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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기본소득형 사회복지체계‘를 상상하고 중장기적인 로드맵을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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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5-22 17:47:04  |  수정 2019-05-22 17:4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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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자치구에서는 출산장려금을 아이를 하나 더 낳을 때마다 20만원에서, 100만원, 200만원으로 증액해서 지급한다. 인근에 있는 자치구에서는 둘째부터 20만원을 지급한다. 또 다른 복지를 보자. 어느 한 구청에서는 선도적으로 ‘어르신 공로수당’을 지역상품권 형태로 월 10만원씩 연 120만원을 지급한다. 인근 구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이를 받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한 아파트인데 어느 동 주민은 120만원을 받고, 인근 다른 동 주민은 하나도 못 받는 상황이 나타나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것은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무상급식을 일부 시도에서 하다가 전국화 됐듯이 일부 구에서 선도적으로 시행하고 다른 구에서 따라감으로써 ‘보편’적으로 시행하게 되는 과도기적 현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같은 정당 소속이고, 또 차이를 보이는 자치구들이 모두 같은 정당 소속인 경우에는 더욱 미묘한 반감을 지역주민들 사이에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확대되고 있는 복지에 대해 보수적 입장에서는 ‘현금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면서 폐지를 주장하기도 한다. 어떤 형태로든 조정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어떤 이는 중앙정부가 현금복지 배분의 큰 틀을 담당하고 지자체는 그것을 지역에 적용하는 수준에서 맞춤형 편차를 보이는 정도로 하자는 주장도 제기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정면으로 고민을 해야 할 때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현재 한국에서 사회복지가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는 객관적으로 복지제도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관적으로도 국민들이 대단히 높은 평등주의적 기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복지 눈높이가 그만큼 높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을 상대로 득표 경쟁을 하는 선거가 있게 되면 다종다양한 사회복지 확대정책이 공약으로 출현한다. 전국선거에서도 그러하고 지방자치 선거에서도 예외는 없다. 이런 흐름 속에서 기존의 복지형태 외에 최근에는전면적인 기본소득(Basic Income)이 아니더라도 낮은 수준의 기본소득형 복지공약이 제시되고, 부분적으로 도입되고 있다. 성남, 서울, 경기 등에서 도입된 청년수당 같은 것을 연상하면 될 것이다(서울시교육청에서도 '학교밖 청소년 수당'을 제안한 바 있다). 이런 변화는 국민들의 복지 부족에 따른 불만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당연히 환영할 만한 일이다.  

사실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평등에 대한 지향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지만, 민주주의라는 한 구성요소인 선거 자체가 다수 국민들의 지지를 획득하고자 하는 경쟁과정이므로 이전에 시행하지 못했던 복지공약이 확대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작년에 '보편' 복지를 반대하던 자유한국당에서 아동수당을 더불어민주당보다 더 확대하자고 주장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확대과정이 총체적이고 중·장기적인 플랜없이 후보자의 주관적 판단과 경쟁에 따라 이루어지거나, 중첩적이고 파편적인 복지의 확대과정으로 진행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본소득형 복지도 초기 단계이고, 더구나 지금은 기존복지의 절대적인 결여상태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으나, 잘못하면 전통적 복지는 복지대로 확대되고, 기본소득은 새롭게 여러 지자체에서 다종다양한 형태로 도입되는 짬봉형이 될 가능성이 있다(예컨대 전통적 복지의 영역도 노인 목욕 및 이·미용료, 장수수당, 다독지원금, 임산부 교통비, 난임 부부 한약값 등 다양한 명목으로 확대되고 있다). 원래 기본소득의 도입은 전통적 복지가 갖는 ‘전달’ 비용의 과다를 개선하기 위한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기존 복지체계의 재구성 위에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가능성도 크다. 당연히 전통형 복지와 새로운 기복소득형 복지 간의 체계성이나 연계성, 중·장기적인 종합성도 부족하다.
 
이런 점에서 '수요자'인 국민의 삶의 과정, 생애주기 전체를 총체적으로 보면서, 전통적인 복지와 미래형 기본소득형 복지를 종합한 미래지향적 ‘기본소득형 복지체계’를 새롭게 상상하고 중·장기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기본소득형 사회복지체계의 중장기적 재설계'라는 것이 추상적이라고 느껴질 수 있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4년여의 교육감직을 수행하면서 느끼는 것 중의 하나는 '교육복지'도 '기본소득형 복지'라는 관점에서 총체적으로 재설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현재 저소득층의 아이들의 교육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서 다양한 종류의 교육복지 지원이 확대되고 있다. 예컨대 교과서 지원, 방과 후 학교 지원(바우처 형태), 컴퓨터와 통신비 지원(시도별로 좀 다르기는 하다), 최근에 확대되는 교복 지원, 수학여행비 지원까지 이루어지고 있다. 이 교육복지의 전달을 위해 지역사회전문가, 사회복지사 등의 지원인력이 있다. '태어난 집은 달라도 배우는 교육은 같아야' 하고, 어려운 집의 아이들도 아무런 결핍 없이 우리사회의 인재로 자라날 수 있도록 하는 총체적인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그동안 교육복지에 많은 진전이 이루어져 온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이와 관련된 지원프로그램들이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에 이루어지는 것은 물론, 여성가족부와 보건복지부, 문화체육관광부 등에서 지원프로그램이 가동된다. 최근에는 지방자치단체의 지원도 확대되어 서울의 경우 시는 물론 구청에서도 다양한 지원과 프로그램이 존재한다. 그런데 문제는 다 프로그램 별로 준다. 그래서 이런 프로그램들이 내려오는 학교에서는 그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저소득층 아이들을 모으기도 어려울 경우조차 있다. 모집과정에서의 '낙인'효과를 피하기 위해 신경을 쓰다보면 더욱 어렵게 된다. 그래서 교육기본소득 개념은 이런 여러 프로그램들을 통해 지원되는 돈을 한번에 '통으로' 아이들에게 주자는 것이다. 이 돈이 가족의 생활비로 그냥 사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선 우리 공동체를 대신해 사회적 아버지(social father)나 사회적 어머니(social mother) 역할을 할 사람을 정해 가족들과 상의한 뒤 아이들의 교육에 관한 한은 최고의 공익적 결정을 하도록 하면 된다. 이렇게 되면 일정 측면에서 가정의 역할을 사회가 담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아마 이런 식이 되면 퇴직자들의 일자리 창출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일부에서는 복지과잉을 염려하고 기본소득을 급진적이라고 생각해서 비판하기도 하지만, 불원간에 불가피하게 기본소득형 복지가 창출되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 이른바 제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로봇의 시대는 절대적으로 '노동절약적' 과정으로 이루어지게 되어 있고, 로봇이 인간의 노동력을 급속하게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산업용 로봇이 매년 15%씩 늘어날 정도로 도입 속도가 빠르고, '2030년에는 국내 일자리의 25%가 자동화로 대체될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을 정도이다. 그 결과 만성적인 실업, 고용불안정, 조기퇴직, 소득양극화,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상존하게 되어 있다. 특히 젊은이를 포함해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불안정과 불평등에 노출될 것이고, 이는 정치사회적 불안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이런 상황에서 핀란드, 캐나다 온타리오주 등에서 초보적인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유권자의 사회경제적 삶의 불안정에 대응해 지지를 얻기 위한 노력이 이어질 것이다. 한국 국민들의 '높은 평등주의적 기대'를 전제로 할 때, 한국에서도 기본소득의 도입은 불가피하게 보이며, 오히려 한국에서 러시를 이룰 가능성도 크다. 통상 신자유주의는 기존의 복지(welfare)를 워크페어(workfare)로 전환하는 것인데, 정작 인공지능시대에 노동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공장 외부의’ 다양한 시민적 존재들에게 기본소득형 복지가 제공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 수 없다고 판단한다.

다행히 우리 사회는 서구처럼 '복지병'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일부에서 이념적으로 비판을 제기하기도 하지만-복지 과잉문제가 제기되는 상태는 아니다. 그런 점에서 서구 복지사회의 시행착오를 줄이고 '사각지대'를 없애는 방향에서의 기본소득 도입을 전제로 하면서, 향후 확장될 복지체계를 중·장기적으로 재설계하는 방향을 찾아보았으면 한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프로그램형 복지를 과감하게 통·폐합하고 금액을 증액해서-전달비용을 과감하게 줄이면서-기본소득형으로 나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성공한다면, 서구의 과거 시행착오를 밟지 않으면서 서구도 가보지 못한 미래형 기본소득을 포함하는 종합적인 선도모델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이를 위해서 국민적인 중·장기 복지설계위원회 같은 것을 만들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거기에 사회복지학자, 경제학자, 기본소득론자들로 팀을 구성하여, 하나의 정부 기간에만 한정되지 않는 중장기적인 연구과 모델 개발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이 바로 여야의 경계를 뛰어넘는 우리 사회의 새로운 국가개혁의제가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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