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 축구

경기는 전쟁, 생활은 답답…힘겨웠던 평양 원정기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등록 2019-10-17 08:41:37
손흥민 포함 선수단, 17일 귀국…거친 몸싸움에 욕설까지
북한측 대표팀에 경기장면 녹화한 DVD 건네
associate_pic
【인천공항=뉴시스】이영환 기자 = 29년 만의 평양 원정에서 무승부를 기록한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파울루 벤투 감독이 17일 오전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입국한 뒤 코치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19.10.17. 20hwan@newsis.com
【인천공항=뉴시스】권혁진 기자 = "전쟁을 치르는 것처럼 거칠었어요. 지금까지 축구를 보면서 그렇게 밖에서 함성을 지르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축구대표팀 단장 자격으로 평양 원정길에 동행했던 최영일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북한과의 경기를 묻자 혀를 내둘렀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북한 원정을 마치고 17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16일 오후 5시20분 평양을 떠난 선수들은 중국 베이징을 거쳐 한국으로 돌아왔다. 파울루 벤투 감독과 K리거, 한국에 잠시 머물 예정인 손흥민(토트넘) 등이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중국 슈퍼리그에서 뛰는 김신욱(상하이 선화), 김민재(베이징 궈안), 박지수(광저우 헝다)와 유럽에서 활약 중인 이강인(발렌시아), 백승호(다름슈타트), 권창훈(프라이부르크), 중동파인 이재익(알 라이안), 남태희, 정우영(이상 알 사드)은 중국에 남거나 베이징에서 각자 리그가 속한 국가로 향했다.

한국은 15일 북한 평양의 김일성경기장에서 북한과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 H조 조별리그 3차전을 치렀다. 0-0으로 끝난 해당 경기는 방송 중계가 되지 않았다. 교체와 옐로카드 등 최소한의 정보 외에는 접할 수 없었다.

궁금증은 선수단과 동행했던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들과 벤투 감독, 주장 손흥민의 입을 통해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associate_pic
【인천공항=뉴시스】이영환 기자 = 29년 만의 평양 원정에서 무승부를 기록한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황의조, 조현우 등 선수들이 17일 오전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2019.10.17. 20hwan@newsis.com
이들은 경기 분위기에 대해 너나 할 것 없이 "거칠었다"고 입을 모았다.

최 부회장은 "팔꿈치, 손 등을 사용하더라. 공중에 공이 뜨면 무릎으로 치고 들어왔다"면서 "북한 선수들은 안지겠다는 눈빛이 살아있더라. 우리는 기술적인 축구를 하려했고, 북한은 정신적으로 했다"고 떠올렸다.

손흥민은 "축구를 하다보면 몸싸움은 당연히 허용된다. 하지만 누가 봐도 거칠게 들어오는 상황이 되게 많았다. 그쪽 선수들이 너무 예민하게 반응했다"고 말했다.

북한 선수들의 도를 넘는 행동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손흥민은 "경기장에서 심한 욕설도 많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구체적으로 어떤 말이었는지 다시 묻자 "별로 기억하고 싶지는 않다"고 웃었다.

5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에는 썰렁한 기운이 감돌았다. 북한측이 일반 관중의 출입을 불허했기 때문이다. 2년 전 여자축구대표팀의 남북 대결 당시 주민들을 가득 모아 열띤 응원을 펼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초청을 받은 몇몇 인사들만이 자리를 지켰다.

최 부회장은 "'저 문이 열리면 5만 관중이 들어오겠지'라는 기대를 계속했다. 그런데 끝까지 안 열리더라. 선수들과 벤투 감독도 많이 놀랐다"고 회상했다.

associate_pic
【인천공항=뉴시스】이영환 기자 = 29년 만의 평양 원정에서 무승부를 기록한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주장 손흥민이 17일 오전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입국한 뒤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10.17. 20hwan@newsis.com
남북 대결을 위해 평양으로 날아온 국제축구연맹(FIFA) 관계자들 역시 생소한 광경에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최 부회장은 "경기가 시작한 뒤 (VIP실) 중앙문이 열리자 인판티노 회장이 보였다. FIFA 관계자들도 무관중에 대해 놀라더라"고 전했다.

북한 인사들은 되도록이면 방북자들과의 대화를 피하려고 했다. 말을 건네도 못 들은 척 넘기기 일쑤였고 어쩌다 대답을 해도 형식적인 말만 내뱉었다.

최 부회장은 "'이렇게 해야한다, 저렇게 해야한다' 정도로만 끝냈다. 말을 걸어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물어봐도 대답을 안 한다. 왜 무관중 경기가 됐느냐고 물었더니 '오기 싫어서 그러지 않았겠느냐'고 넘어가더라"고 했다.

선수단과 임원진은 북한의 엄격한 통제 아래 2박3일을 보냈다. 경기와 훈련을 위해 김일성경기장을 방문한 것을 빼면 나머지 시간을 숙소인 고려호텔에서만 머물렀다. 방북한 선수단 관리를 위해서였는지 고려호텔은 방북 인원들 외에는 손님을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원정의 필수품으로 자리매김한 휴대폰 등 전자기기는 물론 책까지 반입하지 못한 선수들은 휴식과 담소로 시간을 보냈다. 손흥민은 "나는 개인적으로 좋았다. 잠을 많이 잤다. 선수들끼리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소개했다.

전례 없는 푸대접은 내년 6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릴 리턴매치 승리로 되갚아줄 생각이다. 최 부회장은 "그때는 혼내줄 것이다. 실력으로는 우리가 낫다고 본다.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한편 북한은 한국 선수단이 평양을 떠나기 전 중계 영상이 담긴 DVD를 건넨 것으로 확인됐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영상은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우선 중계가 가능한 수준인지 봐야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hjkwon@newsis.com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오늘의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

스포츠 핫 뉴스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