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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예쁜 쓰레기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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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6-12 16:2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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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이예슬 기자 = "56㎏ 나왔습니다. 계좌번호 주시면 1만6800원 입금하겠습니다."

드레스룸을 정리해 안 입는 옷 56㎏을 헌옷수거업체에 넘겼다. 자그마치 이민가방 3~4개에 맞먹는 부피다. 주로 패스트패션(SPA) 브랜드나 인터넷쇼핑몰에서 산 저렴한 옷들 위주로 추리긴 했지만 티셔츠 한 장에 못해도 1만원은 주고 산 옷들일텐데 1㎏에 300원이라는 헐값에 넘기다니 속이 쓰렸다.

'집도 좁은데 안 입는 옷을 그렇게나 많이 이고 지고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저렴하다고 고민없이 옷을 산 후 몇 번 안 입고 내친 자신이 한심하게도 느껴졌다. 섬유 쓰레기 양산에 일조했다는 자책감도 함께였다.

패션산업은 염색공정 등 생산단계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학물질들로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특히 빠른 주기로 신상품을 내놓고 대량생산하는 SPA브랜드가 의류 쓰레기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다는데에는 다툼의 여지가 없다.

명품 브랜드도 이 같은 논란에선 벗어날 수 없다. 버버리는 싸게 팔려 브랜드 이미지가 실추되는 것을 막기 위해 팔리지도 않은 상품들을 소각했다는 사실이 지난해 밝혀지면서 많은 이들의 분노를 샀다.

그런데 패션업계가 바뀌고 있다. 지속가능한 패션을 추구하는 소비자가 늘어나면서다. 가격이 저렴하지 않더라도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충족하는 제품을 구매하는, 이른바 '가치소비'의 시대다.

H&M그룹의 SPA브랜드 앤아더스토리즈는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중고 의류를 팔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패스트 패션 그룹이 지속가능한 패션에 한 걸음 다가갔다는 점에서 의외라는 평가를 받는다.

제조 과정에 있어서도 환경 파괴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유니클로의 모기업 패스트리테일링은 물 사용량을 90% 이상 줄일 수 있는 워싱 공법을 개발했다. 새 공법으로 이 회사에서는 2020년 기준 3조7000만 리터(ℓ)의 물을 절약할 전망이다.

한 번도 팔리지 않은 의류가 쓰레기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한 업사이클링 패션도 주목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코오롱FnC에서 업사이클링 브랜드 '래;코드(RE;CODE)'를 운영하고 있다. 재고 의류들을 해체해 새로운 옷으로 디자인한다.

요즘 패션 좀 안다 하는 중고생들은 수학여행 가기 전 동묘 구제시장에 가서 옷을 산다고 한다. 안목이 있으니 오래된 옷더미 속에서도 찰떡같이 어울리는 옷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구질구질한 헌 옷이 아니라 빈티지 패션이다.

멋져보이니 입는 것이겠지만 결과적으론 윤리적 소비, 지속가능한 패션을 몸소 선보이는 셈이다.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자와 변화하는 트렌드에 발맞춘 패션업계가 손을 잡는다면 '쓰레기 유발산업'이라는 불명예는 벗을 수 있을테다.

헌옷업체에 수거된 의류들은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등지로 팔려나간다고 한다. 나와 이별한 그 옷들은 어느 곳에서 새 쓰임을 얻을까. 우리집에선 옷장 속에 쳐박혀 제대로 빛도 못봤지만, 다음번에는 눈썰미 좋은 새 주인을 만났으면 한다.


ashley85@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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