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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호의 경청] 日강제동원 전문가 정혜경, '반일 종족주의'를 논하다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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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9-21 09:30:00  |  수정 2019-09-21 12:24:45
강제 동원됐던 조선의 아이들, 없었던 존재가 돼
호적에도 안 남고 국가에서도 기억 못해 잊혀져
피해자 사회에서도 아이와 여성은 또 소수 약자
여섯 살에 남양군도 집단농장으로 끌려가기도
놀라운 것은 어른과 아이 노동시간 같았다는 점
뙤약볕 아래서 하루 10시간 사탕수수 작업 등
<반일 종족주의>, 일부 사례 일반화하는 무책임
731부대 거의 북한 지역이라 남한은 조사 못해
하이난도 천인갱 포함, 유골 봉안은 정부가 해야
시베리아 조선인 유골 러시아 협의해 모셔와야
예산 1년 2억원 밖에 안 드는데 돈 든다고 안해
100% 정부 의지 박약…오죽하면 유족들이 모금
과거사 왜곡 1단계 봉인, 2단계 망각, 3단계 왜곡
지금 4단계 미화로 접어들어 동조하는 사람들도
<반일 종족주의> 반론서 펴내 오류들 짚어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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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배훈식 기자 = 정혜경 박사가 지난 4일 서울 서초구 토즈에서 지승호 인터뷰 전문 작가와 '반일 종족주의' 등에 대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09.13. dahora83@newsis.com

【서울=뉴시스】지승호 인터뷰 전문 작가 = 지승호(이하 지) – <아시아태평양전쟁에 동원된 조선의 아이들>이라는 책도 내셨는데요. 그 연구를 하시면서 굉장히 힘들었다고 하셨는데요.
정혜경(이하 정) – 정서적으로, 감정적으로 그렇죠. 아이들은 보호를 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보호를 해야 될 대상을 전쟁의 한가운데다가 몰았다는 것이 있구요. 아이들이 스스로를 지킬만한 힘이 없었죠. 힘이 없어서 사망자도 많이 있었고, 그 다음에 제가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뭐냐 하면요. 이들이 있었음에도 없었던 존재가 되어 버린 겁니다. 어려서 죽으니까, 호적에서 사망으로 올리지 않은 경우도 있구요.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은 한국 전쟁 때 호적이 많이 불탔어요. 그래서 호적을 다시 신청을 하거든요. 그런데 죽은 아이의 경우에는 호적에 올리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태어나지 않은 것으로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있었음에도 없었던 존재가 되어버렸죠. 처음에는 가족들이 기억을 했을 거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가족들한테 물어봐도 그런 사람이 있었던 건지도 잘 몰라요. 가족도 기억하지 못하는 존재를 사회가 기억해주지 못하잖아요. 그게 제일 가슴 아팠습니다. 아, 우리 사회가 기억을 못하겠구나, 케이스를 보면서 한 사람을 알게 됐는데요. 그 사람이 뭐라고 하면, 우리가 그 때 갔을 때 부대가 같이 갔다고 얘기를 해요. 혼자 간 것이 아니라 60~70명이 같이 갔는데, 그 사람들은 어디 갔는지 몰라요. 그러니까 제가 여기서 소개를 한 것은 70건 정도 됩니다. 굉장히 많은 사례들이 있는데요. 그 중에 그렇게 호적에 남아 있지 않은 사람들, 기억도 못해주고, 그러니까 사회가 기억을 못해주는구나, 우리 사회로부터 잊혀진 존재구나, 하는 생각이 있었구요. 이 분들은 어렸을 때 갔기 때문에 자신의 피해에 대해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걸 정부에 신고를 해야 되는 것인지 잘 몰라요. 남양군도 가서 사탕수수를 베고 이랬는데, 이게 신고할 사안인가, 그런데 신고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냐 하면 남편이 피해자 신고를 하는데 자기도 같이 한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당했지만, 당했는지, 안 당했는지, 정확하게 인식도 못하는 피해들이 지금도 많이 있어서요. 95년부터 이쪽 관련해서 피해자 단체들을 많이 접했어요. 집회나 이런데 많이 갔거든요. 항상 보면 피해자들은 남성만 있더라구요. 여성은 유족 밖에 없어요. 그 때는 이상하다는 생각을 못했어요. 위원회에서 피해 판정을 하려고 하면 여성들이 신고를 한 것이 있는데, '이 사람들을 피해자로 해야 되나?' 이런 얘기들을 하게 되는 거죠. 정부에서는 신고를 받고 나서 피해를 입증하는 것보다 피해가 아닌 것을 입증하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피해를 신고했으면 이 사람이 스스로 피해라고 얘기를 한 거잖아요. 피해가 뭔지를 증명하기 위해서 케이스를 다 모았어요. 그걸 놓고 거기서 기준을 만들어서 위원회에 올려서 위원끼리 판단하게 하거든요. 그러다보니까 여성이 한 1000명 정도 나오는 거예요. 아, 피해자 사회에서도 역시 성차별이 있구나, 그런데 왜 그 많은 남성들이, 그 당시에 남성들은 탄광에서 같이 일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안했지? 공사장에서 같이 흙을 날랐던 여자 애들의 이야기를 왜 안했지? 하면서 처음에는 여성에 주목을 했어요. 정부 자료니까 가지고 나올 수 없어서 엑셀에다가 입력을 해서 통계를 돌려서 그래프를 만들어봤더니, 어린 사람들이 있는데, 가장 어린 사람으로 사망한 사람이 여성인 거잖아요. 아 그러면 소녀네, 아이들도 있었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다시 아이들에 대해서 주목을 하게 된 거죠. 그러다보니까 역시 피해 문제에서도 약자는 여전히 약자구나, 건장한 남성은 거기서도 발언권이 있고, 건장한 남성이 아닌 사람들, 노인이라든가 여성이라든가 어린이들은 피해 사회에서도 역시 소수자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소수자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되겠다고 생각한 거죠.
 
지 – 전쟁에서는 여성과 노인, 아이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고보면 '전쟁은 그런 거 아니냐'고 하잖아요.
정 – 그렇게 얘기하죠.

지 - 그런데, 다섯 살 짜리를 동원한 케이스까지 있다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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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배훈식 기자 = 정혜경 박사가 지난 4일 서울 서초구 토즈에서 지승호 인터뷰 전문 작가와 '반일 종족주의' 등에 대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09.13. dahora83@newsis.com
정 - 여섯 살인데, 집단 농장에서는 어린 사람들도 가능해요. 집단 농장의 경우에도 우리가 강제동원이라고 인정하는 경우는 가서 한두시간 한 것은 안 되구요. 일정 기간 동안 노동을 했던 경우인데요. 남양군도 같은 경우는 여섯 살이 가장 어린 케이스입니다. 회사에서 매일 매일 주재소에다가 일일보고를 했습니다. 남양흥발회사가 척식회사예요. 동양척식회사 같은덴데요. 거기서 보고를 하는데, 그 자료를 보면 노동 시간하고 하루에 했던 작업량이 나와요. 놀라운 것이 어른이나 아이나 여자나 노동 시간이 똑같다는 거예요. 제가 거기 현장을 가보고 느낀 것이 현장에 가서는 10분도 밖에 나와서 서 있을 수가 없어요. 뙤약볕이 너무 세서. 그 당시에 보면 10시간 노동을 했거든요. 10시간 동안 사탕수수를 잘랐단 말이야, 어른들은 자르고, 아이들을 묶어서 나르는 일을 하는 거거든요. 농장에서는 그런 것이 가능한 거죠. 다섯 살, 여섯 살 짜리도. 그 다음에 일본 자료에도 보면 몇살부터 노동을 한다는 나이 규정은 있잖아요. 동원은 몇 살부터 한다는 나이 규정은 있는데요. 남양군도 같은 경우에는 12살을 기준으로 했습니다. 12살을 기준으로 해서 가동능력자라고 해서 얘네들은 일을 할 수 있는 애들, 일을 할 수 없는 애들을 분류했는데요. 12살도 또 구분을 해서 가려내는  거예요. 거기는 제한된 곳이잖아요. 섬이고 그러니까 거기서 쓸 수 있는 가용능력은 다 썼다고 봐야하는 거죠. 저희가 기준을 잡을 때 한두시간 일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고, 일정 기간 동안에 강제노동이라고 할만한 일을 했고, 학교를 보내지 않고, 이런 일을 하루 종일 시켰던 경우만 강제동원으로 인정한다고 한 거죠.
 
지 – 생각해보면 지금도 동남아나 이런 데서는 아이들이 축구공을 만들잖아요.
정 – 저가판매점 같은 데서 파는 유리컵도 하루 종일 아이들이 갇혀서 유리컵을 만든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일본이 1932년에 국제 노동기구(ILO)에 강제노동에 관한 협약에 비준을 했거든요. 그 때 강제노동에서의 연령이 18살이었습니다. 그 이하는 시키면 안 된다는 거였구요. ILO가 직종별로 연령을 제한하는 협약을 맺습니다. 일본은 그 협약에는 비준을 안하는데요. 32년에는 협약에 비준을 하고 나서 스스로 어긴 거죠. 그런 것들이 다 시스템을 운영하는데, 성과주의로 가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편법이 작용하는 거죠. 예를 들면 당시의 법은 14살 이하는 동원할 수 없어요. 그런데 호적상으로는 7살 짜리도 갔거든요. 저희는 조사할  때 실제 나이를 확인을 해요. 이 사람 실제 나이는 12살이었어요. 그런데 호적상으로 7살이면 못가는 거잖아요. 그런데도 데려가는 거죠. 인원을 맞춰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데려갈  때 손을 만지면서 '야, 이런 애까지 우리가 데리고 가야 되냐' 하면서 아이 손을 붙잡고 있었대요. 그래가지고 사진들을 보면 국민복을 입혔는데, 옷이 너무 큰 거죠. 너는 국민복도 안 된다고 해서 옷도 안 입히고, 신도 크니까, 고무신을 사서 신기고, 이렇게 하면서 인솔자가 '너희들은 조금 있으면 크니까, 그 때 국민복을 줄게' 하면서 데려갔다고 하더라구요. 편법을 할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이잖아요. 성과주의니까. '몇명을 보내라. 얼마를 생산해야 된다' 이런 것들  때문에, 전쟁을 운영해야 되는 시스템 때문에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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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병문 기자 = 이수훈(가운데)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에서 열린 '제64차 통일전략포럼 한일관계 어떻게 풀어야 하나?'에 참석해 발표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일본경제침략대책특별위원회 부위원장, 이 교수, 정혜경 역사학 박사, 남상구 동북아역사재단 한일관계연구소장. 2019.08.08. dadazon@newsis.com
지 – <반일 종족주의> 얘기로 돌아가보면 한국군 위안부나 미국군 위안부 문제는 제기하지 않으니까 위선이라고 얘기하는데요. 맞는 얘기긴 한데, 일본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지 말라고 하기 위해서 그 주장을 하는 거잖아요. 그 분들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 밖에 없는 건데요.
정 – 우리도 그런 이야기를 하잖아요. 우리도 일본 얘기만 하지 말고, 베트남에 가서 민간인 학살한 것을 반성하자는 얘기를 하잖아요. 그 얘기를 하면서 '그렇다고 이것을 안 하면 안 된다'고 가야죠. 미군 위안부 얘기, 왜 안 합니까, 해야죠. 다 나쁘다고 봐야죠.
 
지 – 일본 국민들도 군국주의 정권의 피해자라고 볼 수 있는데요. 일본 사람이라고 해서 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았던 것도 아니고, 가미가제라든지, 옥쇄를 시킨다든지, 자기 국민들 목숨도 그렇게 생각했던 사람들이라면 식민지 국민들에게 어떤 일을 시켰을지는 상상이 가잖아요.
정 – 저는 다른 것은 모르지만, 연구를 보면 당시 전선에 간 일본군의 3분의 1이 굶어죽었다고 나옵니다. 자국 국민들을 굶겨죽이는 나라는 전쟁을 할 자격이 없습니다. 일본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소련의 참전이었거든요. 그러니까 원자탄을 10발을 받았어도 항복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소련에다가 밀사를 보내려고 해요. 밀사를 보낼 때 선물이 뭐였냐 하면 만주에 있었던 관동군 65만명이었어요. 그걸 줄테니 데려가서 노동 부대로 쓰라고 한 겁니다. 대신 천황제는 건드리지 말라고 제안합니다. 그런데 소련 쪽에서 안 받아요. '아니 어차피 우리가 데려갈 건데, 뭘 받아' 한 거죠. 황군이잖아요. 심지어 황군한테는 뭐라고 했냐 하면 그 당시에 천왕의 은덕이 있기 때문에 총알도 피해 나간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자기가 육군대원수였습니다. 그래가지고 백마를 타고 다녔습니다. 진두 지휘하고, 그 다음에 심지어는 '어느 부대는 어떻게 공격해라' 이번에도 회고록이 나왔잖아요. 그런게 나왔어요. 자기를 위해서 충성을 다하는 군인들 65만명을 '너희들 갖다 써라' 라고 하는 것이 제국을 운영했던 대원수가 할 짓입니까? 저는 일본의 도덕성이라는 것이 거기서 끝났다고 봅니다. 자기 군인을 굶겨죽이고, 자기 군인을 팔아먹는 이런 나라가 점령지에 대해서는 어떻게 했겠어요? 중국의 포로들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어요. 제가 책에도 썼는데, 어린아이 눈에도 그게 보였나봐요. 연합군 포로와 중국군 포로가 있는데, 숙소가 달랐다고 합니다. 중국 포로는 훨씬 열악한 환경에 있었고, 심하게 때리고, 너무나 안 먹이고 그래서 자기네가 도와줄려고 하다가 걸려서 매맞았다고 해요. 그 당시에는 담배를 그렇게 많이 줬어요. 강제 동원된 사람들한테, 애들한테 담배를 주니까, 아이들이 담배를 모아서 다른 식량하고 바꿔 먹어요. 중국인 포로들이 담배를 피우고 싶은데, 없으니까 아이가 몰래 담배를 주다가 걸려서 매를 맞고 그래요. 담배를 자기가 피우는 것처럼 하다가 떨어뜨리는 척 해서 주기도 하다가 걸렸다고 하는데요. 어린 아이들 눈으로 볼 때도 중국인 포로들에게는 너무나 가혹했던 거죠. 자국민도 굶겨 죽이는 사람들이 식민지와 점령지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했겠어요. 강제 동원의 연구라고 하는 것은 많은 사례들을 계속 축적해나가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일본에서 60년대부터 연구를 했지만, 아직까지도 자금이라든가, 물자동원에 대해서는 연구도 못합니다. 심지어는 엊그제께도 일본 사는 선생님이 개탄을 하면서 저한테 전화를 했는데요. 동남아시아에서 일본 본토로 송금을 하면 그 돈의 환율을 몇 대 몇으로 할지에 대한 것도 확인을 못하는 거예요. 어떻게 했는지 자료가 없어서. 그러니까 그렇게 그 시절에 대한 연구가 안 되어 있거든요. 인력 동원(에 관한 연구)만 조금 했어요. 그것도 일부 탄광만 한 겁니다. 지금은 뭘해야 하냐 하면 그 많은 자료와 케이스를 계속 모아서 사례 연구를 해야 합니다. A탄광은 이랬다, B광산은 이랬다, 지금은 열심히 연구할 때예요. 몇십년을 해서 그것이 축적이 되면 그 다음에 어떤 틀거리에서 우리가 구체적으로 밝힐 수 있는 거구요. 지금 연구가 되어 있는 것은 뭐가 있냐 하면 체제에 대한 연구들이 있어요. 총동원 체제, 당시 일본이 총동원 체제를 어떻게 운영했는지가 나와요. 거기에 입각해서 우리는 강제동원을 주장하는 거구요. 케이스 하나 하나에 대한 실상과 실태는 많은 사례를 통해서 밝혀야 합니다. 그런데 본인이 연구를 얼마나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1995년부터 지금까지 했는데요. 지금도 뭘 하나 하면 조심스럽습니다. '이걸 이렇게 해도 되나?' 하고. 그래서 논문을 내기 전에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줘요. 그러면 '민감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하면 그 의견을 받아들여서 고치거든요. 지금도 조심스러운데 어떻게 한두 케이스를 보고, 한두 케이스의 사례를 보고, 누구의 말을 듣고, 일반화를 시킬 수 있는지 그건 오만을 넘어서서 무책임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학자의 무책임함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거든요. 그것을 통해서 사회로 전파가 되잖아요. 역사 미디어를 통해서 알려지고, 교과서에 실리면서 정설이 되는 거죠. 본인들이 지적한 학계의 오류의 누를 본인들도 똑같이 밟고 있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상당히 무책임하다고 생각하구요. 똑같은 누를 밟고 있는 것이 학자가 학문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면 그래도 용서가 되지만, 학문 외적인 의도와 목표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라면 본인들이 져야 될 책임 부분이 정말로 크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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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영훈 외 5명 '반일 종족주의'. 2019.08.15. (사진=미래사 제공)

지 – 루스베네딕트가 <국화와 칼>에서 "전쟁에서 이토록 이질적인 행동, 사유습관을 고려해야 할 필요에 직면한 상대는 일찍이 없었다"고 했는데요. 그만큼 이해하기 어려운 상대였다는 표현이었던 것 같은데요.
정 – 그런 부분이 있기도 하구요. 1970년대에 이민을 간 사람은 1970년대 한국의 정서를 가지고 갑니다. 지금도 재미교포 사회에서는 재미있는 것이요. 행사를 가서 뷔페를 먹을 때 여자들이 먼저 줄을 서지 못해요. 지금 미국에서도요.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루스베네딕트가 분석을 한 사람들은 1800년대 후반에 미국에 이민 온 사람들이잖아요. 그 사람들을 캘리포니아에 모아놓은  거잖아요. 이 사람들은 사무라이, 무사와 칼에 대해서 경험을 한 사람들입니다. 그러고 미국에 간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을 분석을 했기 때문에 그런 건데요. 그래서 미국에서 오판을 한 것이 뭐냐하면요. 우리가 일본 본토로 들어가면 일본의 모든 사람들이 다 궐기해서 우리를 죽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맥아더가 들어갔을 때 '웰컴 투 맥아더'를 하면서 어린 아이들이 춤을 추고 노래를 하는 것을 보고 '아, 이 선량한 사람들을 속였구나' 이렇게 착각을 했다는 거죠. 저는 루스베네틱트도 일본 전체를 본 것도 아니고, 19세기말의 일본 사회의 모습을 가지고 분석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지 – 일본이 과거사를 왜곡하는 과정이 1단계 봉인, 2단계 망각, 3단계 왜곡, 4단계 미화라고 하셨는데요. 지금 미화의 단계에 들어서 있는데요. 한국에서도 거기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꽤 많아졌구요. 우리 국민들이 정부를 압박해서 일본 정부를 압박해야 문제가 해결될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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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 5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영훈 서울대 명예교수 등의 신간 '반일 종족주의'를 "구역질 나는 책"이라고 언급하며 비판했다. 조 전 수석은 "이하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제기하는 학자, 이에 동조하는 일부 정치인과 기자를 '부역·매국 친일파'라는 호칭 외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고 했다. 2019.08.07. (사진=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 페이스북 갈무리)
정 – 그랬을 때 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냐 하면요. 옛날에 김대중 대통령이 했던 방법이 있습니다. 한일역사공동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그 다음에 민간 교류를 확대시켰어요. 그래서 한일역사공동위원회를 통해서 역사를 다시 공부하는 겁니다. 우리도 역사 교육을 하지 않지만, 일본도 하지 않습니다. 같이 역사를 알아야 해요. 그래서 강덕선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거든요. '史實(사실)의 무게를 우리가 느껴야 한다' 그게 해결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아는 방법으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피해국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이거 우리 자료 있어, 이거 가지고 같이 공부해. 너희들한테 알려줄게' 그래서 저는 제가 주장하는 것이 국가기록원에 있는 명부를 국민들에게 공개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가지고 같이 공부하고, 같이 연구하고 하면서 몰랐던 사실을 알게 하는 거죠. 제가 위원회에 있을 때요. 처음에 일본 정부를 상대로 '명부를 내놔라' 하고 공문을 딱 보냈어요. 명부 이름을 딱 적어가지고. 이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 거죠. 왜냐하면 공무원들이 다 전후 세대예요. 용어도 잘 몰라요. 이런 것이 뭘 의미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했냐 하면, 야스쿠니 신사에 가면 해행사라고 해서 일본 군인들의 단체가 있습니다. 거기 가서 물어보는 거예요. 그 사람들은 알죠. 그런데 일본 공무원들은 모르니까 안되겠더라구요. 이것을 다 내놓으라고 해봤자, 시간만 낭비하는 거니까요. 우리는 한시적 기구니까 두가지만 주목한다, 공탁금 문서, 후생연금 명부, 두가지만 받아내야겠다 싶어서 회의를 하면서 설명했습니다. '공탁금 문서라고 이런 게 있어' 그러니까 '그런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해요. '그럴 줄 알고 준비했다'고 하면서 보여줬습니다. 그랬더니 놀래는 거죠. 우리는 보통 가면 네명인데, 쟤네는 열몇명이 옵니다. 각부처가 다 모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회의를 중단해달라고 해요. 다 모이라고 해서 자기네들끼리 앉아서 '이런 게 있다'고 막 그래요.(웃음) 다음번에 또 모였어요. '가서 우리가 찾아봤는데, 있긴 있더라. 있는데 일본 사람하고 한국 사람하고 섞여 있어서 못 찾아' 이러더라구요. 그래서 '그래, 그럴 줄 알고 또 하나 준비했어. 여기 딱 있잖아, 조. 선. 딱 구별이 되어 있네. 구별이 되어 있어. 이런 것을 찾아'(웃음) 이런 식으로 해서 하나 하나를 내밀었어요. 그랬더니 나중에 '그걸 가지고 뭘할 건데' 해서 '이걸 가지고 우리가 피해자들에게 돈을 주려고 해. 우리가 65년 때 한일협정 때 돈을 받았잖아. 돈을 주려고 하는데 자료가 없네. 그래서 우리가 2007년에 법을 만들었어. 2000배로 계산해서 줄거야' 그랬더니 자료를 줬어요. 그런 식으로 움직이는 거예요. 그 때도 제가 어떤 것을 느꼈냐 하면 일본 정부가 움직이는 것이 낫다, 얘네는 자료를 들이대면 거짓말을 안해요. 그런데 한국 정부에서 한국 윗사람과 이야기를 하면 '그딴 쓸데없는 것은 뭐하러 하냐'고 욕이나 하지, 잘했다는 얘기를 안합니다. 그렇게 움직일 수 있는 토대에서부터 시작하면 가능한데요. 지금도 한국 정부에 계신 분들이 뭐라고 하시냐 하면 그걸 어느새 다하냐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36년 동안 우리가 지배를 받았으면 최소 36년동안 우리가 이 짓을 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안했잖아요. 74년이 흘렀잖아요. 74년을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해보자, 그러면 74년까지 가겠냐, 그래도 그 정도까지는 안 가지, 그 마음을 가지고 하면 일본에서도 '쟤네들이 보니까 그냥 넘어갈게 아닌 것 같아, 그러면 우리도 좀 해야 될 것 같아' 이렇게 되는 거구요. 자료 축적이라는 것이 쌓이면 급속도로 시너지가 생기는 겁니다. 그러면 결과가 막 나오게 되는 거죠. 그렇게 되면 우리도 얘기할 것이 더 많아지고 해서요. 74년이 안 걸리고 피해자성을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한번 해보자는 거죠. 위원회 만들어서 다시 신고받고, 중국은 난징학살 지금도 신고를 받고 있거든요. 신고를 어떻게 하냐 하면요. 우리는 신고 절차가 되게 복잡했어요. 호적도 내야 되고, 그 다음에 인감 증명도 떼야 하고, 그 다음에 인우보증서도 두 개 내야 되구요. 중국은 난징학살기념관을 구경하고 나갈 때 출구에 종이들이 있습니다. 그게 피해자 신고서입니다. 거기다가 '생각해보니까 우리 동네 할아버지가 이런 것을 당했다고 한 것 같아' 라고 써도 돼요. 그걸 함에 넣으면 접수가 됩니다. 그 할아버지를 찾아내서 조사를 하는 것은 정부가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일본에서도 '저러다 말겠지' 하는 소리가 안 나온다는 거죠. 그 다음에 그런 것을 할 때는 '우리 같이 살자고 하는 겁니다, 당신 죽이자고 하는 거 아니예요' 하는 신뢰감을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저는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학자들은 한일공동위원회를 통해서 하고, 민간 차원에서 민간 교류를 많이 하고, 정부는 같이 할 수 있는 것을 제안하고 그래서 바닥부터 우리가 피해자성을 가지고 가자는 거죠. 강제동원은 한국인만 당한 것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한일간의 문제로 봅니다. 세계에서도 한일간의 문제로 봐요. 제가 2015년도 유네스코 등재할  때 그랬어요. 아시아태평양 전체에서 당한 것이고, 연합군 포로 있다, 그래서 백인 나라들을 공략 대상으로 한 거거든요. 그것을 주목해서 동영상 만들 때도 백인 포로들을 집어넣고 했었어요. 한국과 일본의 문제가 아니라 아시아태평양 전체의 문제라는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이게 남한에 있는 사람들만 당한 겁니까? 북한 지역 사람들도 똑같이 당한 겁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남북한 공동의 과제예요. 남북 정부가 같이 공동 대응해야 됩니다. 아시아 태평양 전체 지역의 문제구요. 그러니까 예를 들면 위안부 문제도 박근혜 정부가 12.28 합의를 했잖아요. 그러면 12.28 합의를 좋은 방향으로 하기 위한 좋은 방법의 하나로 저희가 제안한 것이 있는데요. 이것은 우리 남측만 합의를 한 것 아니냐, 그런데 피해자는 북한도 있잖아요. '남북한이 같이 해서 다시 해야 된다'는 제안을 해라. 그래서 판을 넓혀라, 그런데 왜 우리는 판을 좁히냐, 라고 했어요. 그렇게 우리 스스로가 실상 자체에 대해서 좀 넓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지 – 남북 관계가 아직은 완전히 정상화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정 – 힘들지만 남북한이 그런 것을 하지 않았기 앞으로 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는 거죠. 저는 세가지 정도의 방법이 있다고 보는데요. 하나는 남북한이 자료를 공유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북한에 자료가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남측은 국교정상화를 했기 때문에 자료가 있는데요. 북측은 자료가 없기 때문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료를 공유해야 하는 것이 하나가 있구요. 저도 공동조사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공동조사는 강제동원 공동조사, 유골관련 공동조사, 예를 들면 북한에도 굉장히 많은 현장이 있었습니다. 흥남비료공장을 비롯해서. 남측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갔습니다. 그러니까 같이 조사를 해야 되구요. 그 다음에 피해자의 30%는 북한 지역 사람입니다. 일본에 간 사람이나 사할린에 간 사람이나 그 사람들에 대한 공동조사를 해야 됩니다. 나머지는 추도, 순례잖아요. 유골을 봉안하고, 추도, 순례하는 건데요. 북한 지역은 한국 전쟁에서 초토화되어서 유골이 남아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남한의 유족들이 북한에 가서 현장에서 추도를 하는 방법도 있구요. 또는 남한과 북한의 피해자들이 하다못해 금강산 신계사, 조계종에서 보내가지고, 복원해준데잖아요, 그런데서 행사라도 하면서 서로간에 같은 문제라고 하는 것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예를 들면 731 부대 같은 경우는 남측에서는 조사를 못합니다. 731부대 피해자는 거의 대부분이 북한 지역이거든요. 그 다음에 하이난도 학살 사건을 많이 이야기를 하는데요. 하이난도 피해자도 북한의 형무소에서 간 사람들이 많아서요. 피해자의 반은 북한 지역 출신입니다. 하이난도 조선인 강제 동원의 실상을 다 파악하려면 남북한이 같이 해야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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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배훈식 기자 = 5일 오전 서울 관악구 낙성대경제연구소 앞에서 애국국민운동대연합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반일 종족주의 저자 이영훈 교수 등을 규탄하고 있다. 2019.09.05. dahora83@newsis.com
지 – 하이난도는 천인갱이라고 1300명이 살해당해서 묻혀있다면서요.
정 – 그렇죠. 이런 것은 정부에서 해야 되는데요. 정부에서 하라고 제안서도 만들어서 정부 요로에도 제출을 하고, 동북아역사재단 뉴스레터에도 올리고 했어요. 그런데 정부에서 그 중에 유골 봉안 부분만 떼어서 민화협에 줬거든요. 민간 사업으로, 이건 민간이 할 사업은 아닙니다. 특히 유골은 그래요. 왜냐하면 유골이 하나 있다, 그것의 주인은 망자죠. 다음은 누굽니까? 유족입니다. 유족이 거기에 대해서 결정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어디로 모셔갈지, 말지. 그러니까 처음에 정부가 일단 유골을 찾음과 동시에 유족을 찾아야 합니다. 유족에게 이 유골이 어떻게 해서 이렇게 유골 상태가 됐는지를 알려드려야 되는 거죠. 이 사람이 자기집에서 걸어 나갔을 거 아닙니까? 그런데 유골이 됐잖아요. 그걸 알려드리고 이것을 어떻게 하면 좋겠냐, 모셔오고 싶다, 그러면 어떻게 모셔오겠냐, 보상금을 받아야 된다, 아니다, 이런 의견을 수합해서 모셔 오는 것이 정부의 책무입니다. 마지막 단계죠. 그런데 민간단체에서 하는 것은 어떻게 하냐 하면 그냥 모셔와요. 모셔다 놨어요. 유족이 나타났거든요. 유족이 누구 맘대로 갖고 왔냐고 하게 되면 큰 문제예요. 유골 봉안이라는 것은 민간이 할 수 없습니다. 퍼포먼스, 추도식 같은 행사는 할 수 있습니다. 진짜로 유골을 가지고 오고 하는 것은 절대로 민간이 하면 안 됩니다. 이것은 정부가 책임감을 안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민간에게 사업을 넘겨준 거예요.
 
지 – 시베리아에 23만1000구 정도의 유골이 있다면서요.
정 - 65만명 중에서 조선인이 1만명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최소 사망자를 10% 정도 봐도 1000명이 묻혀 있는 겁니다. 흩어져 있습니다. 이건 일본하고 사이가 나쁜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을 부린 사람들은 소련 정부잖아요. 러시아가 자료를 가지고 있죠. 그것을 90년대에 일본은 러시아로부터 받아갔어요. 그런데 우리는 안 받아왔어요. 지금이라도 러시아 정부와 협상을 하면 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의 명부를 받을 수 있구요. 사망자들이 묻힌 매장지가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사망자 매장 수도 확인해서, 그리고 그 사람들은 화장도 아니어서 DNA 확인하기가 너무 좋습니다. 최근에 러시아에서 나온 새로운 기법이 있는데요. 러시아는 묘를 굉장히 깊게 묻더라구요. 그럼 묘를 파야 되잖아요. 그런데 들어가서 DNA를 채취할 수 있는 기계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일본하고 사이가 나쁘다고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면 돼요. 그런데 안해요. 그 다음에 이걸 할 때 또 하나 해야 되는 것이 있습니다. 유족들의 DNA 은행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DNA를 비교할 수 있잖아요. 제가 위원회 때 해볼라고 했는데, 돈이 정말로 적게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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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배훈식 기자 = 5일 오전 서울 관악구 낙성대경제연구소 앞에서 애국국민운동대연합 회원들이 이영훈 교수 등이 집필한 반일 종족주의를 불태우고 있다. 2019.09.05. dahora83@newsis.com

지 – 2억원 정도 든다면서요.
정 – 2억도 안 들 수가 있는 게 행자부에 그 부서가 있고, 국방부에도 있어요. 거기서 위탁해서 하면 돈이 더 안 들어요. 그런데 그것이 지금도 안 되고 있잖아요. 그것을 하고, 그 다음에 러시아하고 협의를 해서 자료를 받아오면 되구요. 협의해서 유골을 모셔오면 됩니다. 러시아가 안 해줄 것이다, 저는 러시아가 100% 해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사할린에서 이미 했어요. 저희가 사할린에 있는 공동묘지를 전수조사를 다 했습니다. 러시아 정부와 합의해서. 그래서 유골도 모셔오고 있습니다. 지금. 러시아 정부가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 다음에 사할린에 있는 자료 입수하는 것도 한러간에 합의를 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안해요. 우리가 예산 1년에 2억 드는 거 돈 든다고 안해요. 러시아에서는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안해요. 한일 관계가 나쁘면 할 일이 없나요. 할 일이 있죠. 일본에서는 65만 관동군들 온 것 그것을 명부 다 해서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하니, 마니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요. 우리는 왜 그분들 자료를 가지고 올 생각도 안하냐는 겁니다. 저는 100% 정부의 의지 박약이라고 봅니다. 오죽하면 유족들이 2억원을 모금해보겠다고 해요. 그것을 정부에 주겠다고 합니다. '어머니 2억을 모금해도 정부에서 못 받아, 민간 돈이니까, 정부 예산으로 해야지. 그러니까 캠페인을 하면 정부가 내놓을 수도 있으니까 한번 해볼 수 있으면 해보시는데'라고 했습니다. 이 분들이 너무 답답한 거예요. 김부겸 장관이 해준다고 했었는데, 안했어요. 그리고 장관이 바뀌어버렸잖아요.
 
지 – 둘 중 하나네요. 후순위로 미뤄뒀거나, 원래 생각이 없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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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최진석 기자 =  1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연세로 차없는 거리에서 국제평화행진 대학생 홍보단이 '우리가 역사의 증인입니다' 플래쉬몹을 하며 강제징용 피해자의 이야기가 담긴 피켓을 들고 있다. 2019.08.14.myjs@newsis.com
정 –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이금주 회장이 말씀하신대로 '우리가 나라가 없습니까? 있잖아요' 그 말을 되새기게 됩니다. 나라가 있으면 나라에서 해줘야 된다는 거죠.

지 - 말씀 듣다 보니까 <반일 종족주의>를 가지고 욕할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문제 의식을 못 가지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심각하게 반성하고, 고민해야 될 것 같습니다.
정 – 그래서 제가 이번에 반론서를 계획하고 있는데요. 지적한 오류들을 그대로 양산하는 케이스가 있습니다. 그걸 앞에도 쓰구요. 오류를 수정하지 않는 연구자 실명을 밝히고, 다 해서 '이런 오류가 있어, 잘못했어,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스템을 잘못 보면 안된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요. 시스템을 제시를 해주고, 마지막에는 거기에서 주장하는 몇가지 케이스에 대해서 독자들을 위해서 오류를 짚어주고, 그렇게 하려구요. 어떤 기자 분이 그런 말씀도 하세요. '오류만 모아놓은 책 없냐. 그래야 이걸 공격하기 좋지 않냐'고 하시는데요. 학계에서 안일하게 했죠. 여전히 지금도 모집, 관알선, 징용이 강제성이 강화되는 과정이라고  학생들한테 가르쳐요. 오류거든요. 징용은 정부가 책임지기 때문에 그렇게 가혹하게 할 수가 없었어요. 그 다음에 먹는 것, 입는 것 다 정부가 돈을 줬거든요. 데려올 때 비용도 다 정부가 줬습니다. 모집하고 관알선은 기업에다 일임을 하면 노동자 착취 구조로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더 착취를 하는 거죠. 착취를 많이 하니까 문제가 생긴 거에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징용제도를 확대한 겁니다. 그런데 학자들은 거꾸로 가르쳐요, 제가 아무리 아니라고 얘기해도 들은 척을 안 하거든요. 그동안 들은 척 안했던 분들도 같이 지적을 하면서 <반일 종족주의> 문제도 같이 얘기를 해볼려고 합니다.
 
지 – 이 책이 하나의 계기가 되어 주는 거네요. 역설적으로(웃음).
정 – 저도 예전에 다른 논문을 쓰거나 하면 항상 오류를 앞에다 제시를 했어요. 실명은 안쓰고, 두리뭉실하게 이런 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문제다, 이렇게만 했죠. 그렇게만 하니까, 잘 빠져 나간 거죠.(웃음) 그런데 이번에는 전면으로 드러낼 것은 딱 드러내고, 깨끗이 털 것은 털고, 다시 시작합시다, 이렇게 가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 – 마지막으로 해주실 말씀은 없으신가요?
정 – 저는 역사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도 좋지만, 일반 시민들도 역사적인 콘텐츠나 유튜브나 책이나 이런 것을 봤을 때, 무조건 저는 먼저 의문부터 제기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게 맞나, 진짜야?' 여기에서 우리가 출발을 해야 예전 과거의 역사에 있었던 사실에 조금이라도 객관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고 봅니다. 그게 역사학의 본류구요. 내가 주장하니까 내 말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정말 맞는가를 고민하면 보시는 분들이, '이런 게 또 있네' 하면서 퍼즐을 맞춰보면서 스스로 역사 인식을 가질 수 있거든요. 결국 역사가들은 일반 시민들이 역사 인식을 갖도록 도와드리는 건데요. 일반인들이 역사에 대해서 갖는 가장 기본적인 것은 바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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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배훈식 기자 = 정혜경 박사가 지난 4일 서울 서초구 토즈에서 지승호 인터뷰 전문 작가와 이영훈 낙성대경제연구소 이사장의 공저 도서인 '반일 종족주의'에 대해 뉴시스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09.13. dahora83@newsis.com

 □ 지승호 작가는
1966년 부산 출생. 월간 <인물과 사상>에서 인터뷰 코너를 오래 담당했으며, 월간 <전원생활>의 인터뷰를 맡고 있다. 인터뷰 단행본 저서로 <마주치다 눈뜨다> <7인 7색> <만화, 세상을 그리다> <영화, 감독을 말하다> <감독, 열정을 말하다> <우석훈, 무엇으로 희망을 말할 것인가?> <신해철의 쾌변독설> <공지영의 괜찮다, 다 괜찮다> <박원순, 희망을 심다> <배우 신성일, 시대를 위로하다>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 <강신주, 맨 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이석연의 페어플레이는 아직, 늦지 않았다> <장하준, 한국경제 길을 말하다> <바이러스가 지나간 자리> <김의성, 악당 7년>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등 50여권이 있다. 인터뷰론을 정리한 책으로 <마음을 움직이는 인터뷰 특강>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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