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백자이동궁명사각호 & 중화궁인 국내로, 뉴욕경매에서 구입

등록 2019.06.19 17:00:13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백자이동궁명사각호와 중화궁인

백자이동궁명사각호와 중화궁인

【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조선 시대 왕실 도장과 도자기가 미국 뉴욕 경매를 통해 돌아왔다. 조선 시대 숙선옹주(1793~1836)가 살던 궁에서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백자이동궁명사각호(白磁履洞宮銘四角壺)'와 조선 시대 왕실 인장 '중화궁인(重華宮印)'을 문화재청이 들여왔다.

백자이동궁명사각호와 중화궁인(바닥면)

백자이동궁명사각호와 중화궁인(바닥면)


3월 뉴욕 경매에 나온 이들 유물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2월 국외 경매현황을 점검하다가 발견했다. 2~3월 전문가의 가치평가와 문화재청의 구매 타당성을 거쳐 경매로 구매했다.
 
 문화재청과 문화재지킴이협약을 맺고 한국 문화유산 보호를 지원한 온라인 게임회사 라이엇 게임즈의 기부금으로 사들였다. 매입가는 공개하지 않았다.    
백자이동궁명사각호

백자이동궁명사각호

백자이동궁명사각호는 조선 19세기 분원 관요에서 제작된 사각호다. 바닥면에 푸른 색 안료인 청화(靑華)로 쓴 ‘履洞宮(이동궁)’이란 명문이 있다. 분원 관요는 조선 시대 왕실·관청용 도자기 수급을 위해 경기도 광주에서 운영된 도자기 제조장이다. 

높이 10.2㎝ 정도의 이 백자호는 문헌이 아닌 실물자료를 통해 '履洞宮'이 나타난 드문 사례다. 최경화 서강대학교 전인교육원 강사는 백자호의 가치로 정확한 소용처, 구체적 제작연대, 당시 백자의 최고 수준 등 3가지 측면을 꼽았다. 
 
궁은 왕실 가족이 사용하는 장소에 붙이던 명칭으로 왕자와 공주, 옹주가 혼인 후 거처하던 집도 궁으로 불렀다. 왕실 가족의 궐 밖 궁가는 사동궁과 계동궁 등 지명을 따서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았다.
백자이동궁명사각호

백자이동궁명사각호

백자호에 있는 ‘이동궁’의 이동도 서울의 지명이다. 이 백자호는 혼인 후 이동에 거주한 것으로 알려진 숙선옹주의 궁가에서 사용된 기물로 추정된다. 최경화 강사는 "이동궁은 1804년 조성된 궁이기 때문에 이 백자호는 1804년 이전에 나타날 수 없는 현상"이라면서 "최고 백자 항아리를 구체적으로 알려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이 유물의 중요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중화궁인

중화궁인


중화궁인의 도장 손잡이는 상서로운 짐승인 서수(瑞獸) 모양이다. 크기 7.2×7.2×6.7㎝, 무게는 861g 정도다. 도장에 글자를 새긴 면은 '重華宮印(중화궁인)'을 전서와 해서가 혼용된 서체로 조각됐다. 이 제작기법 수준은 덕온공주 인장보다 떨어지고 거칠게 표현된 부분이 있다.  
중화궁인

중화궁인

중화궁은 '승정원일기' '일성록' '비변사등록'에 언급되어 있다. 서준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중화궁은 남아있는 전각이 없어 정조에서 고종대에 창덕궁 경내에 있었던 건물로 추정하고 있다"며 "중국의 중화궁은 중국 건륭제가 황자 시절 거처한 곳이어서 이 궁은 동궁과 관련된 건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이번 문화재 환수는 2017년 '효명세자빈 죽책', 2018년 '덕온공주 동제인장'과 '덕온공주 집안 한글자료'에 이어 조선 시대 왕실 관련 연구의 외연 확장의 계기가 될 전망이다.

경매 전 익명의 미국인이 소장하고 있던 이들 문화재는 앞으로 국립고궁박물관이 관리한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