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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호의 경청] 윤태호 "만화가 협회장 3년째…허영만 선생님 만나면 혼나"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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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6-15 09:01:00  |  수정 2019-06-15 11:45:17
만화계 굉장히 어려웠을 때부터 가입해 시위 나가기도
내가 몸 담고 있는 이 판 좋은 방향으로 만들려는 욕망
만화, 문화 전반적으로 제일 많은 소비자들 보는 장르
종사자들 엄청나게 많아진만큼 문제점도 많이 드러나
표준계약서 정착 시키고 불법 복제 사이트 대응 과제
악플 다 속상하고 쇼킹…젊은 작가들 공황장애 많아
대선 때 지지연설 등 작가로서 사회적 행위 비난도
내 정치적 지향 때문에 독자가 떠난다곤 생각 안 해
<이끼> 영화로 볼 때 신기하고 민망…압박감 생겨
<인천상륙작전>은 판권 팔라는 요청 왔지만 거절
허영만 <오! 한강> 워낙 독보적 작품…의식하진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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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만화가 윤태호 작가가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19.06.15 photocdj@newsis.com

 = 지 – 여러 가지로 책임감이 많으신 것 같아요.
윤 – 책임감이 많다기보다는 책임감을 많이 가질 수 밖에 없게끔 주변이 만드는 것이 있죠. 예를 들어서 만화가 협회장이라든지.
 
지 – 그건 안 하셔도 되는 거잖아요. 스승님이신 허영만 선생님은 그런 자리는 많이 피하시는 편으로 알고 있는데요.(웃음)
윤 – 올해가 협회장 3년째인데, 아직도 스승의 날에 스승님 만나면 여전히 혼나요. 만화계에 기여하고 싶으면 작품으로 기여해라, 하는 말씀을 아직도 하세요. 여전히 혼납니다. 네가 그렇게 감투 욕심이 있는지 몰랐다, 이러시면서.(웃음) 크게 변명은 안 하고 있습니다.
 
지 – 이번 스승의날에도 만나서 혼나셨군요.(웃음)
윤 – 예. 옛날에는 그렇게 얘기하는 것이 겸손한 것 같아서, "선생님 어쩔 수 없이 하게 됐어요" 라고 말씀을 드리곤 했었는데요. 제가 협회에 가입을 했을 때가, 97년도 청소년보호법 때문에 만화계가 굉장히 어려웠을 때부터 가입을 했었거든요.
 
지 – 그때부터 시위도 나가고 하셨죠.
윤 – 그때 비상대책위원회가 만들어져서 시위하고 이럴 때 제가 경찰서 가서 시위허가서 떼오고 그랬었거든요. 그동안에는 제가 뭐라고, 감투 욕심이 있어서 협회장을 하나, 이런 생각이 있었지만요.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만화가로서 내가 몸 담고 있는 이 판을 제가 참여해서 좋은 방향으로 하고자 하는 욕망은 분명히 있어요. 빠지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이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감투 욕심이나 이런 것들이 아니라 참여하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분명히. 그동안에는 누군가를 만나서 이야기할 때는 겸손해보이려고 "아유, 사람이 없어가지고요" 이렇게 얘기를 했지만, 그래서 그 말이 "저 아니면 안돼요"라고 언뜻 비쳐졌을지도 모르겠지만요. 그런 것보다는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분명히 있어요. 만화계가 시끄럽거나 이럴 때 뒤에 앉아서 논평하고 싶은 성격은 아닙니다.
 
지 – 얼마전에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나온 <한국의 만화가 4>(김봉석 저)라는 책을 보니 이현세 선생님이 영화 제작자 차승재 대표와 대담을 하면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내 경우도 터닝포인트가 있었는데 그 시점이 1980년 신군부세력이 장악했던 당시였지. 삼청교육대 손보고 그다음 타깃이 만화였어. 만화가들을 안기부 마당에 불러 모아서 한다는 얘기가 '만화를 없애려고 하는데, 만화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 20만 명이나 된다. 없애진 않을테니, 대신 자정 만화를 그려라. 1. 건전만화를 그릴 것. 2. 이웃 국가를 헐뜯지 않는다.' 뭐 몇 가지 복창시키고, 남산을 내려가는데, 비가 오더라고. 서글프더라". 이런 시절이 있었잖아요.
윤 – 그건 저도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요.

지 - 그 분들과 같이 작업을 한 세대이면서 지금까지 활발하게 작업을 하시는 분인데요. 그때에 비해서 처우도 개선되고, 만화가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었잖아요. 70~80년대에는 무슨 날만 되면 만화를 모아놓고 태우고 그랬잖아요.(웃음)
윤 - 이 업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들에 대한 시선이 달라진 것이 제일 큰 것 같아요. 다들 느끼겠지만, 문화 전반으로 봤을 때는 제일 많은 소비자들이 보고 있는 장르인 것 같구요. 그 다음에 여기 참여하고 있는 종사자들의 수도 과거에 비했을 때 수십배에 이를만큼 어마어마하게 많아졌구요. 작년 기준으로 1년에 고료를 받고 연재한 작가의 수가 4000명이 넘으니까요. 어마어마하죠. 지금. 역대급이죠. 역대급. 그런만큼 빚어지는 이 업계의 부당한 거래, 계약 관행이라든지 이런 것들도 수면 위로 많이 드러나는 것 같구요. 그래서 협단체나 어떤 기관들이 그 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민원이나 만화계 문제들에 대해서 발언해야 될 일도 많아졌습니다. 그러다보니 적절하게,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는 부분도 많이 생기구요. 경험이 너무 적다보니까. 그런 부분들이 힘들죠. 협회장으로 있으면서 생각할 때. 이 업계가 고도화되는 것에 협단체가 못 따라가는 부분이 너무나 많죠.
 
지 – 협회장하시는 동안 이런 부분을 나아지게 한 것 같다는 부분이 있나요?
윤 – 올해가 임기 마지막인데요. 그런 것은 없습니다. 항상 만화계의 문제들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인 문제들이 많구요. 특히 계약과 관련된 문제는 어느 한 업체와 계약과 관련한 분쟁이 풀렸다고 해서 업계 전반의 계약 문제가 풀렸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여전히 진행 중이구요. 제일 중요한 지점은 협회 이사회를 할 때 법적인 갈등이나 문제가 생겼을 때 작가들인 이사들의 개인적인 판단에 의지하지 않고, 협회 고문변호사를 꼭 그 자리에 모셔서 전문가의 판단을 듣는다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게 어떻게 보면 제일 중요한 것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지 – 회장에 다시 출마하실 생각이 있으신가요?(웃음)
윤 – 아니요. 작업해야죠. 연임은 가능합니다만.
 
지 – 차기 협회장이 해결해야 할 현안은 무엇이 있을까요?
윤 – 일단은 대정부 관련한 부분들, 예를 들어 문화부와 함께 표준계약서를 정착시키는 부분이라든지, 불법 복제 사이트들에 대한 대응, 이런 부분들을 정부와 함께 제대로 발맞춰서 해야 할 부분이라든지, 제가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은 부분이 지금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은 문하생이나 이런 경험이 없잖아요. 그런데 어쨌거나 조력자들은 필요로 한단 말이죠. 이럴때 조력자들을 양성할 수 있는, 만화도 영화나 이런 것처럼 분업이 되게끔, 분업하는 조력자 분들이 그 일을 업으로 삼을 수 있을만큼의 좋은 토대를 만들어내는 것, 이런 부분들이 웹툰 시장이 커지는 것에 어울리는 디테일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영화에서도 촬영감독, 미술감독 이런 분들이 계신 것처럼, 만화에서도 스탭들의 전문화, 고도화가 분명히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 – 스토리와 그림이 분업화된 것은 오래전부터 있어왔잖아요.
윤 – 그렇긴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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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추상철 기자 = 윤태호 한국만화가협회 회장을 비롯한 회원들이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웹툰 무단 도용 불법사이트 수사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8.05.23. scchoo@newsis.com

지 – 좀 더 디테일하게 나눠질 것이라는 거네요. "댓글로 작가들이 입는 내상이 상당하다. 심리적 안정을 꾀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협회가 모색 중이다"라는 말씀을 하신 적도 있으신데요.
윤 – 저희가 웹툰 작가협회를 만들면서 웹툰 작가 협회 이사진들과 이야기해봤더니, 실제 젊은 작가들 중에 공황장애에 노출되어 있는 분들이 굉장히 많더라구요. 특히 웹툰이라고 하는 매체가 소비자와 작가간 간극이 제일 좁은 것 같아요. 바로 연재가 되는 동시에 밑에 댓글이 달리니까요. 그래서 바로 바로 눈앞에서 뭔가 피드백을 받는 이런 환경에 있다보니까 멘탈 관리가 잘 안되는 젊은 작가 분들이 많아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 협회가 정부와 같이 작가들에 대한 정서적인 부분을 좀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에 대해서 웹툰 작가 협회 차원에서 굉장히 많이 고민하고 있구요. 실제로 저희가 이야기 들어본 바로는 굉장히 그런 분들이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작가분들 입장에서는 밝히고 싶지 않아서 쉬쉬 하고 있거나, 개인적으로 병원에 가서 처방을 받거나 그런 분들이 굉장히 많으시더라구요. 이런 부분에 대해서 협단체가 도움을 드려야되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죠. 지금 당장에는 어떻게 하고 있지는 못하지만요.
 
지 – 윤태호 작가님은 악플이 별로 없기로 유명하잖아요.
윤 – 악플은 하나건 백 개건 그냥 다 속상하고, 쇼킹하죠. 그래서 다 힘든 것 같아요. 악플은 빈도의 문제가 아니고, '있다, 없다'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웃음)
 
지 – 어떤 댓글이 제일 속상하셨나요?
윤 – 두 가지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하나는 악플이라고 보기는 힘든 건데요. 저보다 더한 통찰로 작품에 대해서 지적을 할 때는 아프죠. 그거는.

지 – 그건 발전의 동력으로 삼을 수 있는 거 아닌가요?(웃음)
윤 – 아니요. 무너질 수도 있어요.(웃음) 발전이 아니고, 모든 피드백을 플러스적으로, 포지티브적으로 받아들일 수만은 없기 때문에 무너질 수도 있는데요. 너무 빛나는 통찰을 자랑하는 댓글은 때로 너무너무 무시무시합니다.(웃음) 비난을 위한 비난을 하는 악플은 누가봐도 이건 무시해도 된다는 악플인데도 너무 분해서 어쩔 줄 모르는 악플들이 있죠. 인신에 대한 공격이라든지, 혹은 제가 그동안 살아왔던,
 
지 – 가족을 공격한다든지.
윤 – 가족까지는 아니더라도, 작가로서 사회적으로 했던 행위에 대해서 악플이 연결되어서 온다거나, 대선 때 지지연설을 한 거라든지, 이런 걸로 비난이 오면 너무너무 힘들죠.
 
지 – 작가로서 특정 정치인을 지지한다는 것은 위험한 행위잖습니까? 독자의 절반을 적으로 만들 수도 있구요.(웃음)
윤 -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2012년도에도 했었거든요.

지 – 이번에는 지지연설도 하셨잖아요. 모자까지 벗으시고.(웃음)
윤 – 어렵거나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지지자를 적으로 돌릴 수 있다거나 전혀 그런 생각을 안 해봤거든요. 그냥 제 작품은 재미 없으면 거부한다고 생각하지, 제 정치적인 지향 때문에 남아있거나 떠난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요. 어떤 작품이나 대략 보면 그 사람을 짐작할 수 있잖아요.
 
지 – <미생> 연재 끝나고 나면 극지-오지 시리즈를 계획 중이라고 들었는데요. 남극에도 다녀오셨잖아요.
윤 – 가는데 5일, 오는데 5일 정도 걸리더라구요. 한국에서 파리, 칠레 산티아고, 푼타아레나스를 거쳐 남극으로 가는 코스인데요. 푼타아레나스에서 한 이틀 머물렀던 것 같아요.

지 - 공군기지죠?
윤 - 네. 제가 갔을때는 중국 과학자들이 임대한 비행기를 타고 남극으로 갔습니다.
 
지 – 남극 이야기를 작품으로 하면 어떤 이야기를 하실건가요?
윤 – 우리가 흔히 생각하면 남극 같이 낯선 곳에 가면 그 배경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 같잖아요. 오히려 거길 갔더니 생존이 아니라 사람들이 보이는 거예요. 생존에 대해서 엄밀하게 집착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이고, 거기 가서 활발하게 연구하거나 이런 것도 하시겠지만, 그 분들이 연구를 할 수 있게끔 하는 메커니즘, 살려야 된다는 메커니즘이 있잖아요. 이게 더 눈에 잘 보이고, 그래 사람이 산다는 것은 이런 거지, 라는 것들을 되게 많이 생각하게 돼서요. 오히려 극지에 가서 극지 만화를 한다는 것이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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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23일 오후 서울 왕십리CGV에서 열린 영화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 시사회에서 웹툰 원작자 윤태호 작가가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2015.12.23. photocdj@newsis.com

지 – 그동안 작품을 해오셨던 것처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람들간의 일에 더 관심이 많으신 거군요.
윤 – 예를 들어서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허블 망원경이 어마어마하게 먼 곳까지 촬영을 했다, 역대급의 먼 거리에 있는 성운이나 이런 것들을 촬영했다고 하면 우리의 백그라운드의 지평이 그만큼 넓어지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하지만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면 아무 의미가 없는 우주고, 나에게는 의미가 없는 것이고, 거기에 갔을 때도 사람을 지우게 되면, 가령 사람이 한 번도 안 가본 곳이 지구상에 있다고 하면 우리 의식 속에서는 지구상에 없는 곳이잖아요.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남극이 더 중요한 것이고, 우리가 지구에 살고 있기 때문에 남극과 북극이 소중한 곳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죠. 특이한 곳이라서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 – 열기구에 대한 작품도 계획 중이시라면서요.
윤 – 열기구는 극지 시리즈이기도 한데요. 저로서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아이돌 시리즈예요. 아이돌을 둘러싼 위성과도 같은 조력자들의 이야기, 그러니까 남극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아이돌에게 음악을 만들어주는 작곡가 이야기구요. 열기구 이야기는 코디네이터의 이야기인데요. 터키 카파도키아, 스타워즈 찍은 곳인데요. 거기는 너무나 배경이 판타지스러워서 열기구가 어울립니다. 반면 일본 사가현에 논밭에서 하는 열기구 대회가 있습니다. 거기를 세번 정도 취재를 갔었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특이한 소재들로 시리즈를 만들고 싶은 프로젝트도 같이 진행하고 있어요. 그 첫번째가 남극 이야기, 두번째가 사가현 열기구 이야기가 될거구요. 이렇게 순차적으로 해볼려구요.
 
지 – 그 다음에 그린란드에서 한 달 살아보기 이야기도 계획중이시라면서요.
윤 – 그건 로드매니저 이야기인데요. 아직은 다 아이디어가 말랑말랑한 상태라서 확정은 아니구요. 그렇지만 대략 이런 폼으로 진행하려고 합니다. 
 
지 - 그린란드에 가셔야겠네요.
윤 - 한 번 갔다 왔는데, 다시 한 번 갈 수도 있구요.

지 – 양영순 작가를 좋아하신다면서요. "<덴마>는 부러운 것 투성이다. 이야기, 그림.... 그 중에서도 제일 부러운 건 등장인물에게 연민을 갖게 하는 양영순의 힘이다"라고 하셨잖아요.
윤 – 네. 그런데 사실 만화는 거의 안 봐요.
 
지 – 아무래도 영향을 받을까봐 그러시는 건가요?
윤 – 아니요. 그것보다는 시간이 없어가지고요. 대신 동종업계에 있는 작품들을 보는 것보다 다른 장르의 것을 보는 것을 좋아해요. 책 읽거나 영화 보는 것을 훨씬 더 좋아합니다.
 
지 – 코엔 형제의 <파고>를 좋아한다고 들었습니다. 작품 활동 초기에는 영화의 화면을 분석하셨다고요?
윤 – 분석은 아니구요. 그냥 자주 보다 보면 분석이 되잖아요. 분석해야지, 하고 보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구요. 그건 어릴 때, 젊었을 때 좀 했던 것 같은데요. 지금은 반복해서 보다 보면 눈에 띄는 부분들이 있는거죠.
 
지 – 작가님 작품이 영화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그런 영향도 있는 건가요?
윤 – 영화적이라기보다는 영상적이라는 것은 모두가 다 공통적인 것 같아요. 그림이 있고, 서사적으로 이어지는 장르들은 대부분 비슷한 부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지 – 어느 인터뷰에서 "성공하고 나서 괴물이 될까봐 두려웠다"고 하셨는데요. 신인 때는 출판사 등의 눈치를 너무 많이 봤던 것 같고, 지금은 힘이 생겨서 이 힘을 남용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같은 건가요?
윤 – 괴물이라는 표현은 힘의 남용이라든가 이런 부분보다는 원래 내가 생각했던, 내가 20대 때 생각했던 사람과 30년 후의 내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공포감에서 말씀드린 거구요.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어릴 때부터 이래도 되지 않을까, 저래도 되지 않을까, 살짝 살짝 생각했던 부분들이 처음에는 약간의 유격으로 생각하겠지만, 처음에는 미세한 차이지만, 멀리서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면 굉장히 큰 간극이 발생이 되는 거잖아요. 그런 것들은 인생을 살면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것 같구요. 제가 생각하는 성인물이라고 하는 것은 그 역사를 살아온 사람들에 대한, 그 나이대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페이소스가 없을 수가 없다, 그런 연민과 슬픔이 빠질 수 없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대부분이 다 괴물이 되어 가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이야기였죠. 되게 슬픈 이야기였어요. 저한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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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만화대상 수상자 윤태호 작가(사진=부천국제만화축제)

지 – 어떻게 보면 작가는 소위 말하는 꼰대가 안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 되고, 젊은 사람들과 소통을 계속 할 수 있어야 되잖아요.
윤 – 핵심은 젊은 사람들과 소통을 해야지, 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하고 소통을 해야지' 하는 것이 핵심인 것 같아요. 젊은 것이 프리패스는 아니잖아요. 모르겠어요. 꼰대가 안 돼야지, 하는 것에 대해서 그걸 방점으로 해서 살아본 적은 없어서요. 지금 협회 회장하면서도 협회가 굉장히 젊어졌거든요. 이사회를 진행할 때 보면 거의 진행자의 역할로만 하기 위해서 굉장히 애를 쓰구요. 이사진들의 의결에 따라서 저는 결정을 내리고, 책임만 지면 된다고 생각해요.
 
지 – 세상 모든 것의 시작을 다룬다는 모토로 <오리진> 시리즈를 시작하셨는데요. 100권을 목표로 하셨잖아요.
윤 – 지금 4권까지는 원고가 마무리가 되었는데요.

지 - 보온, 에티켓, 화폐까지 나왔는데, 4권의 주제는 뭔가요?
윤 - 상대성이론인데, 굉장히 재밌더라구요. 공부하다보니까.(웃음) 작년에 출판사를 바꿨어요. 올해 새로 북21하고 계약을 했는데요.

지 - 원래 위즈덤하우스에서 나왔었잖아요.
윤 - 그쪽과 계약을 정리를 했고, 북21과 새로 계약을 맺은 상태라서요. 스케줄을 새로 정리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일정을 나오구요.
 
지 –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저스툰에서 연재를 하면서 책으로 만든 거잖아요.
윤 – 그것은 공개하기가 좀 그런데요. 거의 1년 동안 망가졌었습니다. 중간 중간 좀 보셨지만, 제가 술을 엄청 먹었었잖아요. 내상이 어마어마했죠. 그래서 사실 이야기 안 했지만, <미생> 연재 중단도 건강 문제도 있었지만, 그 문제도 있었습니다. 저로서는 <미생>이 망하면 안되잖아요.

지 - 그게 <미생> 연재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으니까...
윤 - 네.

지 – <인천상륙작전>의 경우 허영만 선생님의 <오! 한강>과 비슷한 느낌이기도 한데요. <오! 한강> 작업 때 문하생으로 참가하셨잖아요. 윤태호만의 작품으로 차별화하고 싶은 생각도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
윤 – 의식을 하지는 않았구요. 그 작품은 워낙 독보적이기 때문에. <오! 한강>은 한 명의 캐릭터가 다 경험해나가는 얘기잖아요. 그래서 어쨌거나 한 명의 예술인의 시선, 그 다음에 그의 체험 이런 것들이 주된 스피커 역할을 했다면 제가 만든 <인천상륙작전>은 절대적인 내레이션의 힘에 많이 의지를 했거든요. 저는 거의 논픽션으로 만들어야지, 하는 생각이 강했던 거구요.
 
지 – 자료도 많이 보셨고.
윤 – 허영만 선생님과 김세영 선생님이 만든 <오! 한강>은 그 시대를 거쳐온 사람의 어떤 캐릭터성을 강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해요. 제가 접근한 방식과는 태도 자체가 굉장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지 – 한겨레에 연재를 하셨잖아요.
윤 – 한겨레와 온라인으로는 네이트에 연재를 했죠.

지 - <내부자들>도 한겨레에 연재하셨는데요. 한겨레 같은 언론을 도와주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윤 - 왜냐하면 한겨레가 88년도에 창간했잖아요. 제가 그때 허 선생님 문하생이었거든요. 벽돌 한장이라도 함께 하고 싶었는데 형편이 안되서 못 했다는 생각이 계속 있어서요. 돕는다는 표현은 좀 건방지고, '참여하고 싶다, 같이 가고 싶다' 이런 생각을 좀 많이 했었죠. 항상 해왔습니다. 그래서 <내부자들>로 참여하게 됐고, <인천상륙작전>까지 같이 가게 됐죠. <인천상륙작전>은 하기 직전까지, 한다고 했다가 고경태 편집장님한테 '못 할 것 같아요', 연재 한 달 남겨놓고 못한다고 이야기를 할 정도로 굉장히 고민이 많았던 작품이었어요. 부담스럽더라구요. 힘들고.
 
지 – 서사가 커서 그랬나요?
윤 – 컨셉이 안잡히는 거예요. 이것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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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만화가 윤태호 작가가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19.06.15 photocdj@newsis.com

지 – <내부자들>은 마무리는 못 지으신 거잖아요.
윤 – 만화적으로는 못 지었구요. 시놉으로는 몇십 장을 완결까지 써서 영화사 측에 드렸구요.

지 - 만화로 완결을 시킬 생각은 없으신가요?
윤 - 네.(웃음)
 
지 – 그때도 여러 고민들이 많으셨던 것 같아요.
윤 – 그러니까, <내부자들> 서사에 대해서 이렇게 저렇게 만들어야지 하는 생각보다.... 그때가 <이끼>가 끝났을 때인데요. <이끼> 끝나고 나서 다른 그림체의 작품을 시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하나 있었구요. 그 다음에 제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시사적인 생각이나 판단이나 이런 것들을 한번 점검해보자, 그래서 우리가 제대로 된 뉴스를 알기 위해서는 옛날처럼 나오고 있는 모든 신문을 다 사봐야 하는게 아니라 요즘은 검색만 해봐도 다 알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취재를 거의 온라인으로만 했었습니다. 어떤 이슈나 이런 것들에 대해서 인터넷 창을 한 3~40개씩 띄워놓고 계속 역추적을 해가는 거죠. 지금 나오는 이슈들에 대해서 최초에 이 이슈가 어디서부터 출발을 했는지, 그렇게 공부하듯이 따라가보고 했는데요. 감당하기도 어려웠고, 그런 역추적을 한다고 해서 제가 또 다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굉장히 힘들었죠. 그리고 일단은 고료가 생활을 할 수 있을만한 고료가 아니었기 때문에....

지 - 아무래도.(웃음)
윤 - 그래서 생계를 위한 작품을 빨리 해야했죠. 그런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이 되어서요. 제일 큰 이유는 끌고 가기 어려웠어요. 그런 것을 빨리 인정해야 속이 편하죠.(웃음)
 
지 – 영화가 너무 잘됐잖아요. 감독판으로 세시간 짜리가 나오기도 했구요.
윤 – 처음에 3시간 40분 짜리를 편집실에서 봤었죠.
 
지 – 본인의 작품을 영화로 보게 되면 기분이 어떠신가요?
윤 – 신기하다.(웃음) 첫 영상화가 된 것이 <이끼>였잖아요. 가편집본을 시사하는 장소에서 배우 분들하고 같이 봤어요. 그런데 제가 쓴 대사가 배우분들의 목소리로 나오니까 처음에는 너무 부끄럽더라고요. 민망하기도 하고. 배우분들이 못 했다는 것이 아니라, 마치 녹음한 내 목소리를 듣는 것 같은 그런 오글거림, 그런 느낌이 있었습니다. 정말 신기하다, 그 다음에는 '와, 진짜 판권 팔 때는 이 분들이 가서 잘 만드실 수 있는 분들하고 계약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만화는 저 혼자 시작해서 저 혼자 끝나잖아요. 워낙에 플랫폼에 많은 작품이 연재되고 있기 때문에 (영향이 아주 없을 수는 없겠지만) 제 작품 하나 망한다고 해서 플랫폼의 생존에 영향을 주진 않죠. 그런데 영화는 많이 비용이 들어가고,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들어가기 때문에 망하면 타격이 크겠구나, 이게. 그래서 그런 실제적인 압박감, 이런 것들이 많이 생겼어요. 그래서 실제로 <인천상륙작전> 같은 경우에는 판권을 팔라고 했는데, 제가 거절했거든요. 왜냐하면 내러티브가 약하다보니까 눈 딱 감고, 판권료를 받고 넘길 수가 없는거예요. 그러면 상대방 측에서 어떻게 만들겠다는 비전을 들고와야 되는데, 그걸 말해주는 제작자나 이런 분들이 없었구요. 예를 들어서 '이 만화는 내러티브가 약하지만, 이렇게 이렇게 우리는 풀어가고 싶다'고 비전을 이야기해줬으면 팔았을텐데요. 그런 것들이 없이 사고 싶다고 했기 때문에요. 그러면 못 팔거든요. 저 같은 경우에는 그런 걱정이 되게 많아요. 왜냐하면 그 사람들도 성공의 경험을 가져 가야 되기 때문에, 저야 판권 팔고 돈 받으면 좋겠지만, 전 작품이 판권 계약이 됐다고 하면 기분 좋은 키워드니까요. 그런데 '어, 저 사람들한테 대미지가 되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강해서요. 그렇게는 팔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영화나 영상화되는 것들을 보면 항상 조마조마하게 보고, <미생> 시즌 1 드라마 1회가 나왔을 때는 스탭 분들이 여의도 호프집에 모여서 같이 보신다는 거예요. 제가 거길 갔어요. 감독님이 깜짝 놀라시는 거예요. 1회 보고 마음에 안들면 어떻게 하려고 왔냐고. 저는 상관없거든요. 왜냐하면 제가 이루고 싶은 것은 만화에서 다 이뤘기 때문에 드라마로 만화를 대신 만족하고 싶거나 이런 것은 없구요. 그러니까 당연히 응원하는 마음인 거죠. 그래서 같이 즐겁게 봤어요.
 
지 – 만화도 캐릭터가 대사를 하는 거잖아요. 배우들이 해서 민망하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내 일기장을 누가 읽어주는 느낌 같은 건가요?
윤 – 맞아요. 진짜 그래요. 맞아요. 그거예요. 그렇네. 진짜.(웃음) 그리고 그 대사를 쓸 때 그 톤이 있을 거잖아요. 그 대사를 할 때의 톤. 배우 분이 할 때는 제가 생각하는 그 톤과 다르게 나올 거잖아요. 그때 느끼는 차이에 대해서 '아, 이게 발성이 되니까 이렇게 나오는구나' 하고 생각하는 지점도 있구요. 낯선 경험이었죠.
 
지 – 팔고 나서 계약 기간 동안 영화가 안 만들어지면 다시 팔 수 있잖아요.(웃음)
윤 – 그런 부분은 정확하게 하죠.(웃음) 누룩미디어 회사가 있으니까 그런 부분은 정확하게 하지만, 만들어지고 났을 때 함께 하거나 초반에 판권을 팔 때 어떤 분들과 함께 할 것인지에 대한 부분을 고민하는데요. 저는 계약하고 나면 그냥 응원하죠. 진심으로.
(계속)
 
/ 지승호 인터뷰 전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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