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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우리 산업 '민낯' 보인 日 수출규제, 기회로 삼아야

등록 2019.08.09 15:2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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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우리 산업 '민낯' 보인 日 수출규제, 기회로 삼아야

【서울=뉴시스】표주연 기자 = “우리 회사 이름은 물론, 지역명 조차도 노출하지 말아주세요.”
 
일본의 수출규제가 본격화된 뒤 약 한달. 속 얘기를 듣기위해 찾아간 중소기업 대표가 뜻밖의 부탁을 했다. 중소기업인들은 일본과의 무역분쟁 피해 사실 노출을 극도로 꺼려했다. 심하게 표현하면 두려워하기도 했다.

때문에 인터뷰 자체를 거절하는 곳도 꽤 많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거래하는 대기업의 귀에 들어갈까봐서다. 이들은 자신들이 털어놓는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나 불만이 보복이 되서 돌아올까 걱정했다.

대기업의 2차, 3차 밴더 역할을 하는 중소기업이 현재 우리나라 산업구조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 좋은 기술을 개발해도 대기업이 써주지 않는 현실을 제대로 이야기할 중소기업 대표는 몇 되지 않는다.

기가막힌 이야기도 들린다. 중소기업이 일본 수출규제로 수출입 계약이 엎어질 경우 당장 은행 대출 심사가 까다로워진다고 한다.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엎친데 덮치는 격이다.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필사적으로 피해가 있더라도 노출을 꺼릴 수 밖에 없다.

‘호환마마 보다 무서운 것은 탐관(貪官)’이라고 했다.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에 가까웠던 호랑이보다, 전염병보다도 '갑질'을 하는 관료를 더 무서워하고 증오했다.

중소기업이 지금 처한 현실이 이와 비슷하다고 느낀다. 일본의 수출규제보다도, 미중 경제분쟁보다도, 침체된 내수경기보다 무서운 것은 '갑질'이다. 그들을 진짜 괴롭히는 것은 평생을 투자해 만든 물건을 팔면서도 거래 상대의 눈치를 봐야하는 수직적이고 기형적인 산업구조다. 그 민낯이 일본 수출규제로 드러나고 있다.

많은 중소기업 대표이 이번 일본 수출규제를 '기회'라며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중소기업인들은 사장됐던 자사의 기술과 제품이 빛을 볼 수 있는 기회라는 의미에서 의지를 다지는 것이겠지만, 우리나라와 산업 전체를 봐도 '기회'라는 말이 적절한 듯 하다.

우리 산업의 민낯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기회가 또 언제 올 수 있을까. 수직적이고 기형적인 산업구조와 체질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우리 정부, 중기벤처부가 잡아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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