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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 문화소통]‘ㆆ’ 소리도 살아있다···후설모음의 목구멍소리②

등록 2019.06.18 06:03:00수정 2019.06.25 10: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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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의 ‘문화소통’

국제음성기호(IPA) ‘모음 사각도’와 훈민정음 비교. 후설모음의 목구멍소리는 모두 ‘ㆆ(여린히읗)’. 한글맞춤법 외래어표기법에선 [ʌ]와 [ə]를 모두 ‘어’라 하였으나, [ʌ]는 ‘ㆆㅓ’임.

국제음성기호(IPA) ‘모음 사각도’와 훈민정음 비교. 후설모음의 목구멍소리는 모두 ‘ㆆ(여린히읗)’. 한글맞춤법 외래어표기법에선 [ʌ]와 [ə]를 모두 ‘어’라 하였으나, [ʌ]는 ‘ㆆㅓ’임.

【서울=뉴시스】 지난 편에서 언급한 것처럼, 훈민정음 해례본에서는 ‘ㆆ’ 소리의 특징에 대해 ‘深(심)’으로 설명하였다. 해례본이 발견된 이래 대다수 국어학자들은 그 ‘深’자에 대해 ‘깊다’로, 반대어인 ‘淺(천)’에 대해서는 ‘얕다’로 단순 번역하였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게 단순치 않다. 그렇다면 해례본 내 ‘深’과 ‘淺’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일까?

훈민정음해례 편 4~5장에서는 중성 ‘•, ㅡ, ㅣ’에 대해 ‘深’과 ‘淺’을 사용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舌縮而聲深. ㅡ舌小縮而聲不深不淺. ㅣ舌不縮而聲淺.” 생략된 부분을 넣어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는 혀가 뒤로 오그라져서 그 소리는 혀의 수축 정도가 심하다. ‘ㅡ’는 혀가 조금 오그라져서 그 소리는 혀의 수축 정도가 심하지도 약하지도 않다(중간). ‘ㅣ’는 혀가 오그라지지 않아서 그 소리는 혀의 수축 정도가 약하다.”(번역: 박대종)

이를 통해 우리는 훈민정음 해례본에 쓰인 ‘深(깊을 심)’자는 ‘깊다’가 나타내는 여러 의미 중 ‘정도가 심하다’를, ‘淺(얕을 천)’자는 ‘정도가 약하다’를 뜻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정도’라 함은 혀가 입안 뒤쪽으로 오그라드는 ‘혀의 수축 정도’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해례본의 이와 같은 설명은 현대 언어학에서 말하는 전설모음, 중설모음, 후설모음의 이론과 일치하여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전설모음(前舌母音)은 입천장의 중간점을 기준으로 앞부분, 곧 전설면과 경구개 사이에서 조음되는 모음으로 ‘ㅣ(이)’가 대표적이다. 중설모음은 혀가 전설모음과 후설모음 중간에 위치하며, ‘ㅡ(으)’가 대표적이다. 후설모음은 혀의 정점이 입 안 뒷부분에서 발음되는 모음으로 ‘•, ㅗ, ㅜ’ 등이 그에 해당한다.

혀가 입안 뒤쪽으로 오그라진 상태에서의 모음은 입안 뒷부분에서 소리 날 수밖에 없다. 그것이 ‘후설모음’ 또는 ‘후설중성’이다. 따라서 ‘ㅇ’ 보다 더 빠른 소리인 초성 ‘ㆆ’은 혀의 수축되는 정도가 심한 ‘후설모음’에 사용되는 목구멍소리다. 그에 비해 ‘ㅇ’은 혀의 수축 정도가 약하거나 중간쯤인 ‘전설 및 중설모음’에 사용되는 목구멍소리로, 둘은 구별된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모음’과 ‘중성’의 차이에 대해 정확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국제음성기호에서 [i]는 바로 앞에 자음 없이 단독으로 쓰일 땐 ‘이’에 해당하는 ‘모음’이지, 중성 ‘ㅣ’가 아니다. [ki]처럼 앞에 자음이 붙을 때만 훈민정음 중성 ‘ㅣ’같이 작용한다. 홀로는 ‘ㅇ’ 더하기 ‘ㅣ’의 완전한 음이다. 2019년 6월 4일자 ‘훈민정음에서 음(音)은 성(聲)과 다르다’ 편에서 밝힌 것처럼, 중성 ‘ㅣ’는 음소일 뿐, 그것만으론 결코 음이 될 수 없다. ‘ㅣ’를 편의상 ‘ㅇ’을 붙여 ‘이’로 읽게 하는 지금의 학교교육이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진실은 이렇다. 국제음성학회는 ‘ㅎ[h]’과 같은 계통의 목구멍소리 ‘ㅇ’과 ‘ㆆ’에 해당하는 자음을 만들지 못했다. 대신 <사진>에서처럼 ‘ㅇ’과 ‘ㅡ’의 합침인 ‘으’에 해당하는 중설모음 [ɨ]자와, ‘ㆆ’과 ‘ㅡ’의 합자에 해당하는 후설모음 [ɯ]자는 만들어냈다. 이는 훈민정음과 경쟁 및 보완 관계에 있는 국제음성기호를 이해함에 있어 매우 중요한 사항이다. 고로 ‘音(소리 음)’은 [ɯm]으로, ‘淫(음란할 음)’은 [ɨm]으로 표기해야 한다.

‘淫(음)’의 ‘으’는 혀가 조금 수축되는 중설모음이고, ‘音(음)’의 ‘으’는 혀가 뒤쪽으로 더 수축되면서 목구멍이 좁아지며 빠르게 발음되는 후설모음이다. 비록 미세한 차이가 있지만, 국제음성기호를 보고 세계 많은 이들이 구별하고 있고, 또 세종대왕도 구별하였듯 우리도 ‘ㅇ’과 ‘ㆆ’을 구별해서 써야 한다. <사진>에 나오는 국제음성기호 후설모음들의 초성은 모두 훈민정음으론 ‘ㆆ’이다. 그런데 우린 그 음가가 소실됐다는 교육에 따라 쓰지 않고 있다. 하지만 현대한국어 ‘오’와 ‘우’의 음가는 그에 해당하는 국제음성기호 [o], [u]가 증명하듯 모두 후설모음이니, 후설모음의 목구멍소리 ‘ㆆ’은 지금도 우리 말소리에 생생히 살아있다.

대종언어연구소 소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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