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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상은, 젊음·위로의 증표···처방·공감의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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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10-02 06:00:00  |  수정 2019-10-02 06:25:11
5년만의 새앨범 '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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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브리즈뮤직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아직도 청춘(靑春)이 아닌, 언제나 청춘이다. 미리 들어본 가수 이상은(49)의 새 앨범 '플로(fLoW)'는 젊음의 증표였다. 그녀의 젊음에는 졸업이 없다.
 
최근 홍대 앞에서 만난 이상은은 "어른이 돼 가면 생각도 마음도 굳어져요. 그것들을 유연하게 만드는 것이 문화의 역할이죠. 흘러갈 수 있게 만드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래서 2014년 발매한 15집 '루루(lulu)' 이후 5년 만인 2일 발매하는 앨범 제목도 '플로', 즉 '흐름'이다. 이상은의 흐름에서 중요한 요소는 지금 이 순간에 대한 집중이다. "지금 몰입해서 사는 것이 최고의 경지고, 그것이 굳어 있지 않는 거죠. 흐를 수 있으면 유연해지고, 경직되지 않는 거죠."

모던록, 포크, 팝, 일렉트로니카 등의 궤적을 자유롭게 오가는 자작곡 6곡이 실린 이번 앨범도 물 흐르듯 유려하다. 다만 편곡은 다른 뮤지션들에게 맡겼다.

공간감이 돋보이는 엠비언트뮤직 풍의 '릴렉스'는 싱어송라이터 이규호, 동네의 향수가 기억의 골목마다 들어서게 만드는 '일상노마드'와 신비로운 사막의 밤길을 걷는 듯한 '오아시의 밤'은 바이올리니스트 강이채, 맑고 청량한 분위기의 '가을 수채화'는 영화 '미성년'의 음악감독 박성도, 미디엄 템포의 뉴트로 풍 '넌 아름다워'와 약동하는 멜로디와 리듬의 '플로'는 '언니네 이발관'·'나이트오프'의 이능룡이 편곡했다.

모든 곡의 각 정서에 맞게 입체감이 돋보인다. 사운드 역시 극세사 이불을 덮은 듯 매끈하다. 레코딩 엔지니어인 강효민 씨가 힘을 보탰기 때문이다. 강 씨는 2010년 '제52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최우수 클래시컬 크로스오버 앨범상'을 받은 첼리스트 요요마의 앨범에 엔지니어로 참여했던 전문가다. 평소 친분이 있는 프로듀서 김기정 씨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고 들려준 강씨의 사운드에 이상은은 단숨에 빠져들었다.

이런 기술적 완성도는 곡을 들을 때마다 집중력을 높여준다. 자연스레 시 같은 그녀의 노랫말도 귀에 밀착된다. 이상은은 2004년 시집 ‘푸른 달팽이의 달빛무대 & 솔(SOUL)’을 발매하기도 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니 내 고양이의 눈 속에 ‘초록빛 오로라’를 발견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릴렉스'는 스트레스와 우울의 시대에 포근함으로 "힘을 낼 수 있는 분위기를 형성" 하고자 만든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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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로 시작하는 '일상 노마드'는 보헤미안이자 유목민인 이상은이 권하는 '우리동네 여행기'다. 소소한 일상이 삶에서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해 노래한다.

이상은은 '일상 노마드'를 자신은 빠지는 느낌으로 노래했다. "음악은 결국 듣는 사람을 위한 것이잖아요. 완성되면 제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태국 섬 같은 곳으로 도망가 쉬고 싶다는 생각도 드는데, 일상에서 노마드로 살면서 공감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계속 서울 집에서만 작업을 했죠. 그런데 동네를 돌아도 마음가짐에 따라서 충분히 힐링을 받을 수 있는 거예요. 일상의 언어로 동네에서 아름다운 행복을 감각하는 것이 좋았어요."

마치 피천득의 수필을 읽는 듯한 친근하고 담백하며 소소한 행복과 기쁨을 이 곡을 통해서 다시 체험한다. 

반면 '가을 수채화'는 가을 풍경을 삶의 깊이로 물들인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 부를 만하다. 이상은의 대표곡 '비밀의 화원'이 '봄의 노래'라면 '가을 수채화'는 제목 그대로 '가을 노래'다. 이상은은 "제 인생도 이제 가을로 접어들었죠. 팬들도 40대가 됐고. 어른스런 표현을 하고 싶었고, 미사여구도 멋지고 아름답게 그려내려고 했어요."

'오아시스의 밤'은 신비로운 사운드와 정서가 가득하다. 냉기가 서려 있어 더 청량한 현악과 공간감 있는 타악이 공명하며 어둠 속에서 빛을, 사막 속에서 우물을 찾는 뭉근한 의지의 희망가다.

전주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시작하는 '넌 아름다워'에 대해 이상은은 자기 식 '유 아 소 뷰티풀' 같은 곡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이 곡은 최근 대중문화계 마법 같은 순간을 선사한 곡이기도 하다. 최근 영화계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독립영화 '벌새'(감독 김보라)의 영상과 협업한 이 곡의 뮤직비디오가 공개됐는데 음악팬, 영화팬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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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부조리 같았던 한국사회에서 상처투성이로 살아온 여성의 공감대를 표현한 영화의 감성이 '넌 아름다워'에도 녹아 있다. 가사에 '허밍버드(hummingbird)', 즉 벌새도 등장한다. 의식하지 않고, 의도하지 않아도 공감대가 형성되는 이 마법 같은 순간은 거친 삶의 파도에 휩쓸려가는 이들의 연대를 톺아본다. 돌고래들이 말없이도 서로 통하고 있는 풍경이 그려진다. 이상은의 대표곡 제목이기도 한 '돌고래자리'가 그렇게 그려진다.

이처럼 이상은의 이번 앨범의 큰 성과 중 하나는 한 시대를 같이 살아온 문화향유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음반이라는 점이다. 힘겨운 삶 속에서도 문화가 꽃 피웠던 90년대를 살아온 이들이 신기하게 서로를 구경하다 어느 순간 손을 맞잡는 풍경. 이상은의 '플로'가 그 그림의 핵심 퍼즐이다.
 
1988년 '강변가요제'에서 '담다디'로 대상을 받으며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 이상은은 지난해 데뷔 30주년을 보냈다. 하지만 그녀답게 별다른 이벤트 없이 그냥 흘러 보냈다.

여전히 '담다디'로 이상은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지만 '담다디'는 뮤지션 이상은이라는 본 궤도에 진입하기 위한 초입일 뿐이다. 더 기억의 연안에 머물러 있는 것은 대상을 받은 후 보고 싶은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마이클 잭슨"이라고 우렁차게 외치던 이상은의 씩씩한 정경이다.

이상은은 과거의 인기나 영광이 아닌 동심을 지키려고 한다. 집순이를 자처한 이상은은 일상을 살면서 "나만의 공간, 나만의 시간을 성벽처럼 쌓고 있다"고 했다. 어린 아이들이 텐트를 치고 자신의 공간을 만드는 것처럼.

"스스로 세상과 동떨어져 있는 느낌이 들 때 동심이 찾아와요.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시간대는 새벽이죠. 오직 저만의 상상력이 만개하는 시간. 그럴 때 행복하고, 감성이 지켜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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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간은 '자신을 만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자신의 진짜 생각이 아닌 것을 말하거나 그런 척 해야 할 때 피곤함이 찾아옴을 이상은은 안다. "'진짜 내 생각이 뭐지' '내가 뭘 좋아하지'라고 생각해야 해요. 자신에게 야박하게 굴 필요가 없죠. 자신의 목소리는 자신이라도 듣고 살아야 하잖아요."
 
자신을 찾지 못해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이상은 식 처방과 마법은 이어진다. '우리가 체감할 수 있는 시간은 지금' 밖에 없고, '언제나 오늘이며 언제나 지금'이며, 영원은 '지금이라는 것의 연쇄 고리'라는 사실.

이상은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인 ‘플로(FLOW)’는 상처 입은 이들이 지금 자체에 몰두하고, 이 순간과 오늘을 안아보라는 처방전이 된다.

이 처방의 기원은 이상은이 고 3이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은 헌법재판소가 들어선 안국역 인근의 옛 창덕여고 부지. 야자를 하던 깊은 밤, 교실 창문을 넘어가 강당에 들어서면 마치 다른 세상이 펼쳐진 듯했다.

"야자를 하면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웠는데, 강당에서 노래를 부르면 씻은 듯 증상이 없어졌어요. 캄캄한 연극 무대 같은 그곳에서 행복했죠. 100년이 된 건물, 밖으로는 넝쿨이 있고, 붉은 벽돌과 오래된 건물 냄새. 참 행복했던 공간입니다."

이상은이 9, 10일 서울 한남동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여는 이번 앨범 발매 기념 콘서트에서 그 원형의 공간을 간접 체험할 수 있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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