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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전송이 “덩실덩실 국악, 재즈 스윙처럼” 괴물보컬 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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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7-12 06:06:00
‘여우락 페스티벌’ 무대 관심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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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송이 ⓒSusanna Drescher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음악깨나 듣는 사람들에게, 올 여름 가장 핫한 음악 축전은 록 페스티벌이 아니다. 그들은 화려한 라인업을 뽐내는 국립극장 ‘여우락(樂) 페스티벌’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여기 우리 음악이 있다’의 줄임말을 타이틀로 내세운 이 축제는 한국 전통음악이 뿌리지만, 다양한 실험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재즈, 클래식 등이 더해지면서 어디서도 보기 힘든 무대, 들을 수 없는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올해 10주년을 맞이해 한발 더 나아갔다. 10일 한남동 블루스퀘어 아이마켓홀에서 펼쳐진 개막 공연 ‘양방언의 여우락’의 잼 세션이 증명했다.

여우락 1대 예술감독을 지낸 양방언(59)과 베이시스트 무라타 다카유키 등 ‘여우락 드림 오케스트라’ 멤버들이 막바지에 변주한 아리랑을 들려줬고, 청중은 음악 열병을 앓듯 들떴다.

3대 예술감독 원일(52)이 이끄는 ‘13인의 달아나 밴드’의 위용도 만만치 않다. 12일 오후 8시 블루스퀘어 아이마켓홀에서 공연하는 이 밴드는 장르 불문, 어벤저스급 음악가들이 뭉쳤다.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에서 영감을 받아 이름이 붙여진 밴드인 만큼, 음악적으로 무시무시한 음악가들이 대거 포함됐다.

원일(사운드 메이킹·DJ·보컬·타악)을 중심으로 강권순(정가), 이희문(경기민요), 박경소(가야금), 박범태(타악·구음), 박지하(피리·생황), 서영도(베이스), 원나경(해금), 윤서경(아쟁), 임용주(모듈러 신시사이저), 최우준(기타), 한웅원(드럼)이 가세했다. 어느 누구도 그냥 이름만 부를 수 없는 음악가들이다.

이 가운데서도 재즈 보컬 겸 작곡가 전송이(35)를 향한 관심이 크다.
 
재즈, 시나위, 일렉트로닉 등 용광로와 활화산 같은 공연에 화룡점정할 비장의 카드다. 작년 그녀가 발매한 정규 1집 ‘무브먼트 오브 라이브스(Movement of Lives)’에  수록된 그로테스크한 곡 ‘노벰버 앵거(November Anger)’를 들은 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전송이가 여우락에 참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2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전송이를 만난 원일 감독이 러브콜을 보냈다. 이번 여우락 연습 내내 무엇을 주문하든 툭툭 쏟아내는 전송이의 보컬에 그는 그녀를 “A.I”라고 수차례 호명하기도 했다.

전송이는 여우락에 참여하면서 재즈와 국악이 비슷한 점이 많다는 점에 새삼 놀랐다. “재즈 스윙처럼 국악에서도 ‘덩실 덩실’거리는 부분이 있어요. 현재의 모던한 재즈는 아카데믹한 요소가 많이 포함돼 있지만 초기에는 교육을 받지 않아 자유로웠는데 국악의 뿌리와 색깔이 비슷하죠. 조합이 조화를 이룰 수밖에 없어요.”
 
전송이의 뿌리는 강원 태백이다. 이 작은 도시에서 태어나서 자란 전송이는 다니던 피아노 학원 지하에서 사물놀이를 배웠다. 정규 1집의 ‘정선 아리랑’은 괜히 수록된 곡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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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전교조 영어교사들이었다. 선생님들의 모임에는 항상 예술이 함께 했다. 전송이와 동생은 부모를 따라 다니며 노래를 했고, 그림을 그렸다. 동생은 현재 디자이너다.

“부모님이 항상 예술에 대한 갈망을 갖고 계셨어요. 항상 예술적인 환경에 노출됐던 이유죠.”

재능이 있는 아이는 튈 수밖에 없다. 중학생 시절 합창 시간에 교사가 성악을 권했다. 하지만 전국 성악 경연대회 도중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고, 이것이 트라우마가 돼 노래를 그만뒀다.

 부모는 전송이의 음악 재능이 아까웠다. 만 17세 때 지인의 추천으로 오스트리아로 향했고, 그라츠 음대에 합격해 작곡을 공부하게 된다. 악기의 다양한 요소를 활용하는 등 독특한 소리를 만들어내는 독일 작곡가 헬무트 라헨만 등의 음악이 흥미로웠다. 그녀가 국악의 산조 형식을 빌려 쓴 곡은 현지 라디오 방송에서 울려 퍼지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보컬이 더 맞다’는 것을 깨닫고 2008년 스위스 바젤 음대에 들어갔다. 재즈보컬 전공이었다. ‘노래 부르는 즐거움’을 깨달은 이후부터 일사천리였다.

이후 장학생으로 선발돼 미국 버클리 음대로 옮겼다. 2011~2014년 재학 기간 연주자 과정 학생 중 단 한 명에게 수여되는 ‘빌보드 장학금’, 거물 프로듀서 퀸시 존스가 선발한 한국인 5명에게 주는 장학금인 ‘퀸시 존스 스콜라십 바이 CJ’도 받았다.

이후 뉴욕 중심으로 활동을 꾀했다. 하지만 엔터테인먼트 음악이 대세가 된 현지에서 재즈로 먹고 사는 일은 쉽지 않았다. 재즈 연주자들을 제대로 대접해주는 클럽도 찾기 힘들었다. 

지난해 스위스의 세계적인 재즈 고등교육 프로그램 ‘포커스이어’에 한국인 최초로 선발된 것을 계기로 활동 무대를 유럽으로 옮겼다. “유럽은 생각할 시간이 많아서 좋아요. 지금이 제 보컬 인생 전환점이라고 여겨질 만큼, 고민을 많이 하는 시기거든요.”

‘여우락’ 참가도 인생 항해의 향방을 결정하는데 보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선아리랑’을 편곡하고, 장구를 배워보기도 했지만 국악을 하는 분들과 제대로 연주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나 다름없어요. 음악에 다가가는 방법의 차이를 배우는데, 모든 과정이 즐거워요. 하하.”

20대 이후로는 유럽, 미국에서 머물며 음악을 했기 때문에 한국적인 방식으로 무대를 만들어가는 법을 배우는 것도 이번이 거의 처음이다. “많이 설레요. 이번 기회에 더 멀리 보고 고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무대에서 괴물 같은 목소리로 노래하는 전송이가 수줍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럼, 클래식과 재즈에 이어 국악까지 아우른 사자후 보컬은 어디에 감춰뒀단 말인가. 소름이 돋았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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