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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이동궁명사각호 & 중화궁인 국내로, 뉴욕경매에서 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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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6-19 17: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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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이동궁명사각호와 중화궁인
【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조선 시대 왕실 도장과 도자기가 미국 뉴욕 경매를 통해 돌아왔다. 조선 시대 숙선옹주(1793~1836)가 살던 궁에서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백자이동궁명사각호(白磁履洞宮銘四角壺)'와 조선 시대 왕실 인장 '중화궁인(重華宮印)'을 문화재청이 들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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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이동궁명사각호와 중화궁인(바닥면)

3월 뉴욕 경매에 나온 이들 유물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2월 국외 경매현황을 점검하다가 발견했다. 2~3월 전문가의 가치평가와 문화재청의 구매 타당성을 거쳐 경매로 구매했다.
 
 문화재청과 문화재지킴이협약을 맺고 한국 문화유산 보호를 지원한 온라인 게임회사 라이엇 게임즈의 기부금으로 사들였다. 매입가는 공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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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이동궁명사각호
백자이동궁명사각호는 조선 19세기 분원 관요에서 제작된 사각호다. 바닥면에 푸른 색 안료인 청화(靑華)로 쓴 ‘履洞宮(이동궁)’이란 명문이 있다. 분원 관요는 조선 시대 왕실·관청용 도자기 수급을 위해 경기도 광주에서 운영된 도자기 제조장이다. 

높이 10.2㎝ 정도의 이 백자호는 문헌이 아닌 실물자료를 통해 '履洞宮'이 나타난 드문 사례다. 최경화 서강대학교 전인교육원 강사는 백자호의 가치로 정확한 소용처, 구체적 제작연대, 당시 백자의 최고 수준 등 3가지 측면을 꼽았다. 
 
궁은 왕실 가족이 사용하는 장소에 붙이던 명칭으로 왕자와 공주, 옹주가 혼인 후 거처하던 집도 궁으로 불렀다. 왕실 가족의 궐 밖 궁가는 사동궁과 계동궁 등 지명을 따서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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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이동궁명사각호
백자호에 있는 ‘이동궁’의 이동도 서울의 지명이다. 이 백자호는 혼인 후 이동에 거주한 것으로 알려진 숙선옹주의 궁가에서 사용된 기물로 추정된다. 최경화 강사는 "이동궁은 1804년 조성된 궁이기 때문에 이 백자호는 1804년 이전에 나타날 수 없는 현상"이라면서 "최고 백자 항아리를 구체적으로 알려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이 유물의 중요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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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궁인

중화궁인의 도장 손잡이는 상서로운 짐승인 서수(瑞獸) 모양이다. 크기 7.2×7.2×6.7㎝, 무게는 861g 정도다. 도장에 글자를 새긴 면은 '重華宮印(중화궁인)'을 전서와 해서가 혼용된 서체로 조각됐다. 이 제작기법 수준은 덕온공주 인장보다 떨어지고 거칠게 표현된 부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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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궁인
중화궁은 '승정원일기' '일성록' '비변사등록'에 언급되어 있다. 서준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중화궁은 남아있는 전각이 없어 정조에서 고종대에 창덕궁 경내에 있었던 건물로 추정하고 있다"며 "중국의 중화궁은 중국 건륭제가 황자 시절 거처한 곳이어서 이 궁은 동궁과 관련된 건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이번 문화재 환수는 2017년 '효명세자빈 죽책', 2018년 '덕온공주 동제인장'과 '덕온공주 집안 한글자료'에 이어 조선 시대 왕실 관련 연구의 외연 확장의 계기가 될 전망이다.

경매 전 익명의 미국인이 소장하고 있던 이들 문화재는 앞으로 국립고궁박물관이 관리한다.


suejeeq@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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