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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일파만파 현금복지 논란, 어떻게 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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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6-10 15:44:32  |  수정 2019-06-10 16:3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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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대로 기자 = 지방자체단체 현금복지 논란이 뜨겁다. 서양호 서울 중구청장은 관내 만 65세 이상 기초생활수급자와 기초연금 수급자에게 '어르신 공로수당'을 매달 10만원씩 연간 12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올해 초 발표했다. 서 구청장은 당시 "전체 인구의 17%가 65세 이상 노인인 중구는 서울시 자치구 중 노령화지수 1위, 85세 이상 초고령층 빈곤율 1위 등을 나타내고 있어 이런 안전망이 어느 지역보다 시급하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자 인근 성동구청이 반발했다. 성동구와 중구에 걸쳐있는 아파트 단지가 있는데 이 단지 내 성동구민들이 '우리는 왜 안 주냐'며 성동구청에 따진 것이다. 입장이 곤란해진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각종 매체를 통해 서양호 중구청장의 정책을 비판했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판을 키웠다. 정 구청장은 전국 226개 기초자치단체가 모두 참여하는 '복지대타협특별위원회'를 만들겠다며 기초단체장 13명과 준비위원회를 꾸렸다. 복지대타협특위는 중앙정부-광역지자체-기초지자체 공동 '국가복지대타협' 이행을 목표로 제시했지만 이는 사실 서양호 중구청장을 겨냥한 것이나 다름없다.

복지대타협특위는 서양호 중구청장 같은 기초지자체장이 계속 등장하면 지자체간 무분별한 경쟁이 일어나 국가재정이 위태로워진다고 경고한다. 복지대타협특위는 현금복지를 '지자체장들을 유혹하는 포퓰리즘 정책'쯤으로 보고 있다. 요컨대 복지대타협특위는 서양호 중구청장을 현금복지를 통해 인기를 올려 쉽게 재선 고지에 오르려는 인물쯤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복지대타협특위의 움직임은 내년 총선 등 차기 선거와도 연관돼 있다. 현금복지와 방만한 복지재정 운영 문제는 보수진영의 오래된 먹잇감이다. 민주당 내부에서부터 현금복지에 대한 거부를 표방하겠다는 복지대타협특위의 움직임에는 보수진영의 정치공세를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의도가 담겨있다.

복지대타협특위의 방침은 일리가 있다. 전국 기초 지자체장들이 재정 상황을 도외시한 채 재선에 성공하기 위해 인기영합적으로 현금 살포에 집중한다면 지방 재정이 파탄 상태에 이를 수도 있다.

하지만 복지대타협특위 주장 근저에는 지방재정을 파탄상태에 이르게 하는 지자체장이라도 주민에게 현금을 뿌려 인기만 얻으면 다음 선거에서 능히 뽑힐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자기 지역을 빚더미에 눌리게 만든 장본인에게 주민들이 또 다시 표를 던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평소에는 '민심이 천심',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구정' 등을 외치던 민주당 소속 지자체장들이 주민에게 가장 민감한 복지정책에 있어서는 주민의 판단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모순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복지대타협이라는 명분으로 지자체장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해왔는지도 의문이다. 중구청은 관내 인구가 서울시 자치구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적어 상대적으로 더 높은 강도의 복지정책을 집행할 여력이 있다. 또 서양호 중구청장은 어르신 공로수당 지급 전 각종 전시행정 관련 예산을 삭감하는 등 재정 효율성을 확보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어르신 공로수당을 단순히 '묻지마 현금살포'로 폄훼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바로 여기에 있다.

아울러 가뜩이나 '말뿐인 지방자치'라는 비판이 집중되는 상황에서 지자체별 특성에 맞는 정책을 집행하는 지자체장을 다른 지자체장들이 집단적으로 압박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의 한 구청장은 중구청에 대해 "그저 부러울 뿐"이라고 말했다. 인구가 적어 복지재정을 더 많이 투입할 여력이 충분한 중구가 부럽다는 것이다. 이 구청장의 발언은 현금복지에 반발하는 다른 지자체장들의 솔직한 심정일수도 있다.

특히 중구청에 대한 문제제기는 민주당이 표방해온 '보편적 복지'가 안착하는 것을 방해할 수도 있다. 보편적 복지는 오늘날 우리나라 저소득층의 삶이 더는 두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힘들어졌다는 점을 전제로 추진된 정책이다. 중구청의 어르신 공로수당은 기초생활수급자와 기초연금 수급자에게 지급되는 최소한의 지원이다. 그런데 민주당 소속 지자체장들이 이 정책에 반기를 든 점은 어쩌면 보수진영의 눈치를 보느라 초심을 잃은 것은 아닌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두 구청장간 신경전에서 촉발된 현금복지 논란은 어쩌면 우리 사회가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지방분권을 위한 헌법 개정이 좌절된 후 지방재정분권 역시 지지부진한 현 상황이 이번 현금복지 논란을 초래한 측면이 있다. 지방재정분권이 제대로 이뤄졌다면 현금복지정책의 추진 여부와 그에 따른 정치적 책임이 모두 지자체장에게 달려있기 때문에 이번 사안은 아예 불거지지도 않았을 수 있다. 결국 불완전한 지방자치제도가 이번 사안을 촉발시킨 배경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이번 현금복지 논란은 우리나라 복지정책의 미래에 관한 냉정하고 정확한 진단을 더 늦춰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줬다. 경제성장 동력은 약화되는데 평균수명 연장으로 복지수요는 확대되는 실정이다. 주춤하고 있는 경제성장 때문에 복지를 희생해선 안 되지만, 그렇다고 경제성장을 도외시한 채 복지만을 추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본격 출범을 앞둔 복지대타협특위가 정치적 이득을 추구하는 장이 아니라 우리나라 복지정책의 미래를 논하는 건강한 공론의 장이 되길 바란다.


daer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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