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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영미 "사람들은 내가 직구만 던지는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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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6-25 17:41:27  |  수정 2019-07-08 15:50:18
새 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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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문학계 '미투'(MeToo) 운동을 촉발한 최영미 시인이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동교로 한 카페에서 열린 '다시 오지 않는 것들'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새로운 시집 소개를 하고 있다. 2019.06.25. bjko@newsis.com
【서울=뉴시스】신효령 기자 = "시 '괴물'을 발표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시를 쓸 때 젊은 여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었다. 이미 문단 내 성폭력 문제가 2016년 가을 불거졌다. 문단 성폭력은 여고생으로부터 시작했다. 내가 너무 늦게 쓴다는 생각이었다. 미안한 마음을 갖고 썼다. '괴물' 시를 쓴 것을 두고 누군가는 '신의 한수였다'고 했다. 후회해봤자 소용없고, 이미 벌어진 일이다. 1심에서 이겼고, 이렇게 흘러가는 것을 나의 운명이라고 받아들이고 싶다."

문단 미투운동을 촉발한 시인 최영미(58)가 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이미출판사)을 낸 소회를 털어놓았다.

이번 시집에서 그녀는 자신의 안과 밖에서 진행된 변화를 원숙해진 언어와 강렬한 이미지로 표현했다. "시집을 내면서 변호사들에게 시를 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검토를 부탁했다. 직접적으로 다룬 두 편은 뺐다. 그럼에도 직접 다뤘다고 독자들이 느낀다면 그건 내 시에 대한 칭찬이다. 그만큼 표현력있게 다뤘다고 봐준 것이라 생각하려고 한다."

일상에서 건져올린 시편이 많다. 시인 고은(86)의 성추문을 처음 폭로한 시 '괴물'(2017년 9월 계간 '황해문화')도 실려있다. '괴물'은 작가 'En'이 후배 작가를 성추행한 사실을 담고 있다. 'En선생'이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는 작품 속 설정으로 지난해 2월 고은 시인의 실명이 공개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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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문학계 '미투'(MeToo) 운동을 촉발한 최영미 시인이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동교로 한 카페에서 열린 '다시 오지 않는 것들'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새로운 시집 소개를 하고 있다. 2019.06.25. bjko@newsis.com
최 시인은 ""황해문화에 '괴물'을 발표한 것은 서지현 검사의 폭로 몇 달 전의 일이다. '괴물'을 황해문화에 보낸 게 2017년 10월20일이다. 서 검사의 폭로는 2018년 1월 말이다. '황해문화'으로부터 청탁받은 건 2017년 9월 중순이다. 페미니즘에 관련된 글을 써달라고 청탁받았다. '누가 나에게 청탁했냐'고 나중에 물어봤더니 편집위원이 아니라 실무진에서 했다고 들었다. 그 실무진은 나와 안면도 없던 사람이었다. 문단 권력을 쥔 사람이 평론가, 교수, 심사위원 등 대부분 남성이다. 그들이 아주 오랫동안 문단에서 권력을 쥐고 있었다. 그들이 당연히 불편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페미니즘 비평이 발달해있다. 문화예술계의 성폭력을 제대로 건드리지 못했다기보다는 직접적인 고발이 없었던 것이다. 논리로서 페미니즘을 이야기했지만, 어떤 운동이 힘을 받으려면 구체적이어야 한다. 삶에 기반도 둬야 한다. 작년에 미투 운동이 활성화되면서 이슈가 된 것 같다."

이미출판사는 최 시인이 설립한 회사다. "4월 초에 출판사를 등록했다. 그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변호사와 점심을 먹었다. 마포구청에 가서 출판사 등록을 해야 한다. 기분이 너무 설렜다. 나와 가장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 사업이라고 생각했는데, 흥분해서 다리를 삐었다. 출판사 등록이 너무 빨리 끝났다. 예전에 발표한 시 '이미'를 출판사명으로 썼다. 로고도 내가 만들었다. 이게 보통 일이 아니다.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다. 시인에서 출판사 대표가 되는 것이 내 몸에 있는 피를 뺐다가 다시 사업가의 피를 넣는 것 같았다. 인쇄소라든가, 출판사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았지만 정보가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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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문학계 '미투'(MeToo) 운동을 촉발한 최영미 시인이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동교로 한 카페에서 열린 '다시 오지 않는 것들'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새로운 시집 소개를 하고 있다. 2019.06.25. bjko@newsis.com

1992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했다.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 '꿈의 페달을 밟고' '돼지들에게' '도착하지 않은 삶' '이미 뜨거운 것들', 장편소설 '흉터와 무늬' '청동정원' 등을 냈다.

등단 초기 문단에서 경험한 일을 떠올리면서 힘든 심경을 토로했다. 시 '등단소감'을 직접 낭송하기도 했다.

'내가 정말 시인이 되었단 말인가/ 아무도 읽어주지 않아도/ 멀쩡한 종이를 더럽혀야 하는// 내가 정말 시인이 되었단 말인가/ 신문 월평 스크랩하며/ 비평가 한마디에 죽고 사는// 내가 정말 썩을 시인이 되었단 말인가/ 아무것도 안 해도 뭔가 하는 중인/ 건달 면허증을 땄단 말인가// 내가 정말 여, 여류시인이 되었단 말인가/ 술만 들면 개가 되는 인간들 앞에서/ 밥이 되었다, 꽃이 되었다/ 고, 고급 거시기라도 되었단 말인가'('등단소감'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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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문학계 '미투'(MeToo) 운동을 촉발한 최영미 시인이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동교로 한 카페에서 열린 '다시 오지 않는 것들'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새로운 시집 소개를 하고 있다. 2019.06.25. bjko@newsis.com
"'등단소감'은 등단 직후에 썼던 시다. 이 시는 1993년 민족문학작가회의 회보에 실렸다. 당시에는 등단하면 소감을 쓰게 되어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시집에 넣지 못하다가 2000년 에세이집 '우연히 '내 일기를 보게될 사람'(사회평론)에 출처를 밝히며 원문을 수록했다. 등단 직후 문단 술자리에 나가서 내가 느낀 모멸감을 표현한 시다. 작가회의 행사하러 갔는데 가만히 서 있으면 뒤에서 엉덩이를 만지고 성희롱 언어가 오갔다. 처음에는 발끈했는데 나중엔 무뎌지더라. 불편했으니까 이런 시를 썼던 것 같다."

최 시인은 "시를 쓸 때 거의 아무 생각을 안 하고 쓴다"고 돌아봤다. "어떻게 하면 정확하게 표현할까에 집중한다. 어떤 때는 우회적으로 다루는 게 효과적일 수 있다. 나는 가끔 변화구를 던지는 투수인데, 사람들이 직구만 던지는 줄 안다. 비유가 살아있다는 소리를 등단했을 때 많이 들었다. 문학성이라는 잣대는 나름대로 주관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 글에 자신이 있다. 나를 인정해요. 다른 사람이 나를 인정하고 안하고는 중요하지 않다. 터무니없는 자신감일 수 있지만, 그것이 오늘까지 나를 이끈 것 같다. 다 그의 사람들인데, 온전한 정신으로 큰 실수를 안 하고 법정다툼까지 온 것은 나에 대한 확신, 자신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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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문학계 '미투'(MeToo) 운동을 촉발한 최영미 시인이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동교로 한 카페에서 열린 '다시 오지 않는 것들'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새로운 시집 소개를 하고 있다. 2019.06.25. bjko@newsis.com
한편 고씨는 지난해 7월 최씨와 언론사를 상대로 10억7000만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올해 2월 최씨와 언론사에 대한 각 청구를 기각했다. 언론사에 허위 내용을 제보한 시인 박진성(41)씨의 1000만원 배상 책임만 인정했다. 고씨가 1심 결과에 불복해 항소하면서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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