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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분업 깬 日…경제 보복 이면에 숨은 의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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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8-04 06:30:00  |  수정 2019-08-04 09:41:39
"韓 정부의 시스템반도체 육성 방해하려는 의도"로 풀이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모든 국가가 분업 체제 만들어와"
"소재·부품 과도하게 국산화, 韓 기업 경쟁력 잃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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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병문 기자 =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소녀상 앞에서 열린 '아베도발 규탄·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 촉구 정의당 정당연설회'에 참석한 어린이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9.08.03. dadazon@newsis.com

【세종=뉴시스】김진욱 기자 = 일본이 결국 화이트리스트(White-List·수출 우대국 목록)에서 한국을 제외했다. 한국과 일본 등 동북아시아 압축 성장의 배경이자 50여년간 이어왔던 분업 구조를 깨버린 셈이다.

일본은 강제 노역 배상 관련 한국 대법원 판결에 대한 불만을 핑계 삼아 경제 보복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세계 '시스템 반도체' 시장의 패권을 내주지 않겠다는 복심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시스템 반도체는 컴퓨터와 스마트폰 데이터의 해석·계산·처리 등 두뇌 역할을 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한국 정부가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삼고 세계 시장 공략에 적극적으로 나서려는 분야다.

일본 정부는 지난 2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주재로 각의(국무회의)를 열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내용의 수출무역 관리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 개정안은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경제산업성(주무 부처) 대신이 서명하고 아베 총리가 연서한 뒤 이달 7일 공포, 28일부터 시행한다.

화이트리스트는 무기 개발 등에 사용할 수 있는 전략물자(기술·소재·부품 등)를 수출할 때 허가 신청, 심사 등 절차를 간소화해도 된다고 여기는 국가 목록이다. 안전 보장 우호국 목록이라고도 한다. 이 목록에서 빠지면 1100여개로 추정되는 일본 전략물자를 수입할 때마다 일일이 허가를 받아야 한다. 품목 심사에만 최대 90일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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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AP/뉴시스】왼쪽부터 이시이 게이이치 일본 국토교통상, 아베 신조 총리, 아소 다로 재무상이 2일 도쿄에서 열린 각료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일본 아베 내각은 이날 한국을 무역 우대국가인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결정을 내려 주변국 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2019.08.02. 
세코 대신은 이날 오전 각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열고 "개정안에 관한 의견을 수렴하는 공모에 4만666건이 들어왔고 그중 90% 이상이 찬성 의견이었다"면서 "화이트리스트 배제는 한국의 수출 관리에 불충분한 점이 있었기 때문에 시행한 것으로 (노역 배상 판결에) 대항하는 조치는 아니다"라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일본의 수출 규제 강화 조치는 지난해 10월 '강제 노역 피해자의 청구권이 살아있다'는 대법원의 판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게 외교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특히 경제통상·산업 전문가들은 '일본이 대법원 판결을 빌미로 시작한 경제 보복을 확장, 칼끝을 한국의 시스템 반도체 산업을 겨눌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앞서 올해 3~4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시스템 반도체 시장 진출을 위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하고 "연구·개발(R&D)과 생산 시설 확충에 133조원을 투입하고 전문인력을 1만5000여명 채용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SK하이닉스는 용인 처인구 원삼면 일대에 120조원을 들여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있다.

이에 호응하기 위해 정부(산업통상자원부)도 2030년 팹리스 시장점유율을 10%까지, 파운드리를 35%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내용의 '시스템 반도체 비전과 전략'을 4월 발표했다. R&D 등을 지원하는 1000억원 규모의 팹리스 전용 펀드를 조성하고 각종 정책금융과 세제 혜택 제공을 약속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반도체 담당 연구원은 "일본 수출 규제 품목인 감광재(포토 레지스트)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최근 시장 진출을 천명한 시스템 반도체 제조의 핵심 공정에 쓰이는 소재·부품"이라면서 "현재 한국 정부도 시스템 반도체 산업 육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는데 이를 방해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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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병문 기자 =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이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일본 수출규제 조치 등 하반기 경제상황 점검과 관련해 열린 ‘기재부 긴급 경제상황 점검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19.08.03.(사진=기획재정부 제공) photo@newsis.com
정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기술 자립도를 높여 일본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각오다.

일본 수출 규제 대응이 필요한 기업의 제품 및 기술 개발 과정에서는 화학물질 등 인허가 기간을 단축하고 특별 연장근로도 허용한다. 대체 물품이나 원자재를 수입할 경우 관세를 40%포인트 인하하고 설비투자 자금과 소재·부품 해외 기업 인수·합병(M&A)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민간 전문가는 국산화율을 높이는 일은 바람직하다면서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100% 자국 조달이 불가능한 만큼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자유무역을 활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허윤 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모든 국가가 값싸고 품질 좋은 나라의 소재·부품을 사 최종재를 만들어 파는 방식으로 분업 체제를 만들어왔다"면서 "일본이 이 체제를 잠시 흔들고 있지만 소재·부품을 과도하게 국산화하려다가는 한국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을 우려가 있다"고 짚었다.


str8fwd@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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