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공연

[리뷰]말·말·말, 말들의 전쟁···그럼에도 체험극 ‘사랑의 끝’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등록 2019-09-09 15:35:33
문소리·지현준, 모노극을 빙자한 2인극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배우 지현준, 문소리(오른쪽)가 6일 오후 서울 성수동 우란문화재단에서 열린 연극 '사랑의 끝(Love's End)' 프레스콜에서 열연하고 있다. 남자와 여자의 서로 다른 지점에서의 이별의 순간을 그린 연극 '사랑의 끝'은 오는 27일까지 우란문화재단 우란2경에서 공연한다. 2019.09.06.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이별의 언어는 차가운데, 뜨겁게 사람을 질식시킨다.

27일까지 서울 성수동 우란문화재단 우란2경에서 국내 초연하는 연극 ‘사랑의 끝’을 체험하면 이 형용모순이 수긍된다.

관람이 아닌 체험, 이라고 썼다. 몇 년 전부터 유행해온 관객참여형의 극은 아니다. 프랑스 극작가 겸 연출가인 파스칼 랑베르의 대본을 아르튀르 노지시엘이 연출한 이 작품은 그럼에도 체험극이다.

배우 지현준(41)과 문소리(45)가 폭포수처럼 쏟아내는 말들이 객석의 마음과 정신에 끊임없이 잽을 날리니, 관객들의 신체도 버텨낼 재간이 없다. 남자와 여자의 서로 다른 시점에서 이별의 순간을 그려낸 이 작품은 모노극을 빙자한 2인극이다. 전반부는 남자, 후반부는 여자, 두 개의 긴 독백만으로 이뤄진 작품인데 각자 1시간 가량을 혼자 쉬지 않고 쏟아내야 한다.

선공은 지현준이 연기하는 현준이다. 배우들의 몰입도를 위해 본인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 현준과 소리는 부부 사이이자 연출과 배우 사이다. 현준은 이제 소리에게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하겠다면서, 그간의 정신적·성적 모든 관계는 픽션이라고 규정한다. 그의 말은 연출답게 현학적인 언어로 가득하다.

후공에 나선 소리의 반박하는 말들은 날카로우면서도 통쾌하다. 현준의 픽션 운운에, 안드로메다에 갔냐며 섹스, 아이들 모두 상상이냐고 힐난한다. 이성을 계량화한 것처럼 구조적인 것을 강조하던 현준은 머쓱해져 눈물을 흘린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배우 지현준이 6일 오후 서울 성수동 우란문화재단에서 열린 연극 '사랑의 끝(Love's End)' 프레스콜에서 열연하고 있다. 남자와 여자의 서로 다른 지점에서의 이별의 순간을 그린 연극 '사랑의 끝'은 오는 27일까지 우란문화재단 우란2경에서 공연한다. 2019.09.06. chocrystal@newsis.com
그러나 승자는 없다. 두 사람이 피렌체 산타마리아 델 카르미네 교회의 예배당에서 본 마사초의 그림 ‘낙원추방은’이 현실에서 재현된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뒤 부끄러워하며,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는 모습이 그림 밖에서 그려진다.

이렇게 사랑의 끝에는 해방이 아닌 추방이 있다. 잠시나마 낙원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서로에게 모욕을 주고 모멸감을 느낄 때의 수치스러움.

사랑의 민낯을 까발리는데 크게 기여하는 것은 문소리, 지현준의 열연이다. 각자 50쪽 분량의 대사를 한 시간 가까이 쏟아낼 때 어떤 시청각적 잔상보다 강렬하다.

두 배우가 더 대단한 것은 상대 배우가 쏘아대는 강렬한 언어의 로켓을 반대편에서 온 몸, 온 마음으로 받아내며 견뎌야 한다는 것이다. 언어가 감옥이 된 것이다.

관객들도 그 공간에서 말들의 좌표 사이를 부유하는 동시에 구금된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배우 문소리가 6일 오후 서울 성수동 우란문화재단에서 열린 연극 '사랑의 끝(Love's End)' 프레스콜에서 열연하고 있다. 남자와 여자의 서로 다른 지점에서의 이별의 순간을 그린 연극 '사랑의 끝'은 오는 27일까지 우란문화재단 우란2경에서 공연한다. 2019.09.06. chocrystal@newsis.com
육신을 떠받치는 언어의 무중력 촉각이 몸 곳곳에 새겨진다. 말들의 추격전을 지켜보고 어느새 그 추격전에 동참하게 된 사실을 알게 되면 섬뜩하다. 체험극은 이렇게 완성된다. 그래서 언어극이 아닌 신체극이기도 하다.

문소리와 지현준은 몸을 잘 쓰는 배우들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언어라는 기표에 담겨 있지 않은 기의를 드러내는 신체 언어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사랑의 끝’은 연극에 대한 연극인 ‘메타연극’처럼도 보인다. 연출, 배우이기도 한 두 사람은 작품 작업에 대해서도 계속 이야기한다. 삶과 일반 연극에서 보기 힘든, 한 사람이 쏟아내는 말들의 연속 펀치는 삶뿐만 아니라 연극의 관습적인 것들도 타파한다.


realpaper7@newsis.com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늘의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

문화 핫 뉴스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