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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출신 장관 유은혜의 명암...대입개편 논의서 한계 드러났다

등록 2019.11.08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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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후 당·정·청 똘똘 뭉쳐 사립유치원 공공성 강화 성과

'조국사태'로 文 지시에 대입개편 발언 수차례 수정 '진땀'

"정시확대시 역사적평가 책임…교육수장으로서 용단해야"

【서울=뉴시스】 박영태 기자 = 문재인 대통령과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5일 오전 서울 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교육개혁 관계장관회의에 참석,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오른쪽은 유은혜 교육부장관. 2019.10.25.  since1999@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영태 기자 = 문재인 대통령과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5일 오전 서울 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교육개혁 관계장관회의에 참석,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오른쪽은 유은혜 교육부장관. 2019.10.25. [email protected]

【세종=뉴시스】이연희 기자 = 약 1년 전인 지난해 10월12일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의원은 사립유치원 원장들이 유치원비로 명품가방이나 성인용품을 샀다는 등의 감사 결과를 실명으로 폭로했다. 언론보도를 통해 이 사실을 접한 국민들은 분노했고, 사립유치원 회계비리에 대한 엄단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거셌다.

당시 전국 사립유치원 80%가 가입한 것으로 알려진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는 대국민 분노에 잠시 머리를 숙이는 듯 했으나, 곧 집단폐원이나 개학연기 등을 내세워 정부를 압박했다. 20여년간 그래왔듯이 당시에도 아이들을 볼모로 정부에 타협을 요구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해 10월2일 취임했던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한유총의 요구를 거절했다. 지난 20여년간 비슷한 사태가 벌어질 때마다 교육부가 한유총과 대화에 나섰던 것과 달리 유 부총리는 단호했다. 한유총 대신 일선 시·도 교육청과 손잡고 감사·고발에 나섰다. 심지어 한유총의 집단 폐업과 개학 연기를 '담합'으로 규정하면서 공정거래위원회까지 지원군으로 끌어들였다. 

또 청와대와 민주당의 지원사격을 받아 유치원 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제정을 추진했다. 자유한국당 반대로 패스트트랙(신속처리법안)이 되자 유아교육법 시행령과 사학기관재무회계규칙을 개정, 회계 투명성 강화를 위한 국가관리회계시스템 '에듀파인'을 모든 사립유치원이 사용하도록 했다.

이 같은 전방위 압박으로 인해 한유총은 결국 6개월여 만에 백기투항 했다. 그러자 교육계 내에선 "정치인 출신 장관이라 확실히 다르다. 기존 교육부 관료들의 마인드나 문법으로는 한유총 사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유 부총리는 그 기세를 몰아 다른 국정과제들에 대해서도 당·정·청 간 협의를 주도했다. 고교무상교육 조기 시행이 대표적이다. 당초 내년 1학기 시행 예정이었지만, 올해 2학기로 한 학기 앞당겼다. 최근 국회에서도 고교무상교육 근거를 마련하는 법이 통과됐다.

유 부총리는 지난 8월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재지정평가와 관련해서도 균형감각을 보였다. 기준점수에 미달했던 11개교 중 논란이 컸던 전북 상산고만 부동의 결정하면서 정책 추진방향과 여론 모두 만족시키는 결과를 낸 것이다.

하지만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대학입시 특혜 의혹이 제기된 이후부터 '정치인 출신'이라는 이력이 유 부총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조국사태로 대입 불공정성 논란이 거셌던 지난 9~10월 유 부총리는 여러 차례 대입 개편 관련 발언을 수정하면서 체면을 구겼다. 이 때문에 교육계 안팎에선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찬반 논란이 가장 첨예한 대입정책을 수립하면서 백년대계를 내다보는 철학이나 소신없이 단순히 대통령 요구에 따라 바꾸는 것은 교육수장이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이 조 전 장관 임명 전인 9월1일 대입제도 전반에 대한 재검토를 지시했을 때만 해도 유 부총리는 "정시 확대는 대단한 오해"라며 학생부종합전형(학종) 개선으로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다 문 대통령이 조 전 장관 임명 이후 대입개편과 자사고·특목고 폐지 등 고교서열화 해소를 주문하자 '학종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비교과 영역 폐지, 자사고·특목고를 일괄폐지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지난달 14일 조 전 장관 사퇴 이후에도 대입개편 관련 발언은 계속 달라졌다. 유 부총리는 지난달 21일 교육부 국정감사에서 "정시 확대는 없다"고 말했으나, 다음날인 22일 문 대통령이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정시 확대'를 언급하자 "서울 주요대학 위주로 정시를 확대한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영남지역 한 국립대 A교수는 8일 뉴시스와 통화에서 "정치적으로 생존해 내년도 국회의원 총선거에 출마하려면 문 대통령 발언을 따르는 게 최선이었을 것"이라면서도 "고도의 전문성과 신념, 조정능력을 필요로 하는 대입정책에서 결국은 대통령을 설득해내지 못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양상은 이전 교육부 장관과 청와대 관계에서도 쉽게 나타난다. 박남기 전 광주교대 총장은 지난해 '교육행정학연구'에 게재한 '대통령의 내각운영 유형과 장관 임명 배경에 따른 교육부 장관 리더십 사례 연구'를 통해 "역대 한국 대통령들이 교육부 장관은 '아바타'처럼 여긴다"고 일갈했다.

그는 "제왕적 권한을 행사하는 한국의 대통령들은 교육부 장관을 자신의 아바타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며 "직을 유지하고자 하는 아바타는 자율조정시스템을 중지시키고 조정에 응해야 한다. 아바타가 조정에 따르지 않으면 폐기 경고가 들어오게 되고, 그러다가 순간 스위치가 꺼진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민들은 교육부 장관이 대통령 아바타가 아니라 자율적인 존재로 착각해 아바타를 공격하면서 교체를 요구하고, 대통령은 그를 희생제물로 활용하면서 위기를 넘겨왔다"고 강조했다. 

이런 비판은 종종 교육부 폐지론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중·고교 한국사 국정교과서 사태가 벌어졌을 떄도 교육부 무용론·폐지론이 제기됐다. 하지만 교육부 입장에선 크게 우려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문제는 최근에 나오고 있는 교육부 무용론·폐지론은 그때와는 다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적 영향력 차단을 위해 중·장기 교육거버넌스인 '국가교육위원회' 설립을 공약했던 문 대통령과 교육부가 오히려 교육과정 전체를 뒤흔들 대입개편을 추진하는 것을 심각하게 바라보는 이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부·여당과 보조를 맞춰왔던 진보교육감들조차 '교육부 패싱(배제)'을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교육감협의회) 소속 대입제도개선연구단은 지난 4일 정기총회에서 자체 대입개선안을 발표하며 "향후 정책연구에서 정치적 입김을 차단하기 위해 교육부를 배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신 4년제 대학협의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와 파트너십을 맺을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가교육회의에 참여하는 B교수는 "유 부총리가 문 대통령 뜻대로 정시 확대를 결정하게 되면 결국 그 과실과 역사적 평가를 유 부총리가 떠안게 될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교육수장' 유은혜로서 용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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