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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쿠팡은 알고, 이마트는 모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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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11-13 11:17:17  |  수정 2019-11-13 12:5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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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박미영 기자 = 2012년 4월 미국 최대 가전 양판점인 베스트바이의 최고경영자 브라이언 던이 전격 사임했다. 이어 2017년 6월 세계 굴지의 패션의류업체 제이크루의 창업자 미키 드렉슬러가 자리에서 물러났다.

베스트바이는 아마존의 쇼루밍 전략에, 제이크루는 패스트패션 브랜드 자라(ZARA)의 온·오프라인 통합 전략에 속절없이 무너졌고, 이들은 화려했던 시절과 이별했다.

던과 드렉슬러에 오버랩되는 이가 있다. 이마트에서만 30년 이상 일해 온 이갑수 전 대표다. 이 전 대표는 대형마트의 간판이 된 이마트의 지속성장을 이끌어 온 인물이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신임이 두터웠던 그가 지난달 21일 퇴임하자 창립이래 첫 적자에 대한 ‘문책성 인사’라는 해석이 많았다.

전통적 유통 강자 롯데그룹도 롯데쇼핑의 어닝쇼크로 예상보다 큰 폭의 인사가 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원준 유통BU장이 이동하면 주요 유통계열사 대표가 줄줄이 바뀌는 시나리오다.

이런 지경에 이른 것은 쿠팡의 공세에 승승장구하던 대형마트가 속절없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대형할인점의 죽음’까지 거론된다.

이런 인물·조직 쇄신으로 대형마트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베스트바이나 제이크루의 새 경영진은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우리가 특별히 잘못한 건 없었다. 어쩌다보니 무너지고 말았다’ ‘빨라진 고객 변화의 속도에 어떻게 대처할지 몰랐다’고 시인했다. 

탈레스 S. 테이셰이라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베스트바이, 제이크루, 컴캐스트가 몰락하고 아마존,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 신생 기업이 시장을 가로챈 비법은 ‘신기술이 아닌 고객’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디커플링’ 이론을 제시했다.

'디커플링'은 고객의 소비활동에 존재하는 연결고리(제품 탐색, 평가, 구매, 사용) 중 약한 고리를 끊고 들어가 그 지점을 장악하는 전략이다. 넷플릭스는 인터넷 연결과 접속 이후 여러과정 중 영상 시청하기 단계만을, 쿠팡은 구매와 배송 단계를, 배달의 민족은 배송을 집중 공략했다.

쿠팡은 로켓배송과 쿠팡맨을 앞세워 ‘쿠팡=총알 배송’이라는 공식을 만들고, 오프라인으로 향하던 고객들의 발걸음을 쿠팡앱으로 돌렸다. 마켓컬리는 새벽시간만을 공략해 또 다른 강자가 됐다. 고객이 원하는 지점을 정확하게 꿰뚫어본 결과다.

온라인 유통에 엄청난 IT기술은 없다. 쿠팡, 마켓컬리, 배달의민족, SSG, 롯데몰 할 것 없이 비슷비슷한 디지털 기술이 적용되고 있다. 경쟁력은 신기술에서 나오는게 아니란 얘기다. 쿠팡과 마켓컬리 등은 고객이 원하는 지점을 정확히 알고 공략했다는 점에서 테이셰이라 교수의 ‘디커플링’ 이론이 딱 들어맞는다.

 이마트가 쿠팡으로 대표되는 온라인 유통에 대응해 내놓은 것은 ‘초격차 가격전략’이다. 빠져나가는 고객을 붙잡는 데는 최저가만큼 드라마틱한 성과를 내는 건 없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이윤을 감소시키고 시장의 혼란만 초래한다는 결과는 이미 10여 년 전에 베스트바이가 입증했다.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은 매장을 운영해야하고 재고 관리도 책임져야하는데다 고용인원도 만만치 않아 비용 지출이 많다. 그런데도 ‘돈을 태우는’ 전략을 고수하는 건 ‘이것 말곤 아는 방법이 없다’는 뜻으로 들린다.

신세계나 롯데의 온라인 채널 운영 방식만 봐도 방향성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신세계그룹의 온라인 통합법인 SSG닷컴은 식품 등 오프라인 마트만의 강점을 살리지 못한 채 검색 조차도 꼬이기 일쑤다. 인터넷 쇼핑은 소비자들에게 일상으로 자리 잡았는데, 채널이 일상의 불편을 야기하고 있는 셈이다. 그나마 최근 들어 실패 검색어를 모아 서비스를 개선한다고 하니 이제야 좀 고객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나 싶다.

롯데는 더 답답하다. 무려 3조원을 들여 7개 쇼핑 계열사 온라인몰을 한 번에 이용할 수 있는 통합 플랫폼 ‘롯데원’ 앱을 구축한다고 한지 1년이 넘도록 실체가 보이지 않는다. 2020년을 목표 달성 지점으로 삼았다고는 하나 격변하는 온라인 시장이, 고객이 그대로 남아 기다려줄 지는 의문이다.

유통공룡 신세계와 롯데는 온라인사업 부진 얘기만 나오면 정부 규제 탓을 하거나 쿠팡도 손정의(소프트뱅크 회장)가 손을 떼면 어려워지지 않을까 은근슬쩍 기대하는 눈치다. 정부 규제가 해결되면 쿠팡을 이길 수 있나. 쿠팡이 폭망하면 이베이로 간 고객을 끌어올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이제는 신생기업들이 세상을 바꾼 공통의 패턴을 읽어야 한다. 그것은 분명 고객이 추구하는 가치에 있다. 기술 혁신보다 앞서 진화하는 시장의 본질과 변화하는 고객 욕구를 명확하게 읽는 것이 오프라인 유통이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다.


mypark@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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