명체로서, 겉으로만 세종대왕을 위하고 실제로는 조선총독부의 ‘언문철자법’ 정책을 충실히 이행하는 우리에게 매우 서운해 할 것이다. 훈민정음의 핵심인 하늘 ‘•’를 복원치 않고서는 민족정기의 복원과 세계화는 헛구호일 뿐이다.
대종언어연구소 소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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