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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싱크홀 하나, 백제왕실 화장유골 첫발굴 단초됐다

등록 2019.10.23 17:5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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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밭 싱크홀 주민 발견…우물 판 흔적·유물 등 출토

한성백제박물관, 석촌동 고분군 발굴조사 설명회 현장

수십명 시민 참가해 관심 반영…묘역과 유물 등 전시도

【서울=뉴시스】 박대로 기자 = 23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석촌동 고분군 발굴현장에서 윤정현 학예사가 신규 발굴사항을 설명하고 있다. 2019.10.23. daero@newsis.com

【서울=뉴시스】 박대로 기자 = 23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석촌동 고분군 발굴현장에서 윤정현 학예사가 신규 발굴사항을 설명하고 있다. 2019.10.23.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박대로 기자 = 23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석촌동 고분군 발굴 현장이 소란스러워졌다. 평소에는 유물 발굴을 위한 조용하고 섬세한 작업이 이뤄지고 이웃주민 산책 장소로 활용되던 이 동네가 사람들로 북적인 것은 발굴조사단이 중대 발표 내용을 이날 공개했기 때문이다.

발굴현장 주변에 설치된 임시 천막에는 대형텔레비전과 함께 참석자들을 위한 의자가 여러개 놓였다. 오후 2시가 되자 언론사 기자들뿐만 아니라 지역주민, 고고학에 관심이 많은 시민 등 수십명이 이 장소로 모여들었다.

정치영 석촌동 고분군 발굴조사단장(한성백제박물관 학예연구사)이 마이크를 잡고 발언을 시작했다.

정 단장은 "석촌동은 풍납토성, 몽촌토성, 방이동 고분군 등과 함께 한성 백제의 도성 핵심인 왕릉 권역의 중심부에 있다"며 "1917년도 일본인 학자를 비롯해 여러 학자들이 이 일대를 조사했는데 원래 300기가 넘는 고분이 있었다. 그런데 여기 이 분포도를 보면 대부분 연립주택이 들어섰다"고 설명했다.
【서울=뉴시스】 박대로 기자 = 23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석촌동 고분군 발굴현장에서 윤정현 학예사가 신규 발굴사항을 설명하고 있다. 2019.10.23. daero@newsis.com

【서울=뉴시스】 박대로 기자 = 23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석촌동 고분군 발굴현장에서 윤정현 학예사가 신규 발굴사항을 설명하고 있다. 2019.10.23. [email protected]

주택가 가운데 섬처럼 남아있는 석촌동 고분군은 수많은 백제시절 무덤들 중의 일부인 셈이다.

석촌동 고분군이 발굴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4년 잠실 일대 개발을 계기로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시작됐고 1980년대 인근 민가가 철거되고 1987년부터 '백제고분공원'으로 조성됐다. 고분공원 안에는 적석총 5기와 흙무덤 1기 등 고분 6기가 있다.

이날 새로 공개된 발굴내용은 연접식 적석묘 16기와 그 안에서 발견된 화장 유골, 그 밖의 유물들이다.

발굴지는 고분군 한가운데에 있다. 석촌동 고분군은 최북단에 있는 가장 큰 3호분을 기점으로 4호분, 2호분, A호 적석총, 1호분, 5호분이 일자로 늘어선 형태다. 그간 2호분과 A호 적석총 사이에 공간은 널찍하게 비어있었는데 이곳에서 역사적인 발굴이 이뤄진 것이다.

발굴이 시작된 사연도 특별하다. 2015년 비가 내린 어느날 잔디밭에 직경 50㎝짜리 땅꺼짐(싱크홀)이 생겼고 이를 신기하게 여긴 주민이 이 사실을 송파구청에 알렸다. 구청으로부터 전달 받은 한성백제박물관은 2015년 발굴에 착수했고 소위 대박이 터졌다.
【서울=뉴시스】 박대로 기자 = 23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석촌동 고분군 발굴현장에서 윤정현 학예사가 신규 발굴사항을 설명하고 있다. 2019.10.23. daero@newsis.com

【서울=뉴시스】 박대로 기자 = 23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석촌동 고분군 발굴현장에서 윤정현 학예사가 신규 발굴사항을 설명하고 있다. 2019.10.23. [email protected]

현장 설명을 맡은 윤정현 학예연구사는 "구덩이를 파보니 관정(우물)을 판 흔적이었다"며 "관정 벽에서 돌과 흙을 쌓은 게 확인됐고 이어 금귀걸이와 유리구슬 등이 출토됐다"고 발굴 초기 당시를 설명했다.

윤 학예사는 기자와 시민들을 이끌고 발굴 현장에 진입했다. 규칙성 없어 보이는 돌무더기 속에 고분이 있던 자리, 매장 유물이 있던 자리 등이 팻말로 표시돼 있었다. 윤 학예사는 각 구역을 돌아다니며 해당 구역이 의미하는 바를 설명했다. 다소 어려운 고고학 용어가 구사됐지만 설명회 참가자들은 학예사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발굴현장은 남북 100m, 동서 40m에 달했다. 현장을 둘러보니 돌과 점토로 만든 묘 16개가 이어져 있었다. 아직 완벽하게 발굴되지 않아 형태가 뚜렷하진 않았지만 묘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발굴 현장 가운데에는 유물 전시장소가 마련됐다. 화장된 사람뼈를 비롯해 기와, 토기 등이 전시됐다. 백제와 가야의 교류 사실을 알려주는 가야토기, 금귀걸이, 유리구슬 등도 전시됐다.

백제 왕릉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화장된 사람뼈가 발굴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윤 학예사는 "화장된 뼈를 보면 분골, 즉 빻은 흔적이 보인다. 거친 조각 형태로 발견됐다"며 "발견된 토기들은 매장의례에 쓰였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용도를 알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서울=뉴시스】 박대로 기자 = 23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석촌동 고분군 발굴현장에 발굴 유물이 전시돼있다. 2019.10.23. daero@newsis.com

【서울=뉴시스】 박대로 기자 = 23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석촌동 고분군 발굴현장에 발굴 유물이 전시돼있다. 2019.10.23. [email protected]

이곳에서 출토된 중국식 청자는 이 고분의 주인이 백제 왕족이었음을 보여준다고 한다. 백제에는 청자 제작 기술이 없었으므로 중국으로부터 수입할 수 있는 재력을 갖춘 왕족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고분에서 발굴된 기와 역시 눈길을 끌었다. 윤 학예사는 "고분군에는 기와를 쌓을 만한 기둥이 없다. 그리고 기와는 당시 상당히 귀했다. 금강 유역에서는 다 쓴 기와가 유통되기도 했다"며 왕족이 묻힌 고분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유물을 둘러보던 한 참가자는 "백제시대에 이런 것을 넣은 것은 어마어마한 것"이라며 "이런 걸 발굴했으니 상을 줘야 한다"고 발굴단을 칭찬하기도 했다.

다만 이 고분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확인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유전자 분석 등이 불가능해 백제 왕족이 주인일 것으로 추정하는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윤 학예사는 "이미 화장된 뼈라 유전자 분석은 불가능하다"며 "설사 유전자 분석이 가능하다고 해도 뼈의 주인이 백제 왕족임을 증명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고 고분의 주인이 정확히 누구인지 확인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윤 학예사는 이번 발굴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백제 한복판에서 화장 인골이 나온 첫 사례라는 점은 의미가 크다"며 "한성 백제의 한복판에서 (고분을 만들기 위한) 대규모 토목사업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부분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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