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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역사를 왜곡하는 영화들, 왜곡보다 더 큰 문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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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8-04 06: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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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랏말싸미'에서 신미스님(박해일)이 한글 창제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면. 역사 왜곡 부분 중 일부다.


영화 '나랏말싸미'의 역사 왜곡 문제가 불거지며, 앞서 역사왜곡 논란을 낳은 영화들이 다시 소환되고 있다. 허구의 인물을 설정해 극을 전개하는 역사영화와 달리, 실존 인물이나 사건에 바탕을 둔 영화는 역사 왜곡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매년 역사 왜곡 문제가 불거진다. 최근 역사 왜곡 시비로 곤욕을 치른 영화 두 편을 소개하고, 이러한 현상이 왜 계속 발생하는지 짚어본다.

【서울=뉴시스】남정현 기자 = ◇군함도(2017)

영화 '군함도'는 흔히 말하는 '국뽕' 영화로 마케팅을 했지만, 개봉 후 역사 왜곡 논란에 휘말리며 지탄을 받았다. '베테랑'(2015)으로 천만관객을 달성한 류승완(46) 감독의 작품으로 개봉 전부터 대중의 관심이 컸다. 여기에 소지섭(42), 황정민(49), 송중기(34), 이정현(39) 등 호화 캐스팅으로 관심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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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군함도'에서 최칠성(소지섭)이 일본군에 대항해 조선인 노동자들의 탈출을 선도하는 장면. 역사적으로는 허구다.
하지만 개봉 후 관객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한·일 양국에서 논쟁이 있는 소재를 사용하면서 역사 고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황정민이 연기한 '이강옥' 역이 가장 큰 지적을 받았다. 군함도의 조선인 노동자를 친일파 지식인이 갈취했다는 이야기 구도는 관객들로 하여금 일제보다 조선인이 같은 조선인에게 더 악랄했다는 인상을 받게 했다. 또 악단장 이강옥이 딸 소희에게 음식을 가져다주거나, 일본인에게 뇌물을 바치는 장면은 당시 조선인들의 상황을 오해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일본은 당시 군함도에 상당한 수준의 복지시설이 갖춰져 있었고, 정상적인 광산업 경영이 진행되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강제징용노동자들의 월급은 한 달 50엔이었는데, 일본이 여러 명목으로 착복해 실제 수입은 아무것도 없었다. 비좁은 갱도로 진입하기 위해 소년들을 잡아 와 노동을 시켰으며, 평균 40도에 습도 95%인 해저 갱도에서 메탄가스가 폭발해 천장이 붕괴하는 사태도 잦았다. 매일 구타와 학대가 있었고, 굶주림 문제도 심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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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군함도에 강제 징용된 노동자들의 사진. 앙상하게 말라 드러난 갈비뼈가 당시의 영양상태를 드러낸다.
영화 속 일본이 자신들의 군함도 만행이 드러날까 두려워 섬 안의 조선인들을 모두 갱내에 몰아넣어 죽이려고 하는 상황도 완전한 허구다. 이런 상황에 처하여 400명이 대대적인 탈출을 감행하는 장면 또한 팩트가 아니다. 실제 군함도에서는 이런 학살 기도나 대규모 탈출이 밝혀진 바 없고, 비슷한 사건도 일어난 적이 없다. 

◇덕혜옹주(2016)

'덕혜옹주'도 왜곡 논란이 컸다. 영화는 동명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했다. 고종의 마지막 옹주인 덕혜의 삶을 다룬 작품으로 손예진(37)이 주인공을 연기했다.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외출'로 유명한 허진호(56) 감독이 연출했다. 이 작품은 무기력한 대한제국 황실을 미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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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운동 현장을 아쉬워하며 탈출하는 영화 '덕혜옹주' 속 덕혜옹. 역사적 사실과 반대된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덕혜옹주는 일본에 끌려온 강제징용노동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연설을 하며 독립운동을 도모한다. 이와 달리 실제 대한제국 황실은 일본에서 호의호식하며 지냈다. 덕혜옹주는 대마도 백작 소 다케유키와 정략결혼을 해, 당시 조선인들이 크게 분노하기도 했다. 덕혜옹주가 조현병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정상적으로 연설을 할 수 있었겠느냐는 지적도 따랐다. 

 영친왕에 관한 묘사도 왜곡됐다. 극중에서는 영친왕이 나라의 독립에 힘을 보태기 위해 일제로부터 도망치지만, 실제 영친왕은 일본에서 국빈 대우를 받으며 고위직까지 오른 인물이다. 상하이 임시정부로 망명을 추진한 의친왕 이강과 달리 영친왕 이은은 일제에 순응하는 삶을 살았다. 일본 육군 장교로 복무하며 1940년에는 육군 중장에 오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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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인 대마도 백작 소 다케유키 옆에서 미소짓고 있는 실제 덕혜옹주
김시무 평론가는 아쉬운 과거의 역사를 바람직하도록 재구성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짚었다. 김시무 평론가는 "역사학자인 김기봉 교수는 '꿈의 역사'라는 말을 했다. 실제 기록된 역사적 사실은 아니지만, (이랬었더라면 좋았겠다는 식이다) '덕혜옹주'가 영화 속에서 항일운동을 한 것처럼 그려진다. 덕혜옹주는 실제로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지 않나. 역사 왜곡은 맞다. 실제 덕혜옹주는 일본에 빌붙어 왕족으로 호의호식했는데, 영화 속에서 그의 친일 행적을 항일로 왜곡했다고 욕을 먹었다. 그 영화로 세미나가 몇 번 있었다. 그때 김기봉 교수 얘기가 '너무 정색하고 볼 필요가 뭐 있나. 실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덕혜옹주가 민족의식을 갖고 그렇게 했더라면 좋지 않았겠는가. 꿈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볼 수 있지 않냐'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시무 평론가는 영화 '나랏말싸미'와 관련해서도 "조목조목 비판하는 것은 역사학자의 몫이다. 그 당시를 극적 재미로, 유교사회를 이런 식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지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영화적 허용, 예술적 허용 범위 내에서 상상력의 폭을 넓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글 창제 작업이 쉽게 될 수 없다는 것은 다 알고 있지 않나. (조선시대에) 불교가 억압된 것에 대해 예술의 관점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정사 역사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작가적 상상력을 가미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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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랏말싸미'에서 세종대왕이 불승들과 함께 한글을 창제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

다만, 역사 속의 픽션이 대중적이고 상식적인 공감을 벗어나면 대중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아무리 새로운 관점을 예술에 적용하더라도 그것이 설득력 있는 논거에 바탕을 둔 것인지가 전제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관객들은 공감은 물론 지지를 보내기도 힘들다. 감독의 관점에서는 새로운 시도를 통해 예술적 성과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관객에게는 그것이 낯설고 심지어 역사 왜곡이라는 인식을 갖게 할 수도 있다. 제작진이 제시하는 영화적 세계가 과연 이 시대 대중 관객들에게 호응을 얻고 공감을 일으키는가가 영화 평가의 기준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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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랏말싸미'에서 신미스님은 세종대왕 앞에서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대립한다.
한편, 일부 전문가들은 '영화'에 대한 역사왜곡 자체를 문제삼는 일은 무의미하며, 이러한 논란의 이유와 해결 방안을 역사 교육의 적절성에서 찾기도 한다. 역사를 배우고자 한다면 영화와 드라마가 아닌 역사 교육, 역사서,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배워야한다. 하지만 충분한 역사교육이 부재하기 때문에, 국민들은 영화나 사극드라마를 통해 창작된 부분을 실제라로 믿는 경우가 있다. 이는 단지 분별력이 없는 아동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영화배우 유해진(49)은 "실제로 역사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영화를 통해 많이 배웠다. 영화 '말모이', '택시 운전사', '봉오동 전투' 등 작품을 해나가면서 역사를 배우는 것 같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영화의 주요 흐름에 역사 왜곡의 소지가 없더라도, 세세한 설정에는 각색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설정을 가감없이 실제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역사N교육연구소 소장인 심용환 성공회대학교 외래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사극 영화 등 관련 예술 작품이 나올 때마다 역사적 사실과 맞냐 안 맞냐는 논쟁은 상투적이라는 점에서 부정적으로 다가온다. 어떠한 정치적 의도를 갖고 노골적으로 역사를 왜곡하기 위해 만든 영화라면 모르겠으나, 역사 왜곡 논란은 영화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제대로 된 역사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 데서 찾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의 영화 등 문화예술 분야는 고증이나 기억의 복원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성장하는 창작의 영역이다. 논란이 되는 특정 인물이나 세력을 미화시키는 식으로 사회적인 파급효과를 내려는 작품은 문제가 있지만, 그 모든 시도를 역사왜곡이라는 하나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우리네 역사의식 성장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나랏말싸미'는 특정 인물이나 세력을 미화시키는 식으로 사회적인 파급효과를 내려는 작품이라는 면에서 이러한 시각에서도 면죄부를 받기 어려워 보인다.


nam_jh@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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