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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선우예권·최형록 “동료 피아니스트로 함께·매우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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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8-20 06:04:00
‘코리안 영 피아니스트’ 시리즈
명동 대성당 대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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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예권(왼쪽), 최형록 ⓒ목프로덕션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미디어 앞에 제대로 나서본 적이 없는 피아니스트 최형록(26)은 검정 샌들을 신고 명동성당을 찾았다. 유심히 그의 발을 지켜본 선배 피아니스트 선우예권(30)은 점심을 같이 먹고, 근처 번듯한 제화점에 가 단정한 검정 구두를 선물해줬다.

선우예권은 19일 명동성당에서 2017년 북아메리카의 세계적인 피아노 경연 대회인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부상으로 백화점 등지에서 1만달러어치 쇼핑을 할 수 있는 지원을 받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신발이나, 연주복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어요. 막 연주자 활동을 시작하는 친구에게 필요한 물품을 제공하기 위한 시스템이었죠. 형록씨랑 제 취향이 다르기는 했는데, 일부러 저렴한 것을 고른 것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하하.”

최형록은 “정말 마음에 드는 것을 골랐다”며 미소지었다. 그가 신고 있는 검정 구두코가 반짝반짝거렸다.

선우예권은 과거 자신이 우승하기도 한 센다이 국제음악콩쿠르 올해 시즌을 1차 예선부터 지켜봤다.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를 듣고 최형록을 점찍기도 했다.

“누군지 모르게 계속 보게 되더라고요. 미리 (이샘 목프로덕션) 대표님에게 추천을 하기도 했어요. 근데 우승을 했더라고요. (사연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에요. 지인들과 나눈 휴대폰 메시지로 증명할 수도 있어요.”

선우예권이 후배 피아니스트들을 돕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과 함께 ‘코리안 영 피아니스트’ 시리즈를 펼친다. 27세 이하 7명의 젊은 음악가들이 선정됐다. 선우예권이 직접 고른 후배들이다.

최형록을 비롯해 지휘자 게르기예프, 정명훈의 선택을 받은 피아니스트 임주희(19), 파데레프스키 국제 피아노 콩쿠르 1위 이혁(19), 헤이스팅스 국제 피아노 협주곡 콩쿠르 우승자 이택기(21), 클리블랜드 국제 청소년 피아노 콩쿠르 2위 임윤찬(15), 리스트 콩쿠르 2위 홍민수(26), 영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4위 김송현(16) 등이다.

이들에게는 9월부터 2020년 3월까지 매달 1명씩 리사이틀 기회도 주어진다. 선우예권이 전달하는 장학금을 연주료로 제공한다.

26일 오후 8시 명동대성당 대성전에서 열리는 선우예권의 독주회로 멘토링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선우예권은 슈베르트 4개의 즉흥곡, 쇼팽 24개의 전주곡을 연주한다.

이번 시리즈의 예술감독으로서 후배 피아니스트들의 공연 후원기금 마련을 위한 무대다. 명동대성당은 일반 연주자에게 쉽게 열리지 않는 곳이다. 시야 방해석을 제외한 좌석 650석을 오픈했는데 단숨에 매진됐다.

이세호 명동성당 청년·문화예술 담당 신부는 “명동성당은 1970년대 민주화 운동의 성지였다”면서 “21세기에 어떻게 빛과 소금의 역을 하고, 청년 시기를 살아가는 이들이 하는 고민들의 결정체에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했는데 선우예권 씨와 함께 도움을 줄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겼다”고 말했다.

한국 피아노계를 대표하는 선우예권은 주요 국제콩쿠르 7개에서 우승을 거머쥐어 한 때 '콩킹'(콩쿠르 킹)으로 통했다. 어엿한 스타 성인 연주자로 이제 더 이상 콩쿠르를 치르지 않아도 되지만, 늙어서도 선우예권을 알릴 수 있는 훌륭한 수식이다. 당연히 소속사 목프로덕션에서도 올해 앞서 열린 전국투어 홍보 영상에 이 우승이력을 거창하게 써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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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선우예권은 당시 자신의 콩쿠르 우승 경력을 빼달라고 소속사에 청했다. 물론 감사하고 값진 타이틀이지만 음악이 가지고 있는 것 중 평생 소멸하지 않는 감정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콩쿠르를 거치며 무럭무럭 자라난 선우예권은 무대의 미학을 이해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평소에 힘이 빠질 때도 있는데 무대에 올라가면 채워지는 특별한 순감의 감정들이 있어요. 그만큼 무대 자체가 값지고 동기 부여가 되며 위안이 되죠. 그런 연주에 대한 갈망으로 피아노 건반을 치게 된 것이 몇 년 안 돼요”라고 털어놓았다.

 젊은 연주자들에게 연주 무대가 한 번 주어졌다고, 반드시 여러 번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후배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한다.

현악사중주단 ‘노부스콰르텟’ 멤버 김재영과 김영욱, 차세대 첼리스트 박유신을 자신에게 도움을 주는 든든한 음악 동료로 꼽은 그는 예술감독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우기보다 후배들과 ‘음악동료’라는 점을 강조했다. 거창한 타이틀이 붙는 직책에 있는 사람이기보다 그저 몇 걸음 앞서 간 선배이기를 원했다.

“동료음악가로서 함께 가는 거죠. 피아니스트들은 혼자서 연주를 많이 하지만, 음악가의 길은 혼자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함께 가지 않으면 끝까지 가지 못해요. 그래서 이번 시리즈가 특별한 공연이 될 것 같아요.”

최형록은 이번 시리즈 참여를 처음 제안 받았을 때 “놀라운 소식이어서 실감이 나지 않았다”고 했다. “이 시리즈에 참가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소중하고 특별한 기회에요. 선한 의도로 젊은 연주자들에게 필요한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해 너무 감사하죠”라고 인사했다. “연주자들에게는 실질적인 연주를 할 수 있는 기회만큼 좋은 것이 없거든요.”

 젊은 피아니스트가 오롯하게 연주에만 집중해 활동을 이어가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인맥, 학연 등이 없으면 다른 기획사나 청중에게 데이터베이스가 쌓일 기회조차 잡기 어렵다.

선우예권이 어렵게 음악공부를 했던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젊은 연주자들에게 보다 많은 기회 제공의 필요성과 멘토 역에 대해 강조한 이유다. 어머니가 다니던 교회에서 유학을 간 그에게 장학금을 주는 등 자신 역시 주변의 큰 도움을 받았다.

선우예권은 “일회성이더라도 후원금 자체가 엄청나게 힘을 주고 동기부여도 됩니다”라면서 “사실 인식 자체가 부유해서 그렇지 클래식 음악 연주자 중에는 소외 계층도 많이 있고, 집이 부유하지 않은 친구들도 많아요”라고 전했다. “조금만 도움을 주더라도 클래식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 큰 보탬이 될 겁니다.”

선우예권은 이번 시리즈를 통해 젊은 연주자들이 조금이라도 더 알려지는 기회가 되기를 바랐다. “생각, 바람 등이 담긴 리사이틀은 그 연주자 자체이기도 해요. 그 순간을 만들기 위해 도와주는 스태프들도 많죠. 이번 시리즈는 서로의 기운을 채워주는 공연이 될 것 같아요.”

선우예권은 전날 구리아트홀에서 열린 자신의 리사이틀에서 “제가 함께 하는 ‘코리안 영 피아니스트’ 아시죠? 저희 후배들에게 많이 관심 가져주세요”라며 방긋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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