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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소송' 첫 재판 앞둔 할머니들 "日, 법정나와라"

등록 2019.11.13 16:3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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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재판 앞두고 시민단체와 기자회견

"돈 때문 아냐…30년째 사과·배상 요구"

"위안부 합의 망령 걷어내는 계기돼야"

일본, 세차례 소송서류 반송…기각 주장

재판 늦어져 할머니들 별세…11명→5명

【서울=뉴시스】이윤청 기자 = 이용수 할머니가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변 대회의실에서 열린 '3년 만에 개시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일본정부 상대 손해배상청구 소송, 첫 변론기일을 맞는 피해자 및 시민사회 기자회견'에서 눈을 감고 있다. 2019.11.13.  radiohead@newsis.com

【서울=뉴시스】이윤청 기자 = 이용수 할머니가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변 대회의실에서 열린 '3년 만에 개시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일본정부 상대 손해배상청구 소송, 첫 변론기일을 맞는 피해자 및 시민사회 기자회견'에서 눈을 감고 있다. 2019.11.13.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윤희 기자, 류인선 수습기자 =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유족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피해배상 재판이 처음으로 열리는 13일, 피해 할머니들이 소송에 응하지 않고 있는 일본 정부를 향해 "당당하면 재판에 나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용수 할머니는 이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대회의실에서 열린 '위안부 피해자 일본정부 상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 첫 변론기일을 맞는 피해자 및 시민사회 기자회견'에 참석해 "일본은 당당하지 못한 것 아니냐"며 이같이 지적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세계가 다 아는 위안부 문제를 유네스코에 등재하기 바라고 일본은 방해하지 말고 협조해야한다"며 "대대로 학생들이 이 역사를 공부해야한다. 두 번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다"고 강조했다.

잠시 감정에 북받친 듯 발언을 멈췄다가는 "우리는 돈 때문이 아니다. 사죄와 배상을 요구한 것은 거의 30년이 됐다"고 했다.

함께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옥선 할머니도 "일본은 어째서 반성을 안 하느냐"며 "사죄를 하고 배상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길원옥 할머니도 동석했지만 별다른 발언은 하지 않았다.

고(故) 곽예남 할머니 등 21명은 지난 2016년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피해자들은 일본의 반인륜적 범죄를 기록으로 남기고 법적 책임을 명확히 밝히기 위해 소송을 택했다.

류광옥 '민변 일본군 위안부 문제 대응TF' 소속 변호사는 "피해자의 피해사실을 법정에서 드러내고, 불법 행위에 대한 책임을 드러내는 것이 핵심이다"며 "피고가 법적 책임을 지도록 입증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한경희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사무총장은 "일본 정부가 (위안부)행위를 부정하는 절정에는 2015년 한일 합의가 있다"며 "2015년 위안부 합의의 망령을 걷어내는 계기를 마련하고, 위안부 문제가 역사적 사실로 기록되는 재판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부장판사 유석동)는 이날 오후 5시부터 고(故) 곽예남 할머니 등 21명이 일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1차 변론기일을 연다.

민변 등에 따르면 이번 소송이 제기된 것은 지난 2016년 12월28일이지만, 피고인 일본 정부가 세 차례에 걸쳐 소송 서류를 반송하면서 3년 동안 재판이 열리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위안부 소송이 헤이그송달협약 13조 '자국의 안보 또는 주권을 침해하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한국 법원이 제기한 소장 접수 자체를 거부했다. 주권 국가는 타국 법정에서 재판받을 수 없다는 '주권면제' 원칙을 내세운 것이다.

법원은 2년 이상 외교부를 통해 소장 송달과 반송을 반복한 끝에 지난 3월8일 '공시송달'을 통해 일본 정부에 손해배상 소송 소장과 소송안내서 번역본을 전달키로 했다. 공시송달은 송달할 서류를 법원에 보관하고 취지만 상대에게 공고하는 방식이다.

이에 일본 정부는 지난 5월 주권면제 원칙을 내세우며 이번 소송이 각하돼야한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소송을 제기할 당시에는 살아있었던 피해자 상당수가 세상을 떠났다. 처음 소송이 제기될 때는 피해자 할머니 11명이 소송에 참여했으나 재판이 지연되는 동안 6분이 별세해 현재는 5분만 남아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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