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것들에 숨 불어넣다···윤길중 '오브제, 소멸과 재생'
윤길중
이전까지 사과, 구두, 옥수수이던 것이 이전과는 다른 사과, 구두, 옥수수가 된 것이다. 형상과 색으로 쉽게 판단되 사물들이 색을 잃고 형태가 바뀜으로써 오히려 눈길을 끌고 의미를 드러내며 그 존재를 환기시킨다. 작가는 대상의 형태를 무너뜨리지 않고 그 안에 내재된 가치와 의미를 드러내고 싶어서 이렇게 작업했다고 설명했다. 사진가 윤길중이 2017년에 작업한 '시소(See Saw)'다.
불에 탐으로써 그 본디의 색과 형상을 잃고 다른 형색으로 재창조했던 '시소' 속 사물들의 인상이 2019년에 그를 화마가 지나가고 난 장소 앞으로 이끌었다. 대형화재가 일어났던 현장인 강원 고성으로 홀로 카메라를 들고 찾아간 이유다.
그곳에는 숟가락과 주전자, 밥이 가득 담긴 채 그대로 불타버린 밥그릇이 있었다. 받침과 바퀴는 사라지고 틀만 남은 의자와 자전거, 창이 있던 자리에 구멍이 뚫린 벽이 있었다. 형태와 기능이 사라지고 파편으로 남겨진 불 탄 사물들은 알아챌 만큼 익숙하면서 동시에 낯설었다.
두 대척점 사이에서, 불행한 오브제들에 대한 가냘픈 연민이 일었다. 작가는 아무도 눈여김 하지 않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사진에 담았다. 현실에서는 되돌릴 수 없는 그 가차 없는 '소멸'을, 사진만은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되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윤길중
윤길중
섬에 쓰러진 나무들을 대상화한 첫 전시 '픽처레스큐(picturesque)'부터 장애가 있는 신체를 찍은 '낫 뷰티풀 벗 뷰티풀(not beautiful but beautiful)', 철거를 앞둔 집들과 버려진 집기들을 기록한 '기억흔적',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무덤 앞 석상들을 찍은 '석인의 초상', 사찰의 풍경에서 대웅전만을 분리해낸 '큰법당'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지속해 온 작업들은 이러한 작가론을 예증한다.
윤길중
인터섹트(2019·미국 휴스턴), 헤드 온 포토 페스티벌(2019·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KIAF 아트 서울 2017(2017·서울 코엑스), 아트 스테이지 싱가포르 2017(2017·싱가포르), 브리사스 데 코레아(2016·스페인 GeleriaSaro Leon)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전시는 18일까지 오전 11시~오후 6시 관람할 수 있다. 개막식은 6일 오후 6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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