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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거꾼 '상자'의 인생역정···고선웅 '낙타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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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10-08 17:49:33
서울국제공연예술제 국내 초청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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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선웅 연출 ⓒ예술경영지원센터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1930년대 중국 베이징으로 올라온 상자라는 청년의 '마지막 생일' 같은 이야기에요. 꿈을 끝내 이루지 못하고 서서히 인생을 깨달아가죠. 절망의 끝이 없는 작품이라고 할까요. 근데 그 이야기를 다 하고 나면, 관객은 희망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겁니다. 결국 절망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애이불비(哀而不悲), 속으로는 슬프면서 겉으로는 슬프지 않은 체함을 가리킨다. 자신만의 '애이불비 휴머니즘'을 구축한 고선웅(51) 극공작소 마방진 예술감독의 애이불비의 정서는 '체 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슬픔의 끝에 다양한 형식으로 위로를 건넨다.

고 연출은 공연계 '미다스 손'으로 통하는 스타다. 연극 '조씨 고아, 복수의 씨앗' '푸르른 날에', 뮤지컬 '아리랑'뿐 아니라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 '흥보씨', 오페라 '1945'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른다. 지난해 평창동계패럴림픽 개·폐막식을 총연출하기도 했다.

'2019 서울국제공연예술제'(SAPF·스파프) 국내 초청작으로 17~20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 '낙타상자'는 고 감독의 정서를 압축한다.

'낙타상자'는 중국 근대 문학사의 대표 휴머니스트 작가 라오서가 1937년 출간한 소설이 원작이다. 1945년 미국에서 '릭쇼 보이(Rickshaw Boy)'로 번역돼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낙타상자'는 20세기 초 20대 젊은 인력거꾼 '상자'의 인생 역정을 통해 당시 하층민들에 대한 옛 사회의 잔혹한 수탈과 참상을 생동감 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올해 5월 제40회 서울연극제 참가작으로, 당시 매진을 기록했고 이번에도 티켓을 오픈하자마자 모두 팔려나갔다. "온갖 사람들 온갖 일들 하고 살지만, 그 중에 제일 밑바닥은 인력거꾼 인생이라네"라는 대사가 작품 속 인력거꾼의 삶을 대변한다.

고 감독은 8일 성북구 동소문동3가 심윤희 댄스 연습실에서 "상자는 희망을 찾지 못해요. 하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통찰을 할 수 있지 않나라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흙 한줌이 되지만,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건지 보여준다고 생각해요"라는 것이다. "추락 중인 것은 아직 추락한 것이 아니니,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야한다"는 얘기다.

원작이 사건 위주가 아닌, 인물의 인생 서사를 보여주는 점이 좋았다고 특기했다. "지금과 맞닿아 있어요. 누군가는 이력서를 수없이 내면서 발버둥을 치고, 또 누군가는 집을 장만하기 위해 돈을 벌어들이는데 그 사이 집값은 뛰어 있고. 희망이나 꿈은 우리를 반겨주지 않죠."

원작을 한국식 정서로 보강한 고 감독은 이런 고전이 '왜 현재적인 작품을 공연하는 스파프에 필요하냐'는 고민을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도전이라는 것은 현대와 관계 맺기가 있지 않으면 불가능해요. 시의성이 있는 작품이라 도전이 가능하죠. '낙타상자'는 한 인물 자체의 생애를 보여주는 것이 재미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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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낙타상자' 연습장면 ⓒ예술경영지원센터
무엇보다 고 감독은 상자를 보고 측은지심이 들었다고 했다. 생계수단인 인력거만 진짜로 여기던 상자는 차차 변해간다. 입에 들어가는 것만 진짜로 여기게 되고 결국 죽음만 진짜로 인지한다. 희망적인 존재이던 인력거는 어느새 뒷전이 되고 저 암흑만이 진짜로 믿게 된다. "모든 인생이 다 그렇지 않나요?"

'낙타상자'는 한국 작가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과 비교되기도 한다. 이 작품에도 인력거꾼 '김첨지'가 주인공이다. 그는 상자처럼 사회의 바닥에 있는 인력거꾼이다. 두 작품이 배경을 삼은 시대도 비슷하다.

고 감독은 "고등학교 때 '운수 좋은 날'을 보고 엄청 울었어요. '낙타상자'와 '운수 좋은 날'이 다른 점은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가 처한 상황은 너무 처참한데 상자는 깨어 있는 청춘이라 그 자체가 동력이라는 점"이라고 짚었다.

상자는 아끼고 아껴 마련한 인력거를 전쟁의 포로로 잡히면서 빼앗긴다. 군대에서 도망쳐 나오다 낙타 3마리를 끌고 나오지만, 제 값도 못 받고 낙타와 함께 나락으로 빠져든다.
 
고 감독은 "낙타와 상자를 대비해서 오는 삶의 시각적인 모습이 있다"면서 "낙타와 사막의 길을 가는 것과 인력거를 끌고 가는 것이 치환이 되는 거죠. 메타포와 인물의 동력이 '낙타상자'의 매력이었고 그래서 끌렸어요"라고 말했다.

배우 임진구가 상자를 맡는다. 홍자영, 장재호 등이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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