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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최영진 “한국에서 연주한 바순, 깨어난 냉동인간 기분”

등록 2019.08.04 13:5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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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필하모닉 바순 수석

평창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열연

[인터뷰]최영진 “한국에서 연주한 바순, 깨어난 냉동인간 기분”

【평창=뉴시스】이재훈 기자 = “오랜만에 한국에서 연주자들과 함께 연주하니, 냉동인간으로 잠들어 있다가 깨어난 느낌이었어요. 하하.”

연주자는 악기를 닮는다. ‘평창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맏형 격인 바순 연주자 최영진(44)을 만나고 든 확신이다. 따듯하고 온화한 소리로 묵묵히 오케스트라의 저음부를 담당하는 바순처럼 최영진은 말없이 겸손한 자세로 후배들에게 공을 돌렸다.

부산예고와 한예종을 졸업한 최영진은 2000년대 초반부터 해외 오케스트라에서 활약했다. 노르웨이 트론트하임 심포니 수석, 일본 NHK 방송교향악단과 뉴재팬 필하모닉 객원 수석을 거쳐 현재 세계 정상급 도쿄 필하모닉 바순 수석이자 종신단원으로 있다.

 이처럼 화려한 이력이지만, 작년 손열음(33) ‘평창 대관령 음악제’ 예술감독이 ‘평창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에 합류해달라고 청했을 때 두근거리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손 감독이 세계 곳곳의 정상급 악단에서 단원으로 활약하는 20, 30대 한국인 연주자를 주축으로 구성한 이 오케스트라에서 10여년 앞서 길을 개척한 최영진의 존재는 대들보와도 같았다.

하지만 최영진은 “세대가 바뀐 느낌이었어요. 이런 훌륭한 친구들을 만나니 제가 배우는 것이 더 많더라고요. 제가 후배님의 덕을 봤다”며 자세를 낮췄다.

도쿄필은 1년에 420회의 연주를 소화하는 곳이라 휴가를 따로 내기 힘든데, 이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에 대한 애정이 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참여를 결정했다. 마침 연주 일정 조정이 가능한 운이 따랐고 손 감독도 도쿄필에 공문을 보내, 최영진의 참여를 요청했다.

이렇게 구성된 드림팀은 역시 호연을 들려줬다. 3일 저녁 강원 평창 알펜시아 리조트 뮤직텐트에서 손 감독이 협연한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은 조화로웠고,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5번은 일사불란했다. 최영진를 비롯한 관악기 연주자들의 정갈한 소리는 오케스트라를 든든히 받쳐주거나 선봉이 돼 이끌었다.

 세계 곳곳에서 한국인 관악기 연주자들이 활약하고 있지만, 최영진이 세계로 첫 발을 내딛을 때만 해도 한국은 관악기 불모지였다.

유럽 클래식음악계에서도 아시아인 연주자에게 쉽게 자리를 내주지 않을 때다. 최영진은 독일 하노버국립음대에서 최고연주자과정을 밟았는데 그의 스승이 바순계에서 내로라하는 거장이었음에도, 독일계가 아닌 스승으로부터 배웠다는 이유로 최영진에게 쉽게 오디션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최영진이 노르웨이 트론트하임 심포니에서 활약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세계 오케스트라 오디션 문이 열렸고 다양한 곳을 경험한 뒤 도쿄필에 안착하게 됐다.

최영진은 요즘 후배 관악기 연주자들의 기량이 일취월장했다고 봤다. “관악기 국제 콩쿠르 입상자 중에서 아시아인, 특히 한국인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어요. 조기 유학을 가고, 제대로 공부하면서 점점 수준이 높아졌죠.”

피아노를 연주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란 최영진은 어릴 때부터 관악기가 유독 재미있었다. 길거리에서도 리코더를 불고 다닐 정도로 ‘피리 부는 어린이’였다. 

해외 진출도 어릴 때부터 꿈 꿨다. 하지만 그가 자란 부산은 아무래도 서울보다 해외 유명 악단의 내한 기회가 적었다. 종종 해외 오케스트라가 부산을 찾는 날이면, 공연을 관람한 뒤 백스테이지로 막무가내로 찾아가 바순 연주자들의 리드(reed·관악기에서 소리를 내는 부분)를 받아내는 것이 그의 중요한 일 중 하나였다.

이렇게 바순을 사랑했고, 여전히 사랑하는 최영진은 최근 한 가지 고민에 빠졌다. 학생 때는 매번 연주를 앞두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설렘을 느꼈는데, 프로가 되면서 무의식적으로 연주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경계심이 든 거다.

이런 상황에서 ‘평창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좋은 자극이 됐다며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제가 속한 단체에서 잠시 빠져나와 새롭고 젊은 연주자들과 연주하다 보니 환기가 되는 거예요. 잠들어 있던 음악 열정이 깨어나는 기분이 든다고 할까요. 열정의 불씨가 살아나는 것 같아요. 정말 큰 것을 얻고 가요. 음악적으로, 인간적으로 참 감사합니다.”

분명 최영진이 말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듬직한 바순 소리가 함께 들렸다.

그의 바순 연주를 서울에서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아직 남아 있다. 17일 오전 11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2019 예술의전당 토요콘서트’다. 최영진은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와 함께 훔멜 바순 협주곡을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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