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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박상현 "충분히 애도되지 못한 슬픔, 더 알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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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5-10 11:16:24
세월호 참사 연극 '명왕성에서' 작·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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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 연출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언어의 문제가 너무 뜨거우니까, 극장에서 폭탄 같을 수 있어요. 제 언어가 아니고, 자료의 언어이고 아픔을 겪은 체험자의 언어이죠. 이 언어가 가진 폭발성, 뜨거움을 식힐 수가 없으니 고민이 많았습니다."

약속을 지킨 것 만으로도 대단한데, 연출가 겸 극작가 박상현(57·한예종 연극원 교수)은 끝까지 조심스러워했다.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와 극단 코끼리만보가 15~26일 공연하는 연극 '명왕성에서'는 박 연출이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한 약속을 지키는 작품이다.
 
2014년 12월22일 대학로 소극장 예술공간 서울에서 연극미래행동네트워크와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가 마련한 연극인 간담회 '4·16 사랑의 약속'에서 출발했다. 이 자리에서 유가족들에게 세월호 참사를 다룬 작품을 무대에 올리겠다고 한 박 연출가는 세월호 참사 5주기를 갓 지나 공연하는 '명왕성에서'가 바로 그 약속의 이행이라는 점을 분명히했다.

 "작품의 언어는 그분들의 말에서 왔고, 무대의 정서는 그분들의 한숨과 눈물에서 왔어요. 이 작품은 세월호를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한 만남의 방식을 시도한 작품입니다"라고 소개했다.

세월호 참사를 비유나 배경으로 삼지 않는다. 사건 자체와 희생자들의 시간을 전면에 내세운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여러 기록물이 바탕이다. 416기억교실과 안산 하늘공원에 놓인 희생자의 부모, 형제, 친구, 선후배가 남긴 편지와 메모 등을 연극으로 재가공했다.

그 만큼 언어가 뜨겁다. 자칫 누군가에는 상처를 줄 수 있는 비수가 숨겨져 있을 수도 있다. 박 연출은 "길길이 날뛰는 사자의 목에 목줄을 걸어서 꽉 잡고 있는 심정"이라고 털어놓았다. "목줄을 잡고 있는 사람이 다치지 않겠다고 사자 대신 고양이를 쓸 수 없는 연극이에요. 언어가 가진 무서움을 잘 알고 감당해내야죠. 그 사자, 즉 언어들을 배우들이 토해내야 해서 더 힘든데 새삼 배우들의 위대함을 깨닫고 있어요."

강봉성, 강연주, 김문식, 김솔, 김은정 등 작품에 출연하는 19명의 배우들은 연습실에서 감정 조절에 애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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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뉴시스】변재훈 기자 = 세월호 참사 5주기인 16일 오후 전남 목포시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 선체를 보려는 추모객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2019.04.16.wisdom21@newsis.com
박 연출은 유가족에게 기록물을 사용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음에도, 죄송한 마음이 크다. "적정 수준의 임계치는 넘지 않으려고 해요. 배우들에게 감정을 응축하고 고양하되, 분출하지 말라고 해요"라고 전했다.

최근 '악질경찰' '생일' 등의 영화도 세월호 참사를 다뤘다. 그런데 영화 상영관은 영상을 통해야 하므로 감정이 다른 식으로 흡수돼 관객에게 전달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연극 공연장은 결이 다르다. 무대 위 배우의 감정이 다른 식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관객에게 오롯하게 전해진다. 실제 언어를 무대로 옮긴 '명왕성에서'는 그 파급력이 더 크다. 세월호 사고 당시의 증언과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성 작품이다.

손원정 드라마터그는 "아직 사라지지 않은 기억을 극장으로 소환한다. 남겨진 말들이 배우의 입과 말을 통해 재현될 때 망각과 기억이 가깝게 붙어 있는지, '잊으라'는 말이 거꾸로 '잊을 수 없어'라는 말인지에 대해 관객과 함께 감각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박 연출은 "세월호 참사로 세상을 뜬 학생의 어머니, 친구의 언어는 다르지만 '미안함' '보고싶음' '만지고 싶음' '냄새를 맡고 싶음' 등의 심정 표현이라는 것은 같아요"라면서 "너무 보고 싶은데, 요즘에는 꿈에 나오지 않는다는 말이 가장 슬펐어요"라고 했다.

1992년 윤정선 작 '해질녘'을 각색·연출하며 연극계에 발을 들인 박 연출은 1998년 희곡 '사천일의 밤'을 발표하며 극작가로도 데뷔했다. '사이코패스'(2012), '치정'(2015) 등 사회의 치부와 허위의식을 드러내는 작품을 제작해왔다.

서강대에서 신문방송학을 공부하며 연극반에 몸 담았다. 졸업 후 기업체 등에서 8년 간 직장생활을 한 박 연출은 "더 늦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심정으로 비교적 늦은 나이인 서른셋에 본격적으로 연극을 시작했다. 덕분인지 특정 사안에 다른 시각과 균형감각을 갖출 수 있게 됐다.

여전히 연극이 너무 좋다는 그는 연극계 현안으로 '상대적 박탈감'을 꼽았다. "배우 출연료가 10년 전과 똑같아요. 여전히 연극인들은 연극만 전업으로 하면서 살기는 힘들죠."

그럼에도 연극을 통해 희망을 보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야기를 무대에서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월호 참사 이야기는 그만해도 되지 않느냐는 지적도 물론 있다. 박 연출은 동의하지 않는다.

 "제주 4·3, 광주 5·18처럼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것이 있잖아요. '충분히 애도되지 못한 슬픔'이니 더 알아야 하죠. 충분히 애도한 뒤 기억과 기록의 영역으로 넘겨져야죠. 지금 그만하라고 하기에는, 무엇을 충분히 하지 않았어요."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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