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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 아트클럽]'시간여행자' 노은님 "화가 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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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7-22 17:12:43  |  수정 2019-07-23 12:54:52
화가가 된 파독간호사..."남과 비교 가장 멍청한 짓"
23살 한국 떠나 독일서 교수, 세계적인 화가로 우뚝
가나아트센터서 개인전...80년대 대형회화등 첫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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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현주 미술전문기자= 18일 오전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처음으로 개인전을 여는 노은님 작가(73)가 신작 '어느 봄날' 작품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오는 19일부터 8월18일까지 '힘과 시'를 주제로 80년대 그린 '대형 회화'등 30여점을 전시한다. 가나아트한남에서는 8월4일까지 그림에서 나온 것같은 조각등 80여점을 선보인다.

【서울=뉴시스】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아무 불편함없이 세상을 반바퀴 돌았어요. 가는데마다, 돌아다니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을 만나면 편했고. 그렇게 돌다보니 세상이 보였어요. '세계가 한 마음 마을'로 사는 것 같아요.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본대로 느낀대로. 있는대로, 하고싶은 대로 하고 살아왔어요."

파독 간호보조원 출신으로 세계적 화가가 된 노은님(73) 이야기는 '시간여행자'(넷플릭스)를 떠올리게 한다.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을까? 아무리 들어도 '신기한 인생'이다.

49년전 병원에서 일하다가 추천서로 미대에 들어갔고, 그림을 그렸다. 국립 함부르크 조형예술대학 교수를 지냈고, 55세에 독일인 동료 교수와 결혼도 했다. 지금은 독일 서남부 헤센주 미헬슈타트에 1000년이 넘은 고성에 딸린 극장을 개조한 작업실에서 그림만 그리고 산다.

한국에서와 달리 독일에서 완전히 '딴 사람'이 된 그의 생각은 단순했다. "팔자"라고 했다. "독일로 간 것도, 그림을 그리게 된 것도 화가 될 팔자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림도 주인 만난다고 하지 않나요?. 아무리 유행해도 자기에 맞는 옷을 찾잖아요. 그림 팔자가 있고, 옷도 팔자가 있어요. 만나는게 모두 그런 인연으로 되니까 나는 일부러 힘쓰고 그런걸 쫒아다니지 않아요."

한국에서 보다 독일에서 더 오래 살고 있는 탓일까. 느리고 어눌한 말투와 어깨를 구부리고 천천히 걷는 '노은임'은 그림을 설명할때 간혹 손목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건강한 모습이다.

"우울증도 없고, 병도 없어요." 우리나라에서 보면 할머니 나이인데, '천진난만한 그림' 때문인지 늙음의 궤도를 벗어나 있다.

'화가가 된 힘'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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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노은님, 나뭇잎배, 1987, Mixed media on paper, 206ⅹ505cm


◆과거: 파독 간호보조원에서 독일 국립 미대 입학

1946년 전주에서 9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사업가 아버지 덕분에 유복하게 자랐지만, 중학교 2학년 때 집안이 기울었다. 갑자기 어머니마저 돌아가면서 생업 전선에 나서야 했다. 경기 포천 면사무소에 취직해 결핵 관리요원으로 일했다.

'시간여행자' 조짐은 우연히 '파독 간호사 모집' 신문 광고를 보면서다.

1970년 스물세살, '파독 간호 보조원'에 뽑혀 세상 처음 비행기에 올라탔다. "불안했어요. 비행기 앞으로 버스가 왔는데, 너는 아니니까 타지 말라고 할까봐, 또 내리라고 할까봐 보따리를 움켜쥐고 있었어요."

그 비행기는 다른 시간속으로 들어갔다. 독일 함부르크 항구 근처 시립병원에서 뱃사람을 돌봤다. 낯선 생활이었지만, 독일인들은 정이 많아 웃고 지낸날이 많았다. 간호 보조원 생활 1년이 지났다.  한국에서 간호사들이 200명이나 들어오는 날이었다. 간호장은 겨우 독일어를 뗀 노은님을 데리고 공항으로 그들을 마중 가면서 "힘있고 일할만한 사람 3명만 골라오라"고 했다.

"그때 알았어요. 우리는 수출품이라는 것을..."  

독감이 걸렸다. 병석에 누워 출근을 못한 그녀에게 독일 간호장이 찾아왔다. 침대 밑에 숨겨둔 스케치북이 드러났다.

"네가 그렸니?" 깜짝 놀란 표정으로 묻자, 쭈빗거리며 말했다. "네. 병원 근무 외에 남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그렸어요." 그림을 배운적은 없었다. 독일에 오기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보고 싶어 초상화를 몇번 그려본게 다였다.

간호장은 '사랑'이었다. 1972년 함부르크 시립병원 회의실에 '노은님 그림'을 전시했고 그게 '나비효과'를 일으켰다. 전시 뉴스가 함부르크 지역신문 1면에 났고, 함부르크 국립미술대 교수인 한스 티만(1910~1977)의 눈에 들어왔다. 티만은 바우하우스 출신이자 칸딘스키와 파울 클레의 제자로 유명한 화가였다.
 
노은님이 굵게 쌍꺼풀진 눈을 밑으로 내리며 천천히 말했다. "티만이 그랬어요. 화가로 30년, 교수로 30년 살면서 이렇게 재주있는 사람은 처음봤다"고.
 
 "무조건 붙이고, 지원하라". 티만은 함부르크 국립미술대학에 입학 추천서를 써줬다.

"독일은 학비가 필요없지만 티만 교수덕분에 4년동안 계속 생활비를 받고 공부했어요. 학교를 졸업하고도 다양한 곳에서 수상을 하고, 예술지원금을 받고 살아 여적지 왔기때문에 경제적인 것에 신경도 안쓰고 관심도 없어요."

나뭇잎과 새를 마음대로 그렸다. 유치원생이 그린 것 같아 창피했던 그림인데 티만 교수는 ‘이게 진짜 그림’이라고 늘 칭찬했다.

'3년 계약' 파독 간호사는 한국에 돌아가지 못했다. 대신 '세상에 없던 그림을 그리는 동양 화가'가 됐다.  독일의 대표적인 미술평론가인 아넬리 폴렌은 “동양의 명상과 유럽의 표현주의를 잇는 다리”라고 극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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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노은님, 생명의 시초, 1984, Mixed media on paper, 258ⅹ203cm


◆현재: 순수의 세계...미헬슈타트 시립미술관에 '노은님 영구 전시관'

한국 여성작가로서는 국립 함부르크 조형예술대학 최초로 정교수로 임용되어 20여 년간 독일 미술 교육에 기여했다. 또 프랑스 중학교 문학 교과서에도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작품이 수록된 국제적인 화가로 이름을 올렸다.

기적은 계속된다. 오는 11월 독일 미헬슈타트의 시립미술관에 그의 작품을 전시하는 영구 전시관도 개관한다. 유럽의 권위 있는 공립미술관이 한국 미술가를 위한 영구 전시실을 내주기는 처음이다. 미헬슈타트 출신 인문학자 니콜라우스 마츠(1443~1513)와 유대학자 젝켈 룁 봄저(1768~1846), 책 디자이너 프리츠 크레들(1900~1973)와 이름을 나란히 하게됐다. 동심이 깃든, 순박한 그림, 아름다운 색감의 물고기를 그리는 화가로 유명하다.

"난 독일사람도 아니고, 뭐가 잘못된 게 아닌가 했어요. 그런데 미헬슈타트시 시장이 전화를 걸어와 시립미술관에 기념할 만한 ‘작가의 방’을 만드는데 세계적 미술기관 소속의 선정위원들이 추천했다고 하더라고요."

가나아트센터에서 연 전시는 이 기념비적 사건을 맞아 기획된 전시다. '갤러리 현대 작가'로 알려진 것과 달리 "나는 피카소가 아니니 어디든 오라고 하면 간다"며 "대형 회화를 전시하고 싶었는데, 그 뜻이 가나와 맞았다"고 했다. "큰 그림을 많이 그려서인지, 작은 그림 그리기가 더 어려워요."

가나아트는 펑창동 가나아트센터와 이태원 가나아트 한남의 두 전시 공간을 모두 내줬다. 자연과 생명을 주제로 한 1980~90년대의 대형 회화, 그의 예술관을 다룬 바바라 쿠젠베르그의 다큐멘터리 영화, 테라코타 조각, 신작 회화 등 100여점을 전시, 노은님의 순진무구한 작업을 총망라해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노은님의 70회 개인전이다.

단 한 번의 붓질로 완성된 '뛰는 동물'(1984), 보는 이에 따라 나뭇가지 혹은 사슴의 뿔로도 보이는 형상의 '나무가 된 사슴'(2019), 어둠 속 동물들의 연회를 그린 듯한 '밤중에'(1990) 등의 회화 속 생명체들은 단순하고 거친 선들로 그려졌지만, 일필휘지의 붓놀림이 만들어 낸 원초적인 생명력으로 가득하다.

과거 현재 미래가 뒤섞여 있는 전시는 그야말로 '무위자연(無爲自然)'이다.

노은님은 "생각이 있으면 아무것도 못 해요. 그냥 시작하면 저절로 붓이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그림 그리는 일도 낚시와 같아요. 어느 날은 많이 잡히고, 어느날은 안 잡히는 것처럼, 그림도 어느 날은 잘 그려지고, 어느날은 하나도 안그려져요. 한번도 뭘 그리겠다고 그려본 적은 없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종이에 붓하고 점하나 찍어도 그날 하루가 충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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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현주 미술전문기자= 파독 간호사에서 화가가 된 노은님 작가는 23년간 독일 함부르크 국립미술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단 한번의 붓질로 완성되는 동화같은 순수한 그림이 특징이다.


◆미래: 상어같은 여자 “오직 그림..이렇게 살고 있어 감사"
 
독일에서 50년째. 함부르크 사람들은 노은님을 ‘상어 같은 여자’라고 한다. "자기들은 피라미라며···"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적게 먹으면 가는 똥 싸고 많이 먹으면 굵은 똥 싸는 거'다.

 "대학을 졸업하고 5년 가량은 1년에 20회씩 전시했어요. 사람들이 미쳤다고 했어요. 전시를 왜 이리 많이 하냐고."

미친듯 그림만 그리던 20대는 번민과 방황의 늪에 빠져 있었다. '사람은 왜 살아야 하나?'  16년간 이 물음에 끌려다녔다.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 부러울 정도였어요. 자유를 꿈꿨어요. 한국에 있던 16살때 부터였는데, 내가 누군가 알고 싶고, 내가 있을 곳이 어디인가라는 생각이 서른이 넘어도 계속 됐어요."

"독일, 해외에 와서 환경이 바뀌어서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어디로 가서 살아야하나'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어요." 

 '어떤 힘'에 대한 의문이었다.
 
"저는요 항상 궁금한게 있었어요. 우연, 당연, 필연이라는거요. 애기가 왕실에 태어나면 '왕자'가 되고 '임금'이 되고 거지가 아들을 낳으면 거지로 사는지...왜 똑같이 사람을 만들어놓고 누구는 이렇게, 저렇게 되는지가 궁금했어요. 또 누가 이렇게 만들어놓고 처음부터 이렇게 살게 만드는지가..."

파독 간호사로 함부르크 항구 근처 시립병원에서 근무하던 시절, 큰 배를 항구에 정박시키기 위해 작은 배가 밧줄로 이를 끌어오는 모습을 보았다. 놀라운 광경이었다.

"저 큰 배를 움직이는 힘이 어떻게 작은 배에서 나오는가에 대한 의문으로, 그리고 그러한 힘은 어디에서 기원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이 생각은 80년대 화살표 방향으로 그려진 '생명의 시초'에 드러난다. 우주의 시작, 즉 태초란 이러했을 것이라는 작가의 상상력이 담긴 작품으로, 200호의 대형 화면을 가득 채운 화살표들은 각각의 방향으로 흐르는 힘의 양상을 표현한 것이다.
 
힘은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면서 자신은 "나뭇잎에 매달려 나뭇잎 사이에서 흔들리는 사람 같다"고 생각했다.

"16년동안 하늘이 안보일 정도로 벽을 쌓고 방황하고 살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새벽에 일어났는데 하나도 막힘이 없더라고요. 시원하게...어머, 웬일인가. 갑자기 몸이 편한걸 느꼈어요"
 
서른 두살때였다. "모든게 내러티브(Narrative)하다는 것을 갑자기 깨달은거죠 .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것을요."

'우주의 만물 섭리'를 알았다. "그 이후 여적지 한번도 그렇게 '인생이 뭐냐'고 묻지도 않고, 그냥 그대로 맘대로 살고 있어요. 병도 없고요. 16년간 고생한 보람이기도 한 것 같고, 고생 과정이 있어야 깨닫는 것인지 모르겠지만요."

그래서 '운명', '팔자'가 있다고 믿는다. "받아들이니까 모든게 술술 풀리더라고요."

"항상 고민하고 번민한 때를 돌이켜보니 남들과 비교를 많이 한거에요. 저 사람은 남자도 있고 돈도 많고, 나는 없는게 더 많은 사람이라고... 제일 멍청한 짓을 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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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사랑하는 사람들, 2017, Acrylic on canvas, 22.5ⅹ16cm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지구에서 동식물은 다 똑같이 살아간다는 것을 느꼈다”는 그녀는 "단순하면서도 편한 원시적인(primitive) 것을 좋아해 어느 나라를 가든 민속박물관을 먼저 찾아간다”고 했다.

대학시절부터 아프리카등 세계 여행을 다녔다. 아프리카는 4번이나 다녀왔다. 검은 색과 알수 없는 형상이 '아프리카 미술'을 떠올리게 하지만 검은색은 가장 칠하기 쉬운 색이고, 알수 없는 형상은 점이 이어져 선이 되고, 선이 이어져 새가 되고 꽃이되는 자연스런 행위라고 햇다.   

 "세계를 다녀보니, 동양 서양 모든 사람들은 문화교류 없이도 똑같은 생활습성을 갖고 있어요. 예술가로 살아가는게 아니라 인간으로 살아가기위해 본능적으로 뭘 만드는 거에요."

힘의 근원인 '생명'은 물, 불, 공기, 흙. 4대원소가 꼭 필요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작품안에는 새이면서 물고기이고, 벌레같은 불가사의한 형상들이 자유롭게 이어지고 뭉쳐지고 풀어진다. 동물과 식물, 인간 혹은 사물들을 실제와 같이 재현하거나 만들어내려는 의도는 찾아볼 수 없다.

  "모든 체험이 짬뽕이 되서 그림속에서 나와요. 어떤때는 뭘 그렸는지도 몰라요."

노은님이 즉흥적으로  '몸으로 쓴 한편의 시'다. “영적인 손님”이 찾아와 마치 잉태의 과정과도 같이 작품이 탄생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모든 생각을 잊어버리고 완전히 작업에만 몰두해 있다가, 더 이상 못하겠다 싶을 때, 뭔가 살아있는 것이 불쑥 나타나요. 내가 아무런 생각도 갖지 않는 순간에요. 그리고는 이 손님은 금방 사라져요. 임신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죠.그 사이 나는 마치 바위나 강, 혹은 꽃이나 들판처럼 산의 일부가 된 듯한 느낌이에요."
 
그래서일까. 그림은 순수한 세계로 이끈다. 말하지 않아도 ‘좋은 그림이다’고 느낀다.

21세기 현대인들을 그림으로 힐링시키는 노은님은 자신을 "구제된 사람"이라고 했다.

작가 말대로 팔자인걸까. 어떤 보이지 않는 존재가 있는걸까. 아니면 편견없이 대한 '독일인의 사랑'의 힘이었을까.

"인복이 많죠. 그림을 그리게 되면서 세계를 돌아다니고 사람들을 만나고, 우연히 나를 도와준 사람이 많아요. 너무 너무 신비스러운 세계, 그 속에서 내가 살고 있어요. 이렇게 살수 있어 감사하다는 마음밖에 없어요." 가나아트센터 전시는 8월18일까지. 테라코타가 있는 가나아트 한남 전시는 8월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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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노은님, 나무가 된 사슴, 2019, Acrylic on canvas, 130.2 x 97.2cm



hyu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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