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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전준혁 "가수 공연처럼 발레를 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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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6-07 06:07:00  |  수정 2019-06-07 08:56:45
영국 로열발레단 유일한 한국인 발레리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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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준혁
【런던=뉴시스】이재훈 기자 = 영락없는 영국 신사다. 늘씬한 몸과 여유 있는 동작, 무대 위 우아함 그대로였다.

 세계 최정상급 영국 로열 발레단의 유일한 한국인 발레리노 전준혁(21)이다.

2일 오전(현지시간) 런던 중심가 코벤트가든 역 앞에서 여름의 바다를 닮은 파란 수트를 입고 "오랜만이네요!"라며 악수를 건네는 그는 한국에서보다 더 커보였다.

전준혁은 "학생 때는 여유가 없었어요. 지금은 우선순위가 분명하거든요. 순서에 맞게 할 일을 찾는다고 해야 할까요. 여유가 생기 것 같습니다"며 미소 지었다. 발레단 단원증을 내밀자 할인 혜택이 주어진 카페에서 따듯한 커피를 소중하게 홀짝이며 그가 말했다.

로열발레단은 코벤트가든역 바로 옆 로열오페라하우스의 상주단체다. 프랑스의 파리오페라발레단, 미국의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와 함께 세계 3대 발레단으로 통한다. 연간 150회 공연을 하는데, 모두 매진이다. 작품 리뷰에서 비판을 찾아볼 수 없다.

전준혁은 이 발레단 바로 옆에 자리한 학교이자 이 단체 소속인 로열발레학교의 첫 한국인 남학생이었다. 아시아인 남자로서는 처음으로 전액 장학금까지 받았다.

 전준혁은 초등학교 4학년 때인 2010년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한국 프로덕션 초연 당시 뛰어난 재능으로 1대 빌리로 내정됐다. 하지만 발레에 집중하고자 자진 하차했다. 영화가 원작인 '빌리 엘리어트'는 탄광촌에 살던 빌리가 로열발레학교에 입학하기까지 이야기를 다룬다. 전준혁은 2014년 작품 속 발레학교가 아닌 진짜 발레학교에 입학했고, 2017년 7월 이 학교 졸업 후 그해 로열발레단에 입단했다.
 
"발레학교와 발레단은 1차로 거리를 사이에 두고 있어요. 학교 다닐 때 이 다리를 얼마나 부지런하게 오갔는지 몰라요. 과연 발레단에 들어갈 수 있을까, 매일 생각하고 연습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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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준혁
'열망의 다리'라고 불리는 곳에 선 전준혁이 말했다. 런던의 명물 중 하나인 이 다리는 5층 높이에서 로열발레학교와 로열오페라하우스 건물을 이어주고 있다.

한국과 달리 영국 공연계에서 일요일은 휴일이다. 토끼굴에 빠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전준혁을 따라 로열오페라하우스 곳곳을 누볐다. 복잡한 미로 같은 공간에서 단원들의 땀과 열정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심지어 성스러웠다.
 
120명의 단원들 중 한국인은 두명뿐이다. 2003년 입단한 한국국적의 재일동포 4세 발레리나 최유희(35)와 전준혁이다. 올해 여름이 지나고 새 시즌이 시작하면 한국인 단원이 또 한명 생긴다. 캐나다에서 발레 학교를 다니다 로열발레학교로 전학한 김보민이 입단을 확정했다.
 
전준혁은 로열발레단 단원으로서 가장 좋은 점이 무엇인지 묻자 "자부심"이라고 답했다. "발레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을 헝가리에서 촬영한다고 저희 발레단에 섭외가 왔어요. '로미오와 줄리엣'은 저희가 원조거든요. 발레단원들은 정당한 대우를 원했어요. 다른 발레단원들과 비교를 거부했죠. 발레단의 역사와 작품에 대한 존중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불가능한 거죠."

전준혁은 작년 시즌부터 아티스트로 상당수 작품에서 군무로 활약했다. 발레단과 현지 관객에 적응하는 기간이었다. 서열과 규율이 엄격한 이곳 발레단에서 젊은 무용수가 단번에 솔리스트 역을 맡기는 힘들다.

다른 발레단이라면 일찌감치 솔리스트로 활약했을 전준혁도 이를 알지만 종종 '춤을 많이 추지 못해 불안하다'는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전준혁을 아끼는 케빈 오헤어 단장이 힘을 줬다. "절대 걱정할 필요 없다. 너 같은 무용수를 안 쓰면 우리가 손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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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뉴시스】 전준혁, 로열발레단
올해는 전준혁이 더 중용될 것으로 보인다. 군무와 솔리스트 연습을 병행하게 되면, 체력적으로 더 부담이 될 듯하지만 전준혁은 "차근차근 가고 싶다"며 멀리, 길게 봤다.

"무대에서 하는 것이 없으면 솔직히 화가 나기도 하고, 답답할 때도 있죠. 그런데 너무 빨리 좋은 역을 했으면, 긴장을 해서 더 못했을 수도 있어요. 단계를 밟아가는 것이 맞아요. 기회가 왔을 때 더 열심히 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술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전준혁은 최근 연기력도 부쩍 늘었다. 걷기를 좋아하는 그는 바쁜 스케줄에도 틈 날 때마다 런던 거리를 걷는다. 다양한 사람들을 관찰하며 '삶 공부'를 한다.
 
"발레는 이야기가 중심이잖아요. 극에 빠져 웃고 울며 관객에게 감정을 전달해야 하니까 기술적으로 갈고닦는 것뿐만 아니라 연기 연습도 필요하다는 생각에 더 공부를 많이 하고 있어요."
 
전준혁을 만난 날, 런던 시내는 K팝 그룹 '방탄소년단'(BTS)으로 난리가 났다. 영국뿐 아니라 유럽 스포츠와 팝의 상징으로 통하는 웸블리에서 스타디움에서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한국 가수 최초로 공연을 했기 때문이다. 1일과 2일, 이틀간 무려 12만명이 이들의 공연을 봤다.

전준혁은 오헤어 단장도 자신에게 BTS를 아느냐며 "한국의 보이밴드, 대박이던데"라고 말했다고 신기해했다. "제가 한국 사람이니 단원들이 종종 K팝 이야기를 해요. 신기하더라고요"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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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뉴시스】 전준혁이 로열발레단의 전설적인 안무가 겸 무용수 프레드릭 애시턴을 기념하는 '애시턴 스튜디오'에서 웃고 있다.
전준혁은 발레 공연을 콘서트처럼 하는 것이 꿈이다. 극장 예술의 범위를 넘어서는 스타디움 규모까지는 아니더라도 3만명을 모을 수 있는 공연장에서 콘서트처럼 꾸며보고 싶다.

롤모델로 꼽는 무용수는 이탈리아 스타 발레리노 로베르토 볼레(44)다. 자신이 직접 출연하고 예술감독이 돼 주최하는 콘서트 같은 발레 공연에 3만명이 온다.

"마흔다섯살인데 발레를 그만 둘 수가 없으세요. 너무 팬이 많으니까요. 저도 그 분처럼 관객과 소통하면서 발레를 하고 싶어요. 공연의 흥행은 관객들이 얼마나 참여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생각해요. 런던 길거리 공연만 봐도 아시겠지만 관객들이 얼마만큼 참여를 할 수 있느냐에 따라 호응도 달라지죠."
 
순수예술 장르의 규모가 작아지고 엔터테인먼트 장르의 규모가 커지는 시점에 젊은 예술가는 타국에서 열심히 고민하고 있었다. "가수들이 공연하는 것처럼 발레를 하면 얼마나 큰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까요. 그런데 우선 발레단 생활이 우선이죠. 우선순위가 있으니까요. 로열발레단에서 소중한 것을 많이 배우고 깨닫고 있습니다."

다시 전준혁이 런던 길거리에 서자, 그곳이 무대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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