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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베이스 박종민 “묘지 앞 꽃 하나에서도 노래의 영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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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8-14 11:23:08
뉴욕 메트 데뷔 앞둔 세계적인 성악가
서울시향 광복 74주년 기념음악회 “뜻깊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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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저희 세대는 100% 달라져야 해요.”

‘세계적인’이라는 수식은 거추장스럽다. ‘베이스 박종민’ 만으로 충분하다. 음악을 시작했을 때부터 세계무대 진출이 목표가 아닌, 자연스러워진 세대.

유럽 무대를 휘젓고 있는 박종민(33)은 코즈모폴리턴 성악가다.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했고, 세계에서 손꼽히는 오스트리아 빈 슈타츠오퍼에서 솔리스트 활약하고 있다.

“시대의 속도 변화가 굉장히 빠르죠. 다음 세대는 저희 세대보다 더 빨리 변할 겁니다. 기존 것을 답습하고 똑같은 결과물을 내면, 다채로운 현재와 맞지 않을 수 있죠. 선생님, 선배님들이 만들어 온 업적에 기대지 않고, 지금 세대가 원하는 것을 저희가 찾아 해야 하는 이유죠.”

박종민의 명성은 북아메리카로까지 전해졌다. 10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데뷔한다. 푸치니 오페라 ‘라 보엠’의 젊은 철학도 ‘콜리네’를 맡는다.

2011년 11월 빈 슈타츠오퍼, 2014년 6월 영국 런던 로열 오페라하우스 코벤트가든 데뷔에 이은 쾌거다. 세 극장 모두 박종민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을 때부터 막연하게 꿈 꿔온 ‘꿈의 무대’들이다.  
 
그런데 모두 데뷔 작품이 ‘라 보엠’이다. 보통 베이스라고 하면, 제사장 등 굵직한 음성으로 근엄하게 노래하는 모습을 떠올리는데 콜리네는 결이 다르다. 좀 더 자유스럽고, 박종민 자신을 투영할 수 있다.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며 ‘무지개색 베이스’로 통하는, 유연한 박종민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캐릭터다. “유연해야 독창회도 재미있잖아요. 하하.”

한국이 낳은 스타 베이스 연광철(54)을 잇는 차세대 베이스로 통하는 박종민은 이미 2023년까지 스케줄이 꽉 차 있다. “연광철 선생님은 쉰 중반까지 대단한 음성을 유지하고 계시고, 여전히 세계 정상에서 활약하신다”면서 “그 분의 커리어에 감히 비교할 수 없다”고 자세를 낮췄다.

박종민이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면서 한국에서는 정작 자주 볼 수 없다는 점은 아쉽다. 외국 프로덕션은 몇 년 전부터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섭외를 하는데 국내 오페라 무대는 아직 여건상 단기적인 계획을 세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서울시와 서울시향이 15일 오후 7시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펼치는 ‘서울시향 광복 74주년 기념음악회’가 뜻깊은 이유다. “광복의 의미에 대해 저희 세대로 당연히 알아야 하죠. 한국 무대를 자주 하지 못해 아쉬웠는데 이런 뜻깊은 무대에 오를 수 있다는 것 자체 만으로 큰 영광입니다.”

박종민은 이날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중 ‘더 이상 날지 못하리’를 부른다. 스타 소프라노 임선혜(43)와 함께 모차르트의 돈 조바니 중 ‘그대의 손을 나에게’도 들려준다. 특히 눈길을 끄는 곡은 김연준 작사·작곡의 가곡 ‘청산에 살리라’다. 우아한 음성의 박종민은 가곡에도 일가견이 있다.

노랫말이 아름다운 가곡을 박종민의 입을 통해 듣는 청중은 정경을 그리게 된다. 빈에 살고 있는 그는 도나우강을 보면서 영감을 얻는다. 슈베르트, 슈만이 영감을 얻은 바로 그 강이다. “어느 장면에서는 마음을 비울 수 있어요. 묘지 앞에 놓인 꽃 하나에서도 노래의 영감을 얻죠.”
 
 시도 자주 읽는 그는 광복절을 앞두고 일제강점기 시인 윤동주(1917~1945)를 떠올리기도 했다. “‘서시’ ‘별 헤는 밤’을 자주 읽었어요. 외국 시도 좋지만 아무래도 한국인으로서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는데 우리 시는 읽는 순간부터 와 닿는 것이 다르죠.”

세계무대를 섭렵하고 있는 박종민은 여전히 무대가 떨린다. 청중의 기대치가 계속 높아지니 당연할 법도 하다.

 언제나 당당할 것 같은 베이스가 두려움을 떨쳐내는 반전은 뭉클하다. 객석에서 자신에게 편안함을 주는 청중을 찾아 그 분에게 공연을 잘 전달한다는 마음으로 노래한다. 그 편안함을 주는 청중은 자신의 외할머니와 닮은 분이다.

“빈 슈타츠오퍼에서 데뷔를 한 해였어요.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아침에 외할머니 부고를 들었어요. 아침에 성당에 가서 펑펑 울면서 당장 한국에 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죠. 제가 외할머니 손에 컸거든요. 그런데 가족들이 ‘할머니가 너 공연하는 것을 좋아하시니, 끝까지 잘 감당하는 모습에 더 기뻐하실 거다’라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공연이 끝나자마자 비행기를 탄 그는 다행히 상 마지막 날 아침에 한국에 도착, 작별 인사를 할 수 있었다. 비록 한 시간가량 조문이었지만, 그 시간은 물리적인 것 만으로도 설명이 불가능했다. “벌써 빈 슈타츠오퍼에서 7번째 시즌을 맞고 있는데 매번 외할머니께서 지켜주신다는 마음으로 공연해요. 그 마음이 매번 간절히 청중에도 전달됐으면 해요.”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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