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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프렐조카주, 중국 설화서 가상현실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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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10-27 08:28:16
최신작 '프레스코화', LG아트센터서 국내 첫선
벽에 그려진 긴 머리 여인에게 매혹돼 그림 속으로 빨려들어간 남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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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줄랭 프렐조카주 (사진 = LG아트센터 제공)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중국 청나라 초기에 나온 문어체의 괴이 소설집 '요재지이(聊齋志異)'. 중국 작가 포송령(蒲松齡)이 민간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귀신, 도깨비, 신선 등의 기이한 이야기를 묶어 집필한 소설집이다. 중국판 '아라비안 나이트'로 통한다.

여기에 수록된 '벽화'는 오래된 절을 방문한 남자가 벽에 그려진 긴 머리의 여인의 모습에 매혹돼 그림 속 세계로 빨려 들어간다는 이야기다.

세계 정상급 '프렐조카주 발레단'을 이끄는 프랑스 안무가 앙줄랭 프렐조카주(62)는 e-메일 인터뷰에서 '벽화'에 관해 "지금 우리에게 펼쳐지는 일과 매우 흡사하다. 바로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라고 짚었다. "이야기 속에서 한 남자는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데, 그 그림이 우리가 현재 보는 가상현실인 것"이라고도 했다.

프렐조카주는 오늘날 젊은 세대들은 가상현실에 열광하고 있다며 '포켓몬-고'를 예로 들었다. 위치기반 서비스를 활용한 증강현실(AR) 게임인 포켓몬고는 2016년 출시 이후 지금까지도 세계적인 인기다.

프렐조카주는 "이 게임은 우리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며 "'벽화'는 수백 년 전에 쓰여진 이야기지만 우리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최신작 '프레스코화(La Fresque)'는 중국의 몽환적인 설화 '벽화'를 바탕으로 현실과 재현, 꿈과 현실의 경계에 대해 탐구한다. 11월 1~3일 LG아트센터에서 국내 첫 선을 보인다. 

'벽화'의 주인공이 긴 머리의 여인에게 매혹되는 것처럼 이 작품에서는 머리카락의 움직임이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공연이 시작하면 마치 긴 머리카락이 공중에 떠다니는 듯한 이미지가 그려진다. 그림 속 여인들로 등장하는 다섯 명의 여성 무용수들이 긴 머리카락을 전후좌우로 흔든다.

프렐조카주는 "흔들리는 머리카락은 그 자체로 매우 시적(詩的)"이라고 했다. '프레스코화'에서 머리카락은 매우 중요한 상징이다. 고대 중국에서 머리를 길게 풀어낸 여성은 그녀가 자유롭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만약 머리를 묶어 올렸다면 그녀는 이미 결혼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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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렐조카주 발레단 '프레스코화' (사진 = Jean-Claude Carbonne 제공)
그는 "머리카락이 중요한 극적 흐름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매우 재미있게 느껴졌다. 그래서 어떻게 우리가 머리카락으로 춤을 춤을 출 수 있을지 생각해봤다. 다리나 팔이나 몸이 아닌 무용수들의 머리카락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돌아봤다.

"머리카락은 머리와는 독립적으로 움직입니다. 그래서 머리카락에 특정한 움직임을 주려면 특정한 포인트에서 움직임을 멈춰야 했습니다. 그건 매우 창의적인 과정이었습니다. 이제 이 머리카락 움직임을 지칭할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하."

2016년 프랑스 초연 후 호평을 들었다. 영국 새들러스 웰스 극장을 비롯 미국과 유럽의 주요 극장을 투어하고 한국을 찾는다. 프렐조카주 발레단은 2014년 장 폴 고티에와 협업한 '스노우 화이트'를 포함 지금까지 다섯 차례 내한했다. LG아트센터 공연은 이번이 처음.

"한국 관객들을 다시 만나게 돼 매우 기쁩니다. 한국의 관객들은 매우 세련됐다"면서 "문화적 수준이 매우 높아요. 컨템포러리 예술도 매우 활발하게 펼쳐지죠. 그래서 한국 관객들을 만나는 것은 저에게 커다란 도전이지요."

프렐조카주는 프랑스로 망명한 알바니아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가족 몰래 발레 학원을 다니며 클래식 발레를 공부했다. 이후 현대 무용으로 전향해 1984년 안무가로 데뷔했다. 우아하면서도 관능적인 움직임, 독특한 미학과 파격적인 해석을 선보이며 단번에 무용계의 주목을 받았다.

리옹오페라발레, 파리오페라발레, 뉴욕시티발레, 볼쇼이발레 등 세계적인 발레단의 작품을 안무했다. 2006년부터 액상 프로방스에 건설된 프랑스 최초의 무용창작센터 더 파빌론 누아르에 자신의 무용단과 함께 입성, 상임안무가로 매년 1~2편의 신작들을 꾸준히 발표해 오고 있다.

파빌론 누아르는 프렐조카주 발레단을 위해 지어졌다. 프렐조카주는 이곳을 통해 자신들의 활동이 더욱 확장됐다고 했다. "우리는 세계의 다른 무용단을 초청하는 시즌제도 운영합니다. 우리는 일종의 기획(프로그래밍)을 하고 있으며 그럴 수 있어서 매우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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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렐조카주 발레단 '프레스코화' (사진 = Jean-Claude Carbonne 제공)
프렐조카주는 지난 35년간 50여편이 넘는 작품들을 안무했다. 무용계 최고 영예 중 하나인 '브누아 드 라 당스'와 '베시 어워드'를 비롯 수많은 안무상을 차지했다.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훈하기도 했다.

다작을 하는데도 영감이 떨어지지 않는 비결에 관해 그는 "모든 것이 작품의 영감이 되기 때문"이라고 일갈했다. "어느 날 길을 걷다가 두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것을 봤는데 그때 어떤 안무 동작이 갑자기 떠오른 적이 있습니다. 그런 게 책이 될 수도 있고 음악이 될 수도 있고 영화, 혹은 그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각각의 것들이 모두 저에게는 큰 영감입니다."

그는 이번 '프레스코화'처럼 옛날 이야기를 재해석하는데 일가견이 있다. 독일 그림 형제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가 바탕인 '스노우 화이트'를 비롯 '로미오와 줄리엣' '카사노바' '메데아의 노래' '싯다르타' 등이 그렇다.

"모든 유명한 이야기는 보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보편적인 이야기가 우리 개개인의 개성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많은 예술가들은 같은 이야기를 새로운 버전으로 만들려 하고, 이야기의 재해석하는 범위를 확대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을 예를 들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두 가문이 서로 싸우기 때문에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데 프렐조카주는 이것을 사회적 문제로 바꿨다. 줄리엣을 상류층으로 설정하고 로미오를 노숙인으로 설정한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가족간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로 바뀌었죠. 이런 종류의 구체성이 유명한 이야기에 새로운 시선을 가져다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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