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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산역서 철마 대신 음악 먼저 날려보냈네···‘문화로 이음: DMZ 평화음악회’

등록 2019.09.09 19:5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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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첼리스트 요요마도 참여

요요마 ⓒ문화체육관광부

요요마 ⓒ문화체육관광부

【파주=뉴시스】이재훈 기자 = “문화는 신뢰를 만들어줍니다. 벽이 아닌 교량을 만들어 주죠. 문화는 함께 꿈 꿀 수 있습니다. 함께 하면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줍니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땅을, 정갈한 음표들로 가득 찬 말랑말랑한 악보처럼 바꿔버린 경기 파주 도라산역은 ‘평화의 음악상자’ 같았다. 9일 오후 도라산역에서 ‘문화로 이음: 디엠지(DMZ) 평화음악회’가 펼쳐졌다. 이곳 곳곳에 배인 남북의 평화를 위한 노력이 음악으로 승화된 순간이었다.

평양공동선언 1주년을 기념하고 세계에 비무장지대(DMZ)가 평화지대로 변해 가는 모습을 알리기 위해 준비한 음악제. 도라산역은 남북 군사분계선으로부터 2.5km 떨어진 곳이며, 민간인통제선 내에 있는 유일한 철도역이다. 2008년 12월1일 북측 통행제한 조치로 열차운행이 중지되기 전까지 북측과의 철도 연결을 담당해온 화해와 교류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탈놀이꾼 허창열 무형문화재 7호 고성오광대 이수자가 이끄는 천하제일탈공작소의 ‘통일탈춤’으로 그 시작점을 다시 그려나갔다. 이북 지역과 남쪽 지역의 탈춤이 어우러지는 ‘통일탈춤’이 펼쳐졌다.

함경도 북청사자, 황해도 봉산의 목중, 황해도 강녕 할미, 경기도 양주 연잎, 경상 안동 이매, 경상도 고성 말뚝이 등이 함께 하며 화합의 장을 위한 판을 깔았다.

본격적인 무대는 특별 손님인 프랑스 태생 중국계 미국 첼리스트 요요 마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으로 열었다. 전날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더 바흐 프로젝트’에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6곡을 모두 들려줬던 요요마는 이날 이 곡을 일부분 들려줬지만 의미는 충분했다.

요요마가 음악에 대한 가치관과 자신이 공언한 것을 물리적으로 구현할 때마다 이 곡을 연주했기 때문이다. 평생 경계인으로서 경계에서 연주해온 요요마는 “남과 북의 경계에서 연주하는 것이 꿈이었는데, 꿈이 실현됐다”면서 “혼자면 불가능한데, 함께 하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도라산역서 철마 대신 음악 먼저 날려보냈네···‘문화로 이음: DMZ 평화음악회’

요요마는 북한 출신 청년 연주자들인 피아니스트 안세현, 바이올리니스트 권영경과 ‘그리운 금강산’를 연주하기도 했다.

탈북 피아니스트 김철웅 서울교대 연구교수가 바통을 이어 받아 ‘봉선화’와 ‘아리랑 소나타’를 연주했다. 그는 “바로 옆에 평양에 함께 가기를 바라면서 연주를 했다”고 말했다.

윤상 원곡의 ‘달리기’, 동요 ‘오빠생각’, 자신들의 대표곡 ‘수고했어 오늘도’를 들려준 듀오 ‘옥상달빛’은 “도라산역에 처음 와 봤다”며 “이렇게 가까운데 마음은 멀리 떨아진 것 같아 찡했다”고 입을 모았다.

에스닉 퓨전밴드 ‘두번째 달’은 자신들의 대표곡 ‘서쪽하늘에’, 그리고 국립창극단 단원 김준수와 함께 ‘사랑가’를 들려줬다. 경쾌하고 고급스럽게 편곡된 ‘쾌지나 칭칭나네’가 흥을 장착시켰다.

사물놀이 명인 김덕수, 풍류 피아니스트 임동창이 장고와 피아노 협주곡으로 여운을 이어갔다.

여기에 명창 안숙선을 비롯 국악 연주자들이 가세해 백범 김구 선생이 쓴 글을 바탕으로 임동창이 작곡, 작사한 ‘우리가 원하는 우리나라’가 한을 극대화했다.

1990년 남북 음악교류의 하나로 평양에서 열린 범민족통일음악회에 참석하기 위해 걸어서 판문점을 통과했다고 돌아본 김덕수는 “오늘 역시 걸어서 이대로 북한에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도라산역서 철마 대신 음악 먼저 날려보냈네···‘문화로 이음: DMZ 평화음악회’

임동창은 “사람은 참 멍청하다. 새들도 자유롭게 다니는데 인간만 못 간다”면서 “열등감을 많이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안 명창은 “우리 민족이 서로 마음을 잘 털어놓는 세상을 바란다”고 했다.

역시 마지막은 아리랑이었다. 임동창, 김 명인, 안 명창 구성에 요요마까지 가세해 진도 아리랑을 들려줬다. 순식간에 도라산역은 한과 흥이 가득한 축제로 변했다. 곡이 끝난 뒤 요요마는 안 명창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존중을 표하기도 했다.

이후 국악 연주자들이 함께 무대 위에 올라 본조 아리랑을 들려줬다. 아리랑은 평화, 사랑, 그리고 그 무엇이든 됐다.

박선영 SBS 아나운서가 사회를 본 이날 공연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주관했다. 실향민, 인근 부대 장병, 이날 공연에 관심을 표한 명지초등학교 학생들 등 300명이 지켜봤다.

서울에서 부모와 함께 체험학습을 왔다는 이은우(12) 양은 “북한은 우리와 일부인데 38선으로 나눠져 있는 것으로 안다. 그동안 멀게 느껴졌는데 이렇게 가까이서 음악을 들으니, 좀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고 했다.

문화체육관광부 박양우 장관을 비롯 강경화 외교부 장관, 통일부 서호 차관, 사이먼 스미스 주한 영국대사, 실향민대표로 백군태 이북5도 실향민 연합회 사무총장, 지역주민대표로 군내초등학교 6학년 송윤주 양 등이 공연 초반에  평화를 상징하는 리본 잇기의 시작을 만들었다. 공연이 끝난 뒤에는 모든 관객이 참여해 리본잇기에 동참했다.

그 리본은 마치 열차 같았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 우선 그 철마 대신 음악을 담뿍 담은 마음을 먼저 북측으로 날려보냈다. 통일과 평화의 마음을 곱게 접어, 도라산역에 흩뿌려진 음표와 가락에 힘껏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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