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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들, 강사법 핑계로 예체능 계열 폐과 가속화 하나

등록 2019.06.07 14: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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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대 총장 "강사 많은 무용·음악 줄줄이 폐과 추진"

예체능 폐과 추진 대학들 "강사법 때문 아니다" 주장

"대학들 강사법 네차례 유예되는 동안 폐과 등 추진"

교육부-대학-강사 협의 때도 계열별 차이 반영 못해

【서울=뉴시스】지난 2015년 12월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본부 앞에서 민주노총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원과 서울대 성악과 강사들이 대량해고 중단, 노동권 보장, 신규오디션 중단을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2019.06.07. (사진=뉴시스 DB)

【서울=뉴시스】지난 2015년 12월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본부 앞에서 민주노총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원과 서울대 성악과 강사들이 대량해고 중단, 노동권 보장, 신규오디션 중단을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2019.06.07. (사진=뉴시스 DB)

【세종=뉴시스】이연희 기자 = 오는 8월 강사들의 처우개선을 위한 강사법(개정 고등교육법) 시행을 앞두고 음악대학교나 미술대학교 등 예체능 계열 학과 통·폐합이 가속화될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로 인해 대학 내에서 강사 수요가 가장 많은 예체능 계열은 향후 수년 내에 무더기 폐과되는 최악의 사태가 올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미술과 음악 관련 학과에서는 일대일 레슨의 비중이 높고, 강사가 학생 한명을 전담해 가르치는 경우가 많아 강사법 적용 이후 방학 중 임금·퇴직금 등 인건비가 급증하기 때문이다.

최고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의 이런 상황은 초·중·고교 예체능 교육을 더욱 부실하게 만들 수 밖에 없어 교육계 내에선 깊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재 가장 큰 어려움을 호소하는 곳은 대부분 학과가 예술계열로 이뤄진 예술대학들이다. 이들은 강사법 시행으로 인해 인건비 등 재정부담이 커졌다고 주장한다. 

한 4년제 예술대 관계자는 7일 뉴시스와 통화에서 "아무래도 재정부담이 커져 강의·강사 수를 줄일 수밖에 없다"며 "전임교원이 더 많은 강의를 맡을 경우 인센티브를 부여하거나 초빙교수 등 다른 비전임교수에게 강의를 맡기는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예술대 관계자는 "인건비만 10% 이상 인상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면서도 "건학이념상 실기 위주 교육을 강조해왔기 때문에 부담은 되더라도 강의 규모는 유지하고 교직원 임금을 줄이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기존에는 4시간 동안 가르쳤던 2학점짜리 수업을 3시간으로 줄이는 식으로 교육과정 개편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 지방 사립대 총장은 "대학들이 워낙 재정이 열악하다보니 음악과 폐지를 줄줄이 추진하고 있다"면서 "무용과 음악 등 강사 자원이 많이 투입되는 학과를 줄이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예체능 계열 폐과를 추진하는 일부 대학들은 공식적으로는 "강사법 때문만은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공연 관련 학과 폐지를 고지한 충청권 한 사립대 교무처 관계자는 "교육부의 기본역량진단평가나 대학혁신지원사업 자체가 강점이 있는 학과를 늘리고 그렇지 않은 학과는 줄이는 방향으로 유도하기 때문에 경쟁력이 떨어지는 학과는 줄이려는 것"이라며 "비단 강사 인건비 부담 때문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강사단체 '분노의 강사들' 소속 성악 전공 전유진 강사는 "서울 소재 A대학은 4년 전에 비해 음대 학생을 절반 가까이 줄였다"면서 "수년 전 무용학과가 그러했듯 학생 정원을 줄인 뒤 폐과하는 방식으로 눈에 띄지 않게 대응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강사법이 네 차례 유예되는 동안 폐과된 후 실용음악과나 뮤지컬과로 전환된 곳들이 많아 음대 강사들끼리는 '곧 음대가 다 사라질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눈다"고 밝혔다.

일선 대학들이 오래전부터 강사법에 대비해 예체능 계열 통폐합을 진행해왔다는 얘기다.

이처럼 예체능 계열 폐과가 가속화되면 초·중·고 교육까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미 일선학교의 예체능 교사 대부분을 기간제 비정규직 교사로 채용하는 상황에서 대학 진학까지 요원해진다면 공교육 내에서 예술을 배우려는 학생들을 아예 고사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전유진 강사는 "유학을 다녀온 연주자와 예술가들이 학생 일대일 레슨을 하면 먹고 살 만 하다는 선입견을 갖지만 이미 학생 수요는 낮은 상태"라며 "실제로는 생활고를 겪고 1학기에도 해고통보를 받은 강사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강사 대량해고를 막기 위해 올해 확보했거나 추가경정예산(추경)에 반영한 순수 사업예산은 총 586억원이다. 이 중 모든 대학에 지원하는 방학중 임금 지원사업 예산 288억원은 일선 대학의 노력에 따라 차등지급한다.

추경에 반영한 280억원을 투입하는 '시간강사 연구지원사업'은 해고강사 위주로 총 2000명을 선발해 1400만원씩 지원해 연구·교육활동을 독려할 방침이다. 그러나 이 역시 인문사회계열 논문·강의 등에 한정돼 있어 예체능 계열 강사들의 전시·공연활동까지 지원하지는 않는다.

정부가 마련한 강사들 대량 해고 방지 대책에도 예체능 계열 강사를 지원하는 정책은 사실상 전무한 셈이다. 실제 교육부-대학-강사 간 강사법 시행령·매뉴얼을 만드는 논의 단계에서도 구체적으로 계열별 특징을 반영한 논의는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교육부 관계자는 "계열별 변동 사항은 이달 초 시작될 대학별 강사 고용현황 실태조사 결과와 8월 발표될 대학정보공시를 확인할 수밖에 없다"며 "강사법 때문에 폐과를 추진한다는 인과관계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보지만 시행 전까지 학문계열별 강사들의 고충도 청취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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