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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황석희 "수명짧은 신조어, 그대로 번역에 쓸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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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5-20 06:01:00  |  수정 2019-05-20 14:18:00
영화 '데드풀' '보헤미안 랩소디' 번역가
'썸씽로튼' 내한공연으로 첫 뮤지컬 자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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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희 ⓒ엠트리뮤직·에스앤코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번역가 황석희(40)씨는 '좋은 번역가'의 자질을 사회학과 인문학에서 찾게 한다. 서로 다른 문화의 징검다리 역을 해야 하니, 사회·인문학적인 공부는 당연하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무조건 많이 보고 읽는 수밖에 없어요. 프랜차이즈 영화는 세계관이 방대하니, 계속 파고들어야 하죠. 사실 관계가 틀리면 관객들이 귀신 같이 알아보거든요. 한국 관객이 무엇을 원하고 있고,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계속 파악하는 것이 중요해요. 되도록이면 모든 인터넷 커뮤니티에 들어가 보려고 노력하는 이유죠. 무엇이 화두이고, 불만인지 계속 느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는 현시점 가장 유명한 번역가다. '데드풀' '서치' '보헤미안 랩소디' '스파이더맨: 홈커밍' 등의 영화 자막이 그의 작품이다.

처음으로 뮤지컬 내한공연 번역 작업도 하고 있다. 엠트리뮤직과 에스앤코가 6월 9~30일 흥인동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펼치는 뮤지컬 '썸씽로튼' 첫 내한무대다.

'썸씽로튼'은 2015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최신작이다. 월트 디즈니에서 애니메이션 작가로 일한 커리 커크패트릭과 그래미어워즈 수상자인 웨인 커크패트릭 형제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셰익스피어의 르네상스 시대가 1930년대 브로드웨이와 비슷했다면?'이 전제다. '셰익스피어가 사실은 허세 쩌는 록스타 같았다면?' '뮤지컬의 탄생이 노스트라다무스에 의해 예언됐다면?' 등의 기발한 상상력이 더해졌다.

"연극, 뮤지컬 커뮤니티는 다 들락날락하고 있어요.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지, 화두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거죠. 그 언어를 그대로 자막에 쓰는 것이 아닙니다. 수명이 짧은 언어일 수 있죠. 다만 현재 사용하는 언어의 뉘앙스를 알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번역 작업에서 큰 차이가 나거든요."

소문난 '뮤덕'(뮤지컬 마니아)들 사이에 이슈가 무엇인지 귀담아 들어야한다. "니즈를 파악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썸씽로튼'에서 중요한 중세 유럽의 사실, 인물배경 조사도 병행하고 있지요."

영어교육과를 졸업한 황 번역가는 2006년 미국 심리상담 토크쇼 '닥터 필 쇼'를 우리말로 옮기면서 번역 일을 시작했다. 버라이어티쇼, 다큐멘터리, 드라마 번역을 거쳐 영화 번역가로 자리매김했다.

 요즘 쓰고 있는 생기 넘치는 언어를 자막으로 옮겨 생생함을 더한 '데드풀'로 주목 받았지만 액션, 스릴러, 드라마 등 장르 구분 없이 참여하고 있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시즌1~3) '밴드 오브 브라더스' '뉴스룸' 그리고 박찬욱 감독의 영국 BBC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의 감독판도 최근 작업했다. '시카리오' '스포트라이트' '웜 바디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등 영화에서는 장르가 더 다양하다.

임재범, 박효신 등과 작업한 음반 프로듀서 겸 작곡가인 신재홍 엠트리뮤직 대표가 '썸씽로튼' 제작자로 나섰다. 신 대표는 신드롬을 일으킨 음악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본 뒤 황 번역가에게 러브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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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썸씽로튼' ⓒ클립서비스
"신 대표님이 '썸씽로튼'에 기존의 뮤지컬과 다르게 접근하고 싶다며 연락하셨어요. '보헤미안 랩소디'를 감명 깊게 봤는데 가사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원래 코미디물에서 유명했다는 것을 전해 들은 뒤 '신기하다'며 같이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하셨죠. 제가 능력이 될까 걱정을 했는데, 관심이 있던 분야라 받아들였습니다."

뮤지컬을 많이 보지는 못했다고 하나 '캣츠'와 '라이온킹' '시카고' 내한공연, '킹키부츠' 라이선스 공연 등 볼만한 작품들은 다 섭렵했다. 영화와 가장 달랐던 점은 배우마다 노래, 대사의 호흡이 달라 이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미 있는 지점이기도 하고, 위험한 지점이기도 하죠. 그래서 리허설을 보고 또 다듬어야 하죠. 어렵기도 하지만 다른 장르에 비해 더 생생한 느낌을 담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코미디 뮤지컬의 정수로 통하는 '썸씽로튼'은 수많은 뮤지컬과 함께 특히 셰익스피어 작품의 패러디가 녹아 들어간다. 하지만 희극은 다른 문화권에서는 자칫 코드가 통하지 않을 수 있다. 언어 유희, 유머 코드는 해당 문화권만의 특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 대사가 많이 나와 유쾌하면서도 고급스러워요. 라임을 맞추는 것은 쉽지 않은데, 굉장히 괴로워하면서도 재미있어 하고 있습니다. 도전이 되는 것은 성취할 때 만족감이 크잖아요."

노래로 극의 이야기를 응축하고, 정서를 확산하는 뮤지컬에서 가사는 정말 중요하다. 음악적 감각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아마추어 밴드 '수색사운드'에서 활동하는 황 번역가는 워너뮤직 코리아가 발매하는 음반, 뮤직비디오 가사도 번역하고 있다. 뮤즈, 브루노 마스 등이다. 가사를 번역할 때, 라임을 맞추는 것은 이미 익숙하다는 얘기다. "'썸씽로튼'의 스코어는 로큰롤처럼 거의 다 흥겨워요. 유머러스한 가사인데, 셰익스피어의 문장이니 새롭고 즐거운 부분도 있죠."

뮤지컬 내한공연의 자막은 다른 장르와 달리 더 어렵다는 평이 많다. 자막이 스크린 위에 새겨지는 영화와 달리, 뮤지컬은 자막 스크린이 공연장 곳곳에 분산된다. 배우와 자막을 번갈아봐야 하는 수고가 따른다.

"'라이온킹' 내한공연을 봤는데, 좋은 좌석임에도 자막이 보기 힘들 때가 있더라고요. 한 화면에 가장 많이 쓸 수 있는 글자수가 공간을 포함해 몇 자인지, 자막을 몇 줄로 나눠 쓰는지 등에 대해 계속 고민했어요. 영화보다는 호흡을 길게 봐야 할 것 같더라고요."

황 번역가는 자막에 다양한 시도를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스파이더맨: 홈커밍' 자막의 주먹 이모지가 등장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국내 개봉영화 사상 유례 없는 일이었다. 앞서 뮤지컬 '시스터액트' 등에 이모지가 여러번 사용되는 등 뮤지컬 작업은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황 번역가의 감각이 기대를 모으는 이유다. 그런데 황 번역가는 신중하다.

"뮤지컬은 첫 번역을 하는 입장에서 보수적일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스파이더맨: 홈커밍' 이모지는 제가 임의로 자막 연출을 한 것이 아니에요. 화면에 나왔기 때문에 제가 쓴 거죠. 화면에 없고 감독이 의도하지 않았는데, 자막에 제가 이용하는 것은 월권이 될 수 있거든요. 물론 뮤지컬은 영화보다 자유롭게 많이 도전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썸씽로튼'은 그런 작품이 아닌 것 같습니다. 내용, 말맛을 통해 재미를 주는 작품이니 원작 자체에 충실해야죠."

황 번역가가 작품을 고르는 기준은 따로 없다. 의뢰를 받는 순서대로다. 이름값이 있으니, 작품을 고를 법도 한데 자신의 기준에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 순서대로 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물리적인 시간 때문에, 욕심나는 대형 영화의 번역 작업을 정중하게 거절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생긴다. 케이블채널 번역을 시작으로 자신에게 일을 맡기고 알아봐준 이들에 대한 의리와 감사의 표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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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썸씽로튼' ⓒ클립서비스
 
번역가로서는 전례가 없을 정도로, 전방위로 번역가의 길을 개척하고 있는 황 번역가는 책 번역 등 다양한 일을 벌이고 있고 벌일 계획이다. "다 잘할 수는 없겠지만, 가지 않은 길을 처음 갔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라며 웃었다. 무엇보다 "다른 번역가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무명의 포크가수가 주인공으로 음악과 삶에 대해 통찰한 영화 '인사이드 르윈'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새롭지는 않지만 결코 나이 들지 않는 게 있다면 그건 바로 포크송일 것이다.' 역시 황 번역가가 번역한 영화다.

황 번역가에게 이런 말을 되돌려주고 싶다. '새롭지는 않지만 결코 진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번역'이리라고.

황 번역가는 좋은 번역에 대해 여전히 고민 중이고 앞으로 계속 고민할 것이라고 했다. '좋은 번역'에 대한 생각도 예전과 달라졌다. "번역가마다 생각이 달라 조심스럽지만, '좋은 번역'은 결국 원작자의 의도를 잘 전달하는 것"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번역가의 개입도를 훨씬 더 높게 봤어요. 개입을 하더라도, 관객에게 잘 전달하는 것이 좋은 번역이라고 생각했어요. 창작자 쪽에 가 있다는 생각이죠. 한 때는 혈기에 제 번역에 딴죽을 거는 관객과 싸우기도 했죠. 이제 그보다 원작자의 의도를 충실히 파악하는 사람이 좋은 번역가라고 생각해요. 숨겨놓은 뉘앙스와 의미를 잘 찾아서 고스란히 옮겨주는 거죠."

무엇보다 "원작자와 관객을 배신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이제는 제 번역을 보면, 항상 아쉬움이 남아요. 어떤 작품을 잘 번역했다고 말하는 것도 머뭇거리게 되죠. 겸손보다 겁이 많아진다고 할까요? 더 신중해지고 더 노력하고 더 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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