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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100년, 영화 검열의 역사···일제부터 현재까지(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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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10-29 15:11:54
29일 한국영상자료원, '검열을 딛고 선 한국영화 100년'
이장호 감독 "박정희 시절, 새마을정책 이후 사라진 초가지붕 나왔다고 잘라"
김수용 감독 "한국 영화 검열 없었다면 봉준호 50년 전에 태어났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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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남정현 기자=29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 '금지된 상상 억압의 상처: 검열을 딛고 선 한국영화 100년'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조소연 한국영화박물관 큐레이터, 김수용 감독, 이장호 감독, 영화사학자 김종원 2019.10.29 nam_jh@newsis.com
【서울=뉴시스】남정현 기자 = 29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 '금지된 상상 억압의 상처: 검열을 딛고 선 한국영화 100년'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간담회에는 김수용 감독, 이장호 감독, 영화사학자 김종원, 조소연 한국영화박물관 큐레이터가 참석했다. 

이번 행사는 한국영화 검열제도의 변천사와 그 영향을 소개하고자 기획됐다. 일제강점기 시작된 한국영화는 탄생의 순간부터 통제와 간섭의 대상이었고, 전쟁, 군사정권기를 거치며 긴 시간 권력의 통제 하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검열 서류, 관계자 증언 영상 등의 풍부한 자료를 토대로 1920~90년대 한국 영화계의 그늘진 단면을 확인할 수 있다.

이장호 감독은 검열의 본질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권력체제가 손상을 입지 않기 위해 검열을 시작했을 거다. 사회고발하는 내용을 자르면 자기네가 졸렬해 보일 것 같으니까 성적인 것 같은 것도 함께 (검열 항목에) 넣어서 하지 않았을까 싶다. 제일 넌센스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사극이 아닌데 초가지붕이 나왔다고 잘린 거였다. 자른 이유가 새마을정책 이후 초가지붕이 사라졌는데 초가지붕이 왜 나오냐는 이유였다"라며 혀를 내둘렀다.

김수용 감독은 "자기보다 앞서가는 걸 자르는 거다. 영화를 영화로 봐야하느데 그렇게 안 봤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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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남정현 기자=29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 '금지된 상상 억압의 상처: 검열을 딛고 선 한국영화 100년'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영화사학자 김종원(왼쪽)과 이장호 감독이 전시실을 둘러보고 있다. 2019.10.29 nam_jh@newsis.com
이어 김수용 감독은 검열로 인해 한국영화의 발전이 더디었다고 짚었다. 김 감독은 "1958년에 첫 영화를 찍었다. 50년이 넘었다. 검열로 잘린 필름 수로 부산을 왔다갔다 할 거다. 만약에 한국 영화가 검열로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 영화는 (지금보다) 30~50년은 앞질러 갔을 거다. 봉준호가 50년 전에 태어났을 거다. 유현목, 김기영 감독이 봉준호 감독 같은 생각을 못했겠나. (오히려) 더 앞서 있었다. 과거에는 못하게 했고, 지금은 뭐라고 안 하니까 다 하지 않나. 검열이 결과적으로 한국영화의 반은 죽였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한국의 검열이 없어졌기 때문에 '기생충'이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이장호 감독도 김 감독과 비슷한 생각을 공유했다. 이 감독은 한국 영화의 역사를 '아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흙수저의 입지전적 자수성가'라고 표현했다. 이 감독은 "바람 불어 좋은 날'에 마지막 장면을 보면 안성기가 권투 연습장에서 스파링 파트너에게 계속 얻어 맞으며 쓰러지는 장면이 나온다. 넘어져서 헉헉 거리면서도 억지로 웃는다. 그 장면이 마치 한국영화를 얘기하는 것 같았다. 한국영화는 태어나서 성장까지 계속 얻어맞고 자랐다. 이런 고난을 견뎌 지금의 영화 번영을 이뤄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감독들은 자기 검열로 이어질 것을 염려해 검열을 신경쓰지 않고자 노력했다. 이 감독은 "검열을 많이 당했지만, 검열을 의식한 적이 없다. 그 검열로 내가 스스로를 검열해 2차 피해를 입으면 더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검열을 의식하고, '이 장면은 검열에 걸리겠지'라고 생각하며 (장면이) 아예 햇빛을 보지 못하게 될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김 감독 또한 "우리는 검열을 신경 쓰지도 않았다. 남들이 보기에나 신경 쓰는 것처럼 보였을 거다. 우리는 그냥 찍고 '마음대로 자르라면 자르라지'라는 생각으로 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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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남정현 기자=29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 '금지된 상상 억압의 상처: 검열을 딛고 선 한국영화 100년'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이장호 감독, 김수용 감독, 영화사학자 김종원이 검열실을 재현한 공간에 앉아 있다. 2019.10.29 nam_jh@newsis.com
전시는 △ 검열의 역사 △금지된 창작의 자유 △빼앗긴 필름 △미성년자 관람불가 △검열의 기억 등 다섯 섹션으로 이루어져 있다. '검열의 역사' 섹션은 주요 검열 사례, 관련 자료·영상을 통해 검열의 역사를 본다. '금지된 창작의 자유' 섹션에서는 벽면 가득 검열서류들을 전시한다. 이를 통해 창작과 표현의 자유가 갖는 의미를 되새겨 본다.

'빼앗긴 필름' 섹션에서는 70년대 검열실을 재현한 공간과 검열로 삭제된 필름들을 감상할 수 있다. '미성년자 관람불가' 섹션의 경우, 선정성과 폭력성이 과도한 영상을 뽑아 제한된 공간에서 공개한다. '검열의 기억' 섹션은 당시 검열을 집행한 검열관과 검열을 겪은 영화인들의 증언을 영상과 채록 자료집으로 소개한다.

주요 검열 삭제 필름 상영 리스트로는 '자유 부인'(1965, 한형모 감독/포옹, 키스씬), '오발탄'(1961, 유현목 감독/아이 없고 목맨 여인, "가자~", 미군이 희롱), '별들의 고향'(1974, 이장호/겁탈 장면), '바람불어 좋은날(1980, 이장호 감독/"참고 살아야 혀. 보고도 못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 말하고 싶어도 벙어리인 척"), '사의 찬미(1991, 김호선 감독/노동조합 결성 논의, 사회주의 사상 역설, 친일파 묘사) 등이 있다.

영화사학자 김종원은 "검열은 1920년대부터 있었다. 1928년 작품 나운규의 '사랑을 찾아서'의 원제는 '두만강을 건너서'다. 일제 강점기 하에서 나라를 잃은 한국인의 피해가 녹아있는 의미였다. 검열은 5공 때 가장 극심했는데 일제 강점기 하의 검열에서 한발자국도 나가지 못했다. 그러던게 김수용 감독께서 심의위원장이 된 이후 상당히 달라져 서구에서 이야기하는 등급 심의가 됐다"라고 검열 역사를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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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남정현 기자=유현목 감독의 '오발탄'(1961). 주인공의 어머니가 "가자~"라고 외치는 장면은 '지나친 현실도피'라는 이유로 검열됐다. 또한 아이를 업고 목을 맨 여인과 미군이 희롱하는 장면 등도 검열돼 삭제됐다. 2019.10.29 nam_jh@newsis.com

검열의 역사는 1987년 6월 민주 항쟁 이후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민주화의 분위기에 힘입어 시나리오 사전심의가 폐지됐고, 1996년 영화 사전심의가 위헌으로 결정되면서 행정적인 의미의 검열은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이장호 감독은 시대가 변한 만큼 현역 감독들이 자기 검열을 하기를 권장했다. 그는 "지금 감독들은 자유방임 상태이니, 스스로가 검열 기준을 가져야 한다. 도덕적으로 맞지 않거나 국민 의식에 역행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검열 기준을 가졌으면 좋겠다. 돈이 목적인지, 작품이 목적인지를 엄격한 기준을 갖고 영화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100년 후에는 '자기 검열이 한국 영화의 우수한 힘이었다'라는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전했다.

기획전시 '금지된 상상, 억압의 상처-검열을 딛고 선 한국영화 100년'은 상암동 한국영화박물관에서 29일부터 2020년 3월22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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