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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거꾸로 가는 파생상품 활성화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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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11-20 11:2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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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정옥주 기자 = "몇몇 택시기사들이 과속과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냈다고 일반택시 운영 자체를 금지시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모범택시나 외국계 택시들만 길거리에 돌아다니게 될테고 일반 서민들은 버스나 지하철만 이용할 수 밖에 없게 되겠죠."

금융당국이 내놓은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보호를 위한 제도개선 종합방안'의 후폭풍이 거세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4일 은행과 보험사가 최대 원금손실 가능성이 20~30% 이상인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을 판매할 수 없도록 했다. 사모펀드 최소투자금액은 1억원에서 3억원으로 올렸다.

당초 예상보다 강도 높은 대책이 나오자 금융사들은 연일 실무진 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하느라 여념이 없다.

은행권에서 팔려나간 파생결합펀드(ELF·DLF) 및 신탁(ELT·DLT)의 총 판매잔액은 49조8000억원. 투자자수만 해도 86만명에 달한다.

업계에서는 당장 급감하는 수익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이번 조치로 소비자들의 선택권이 제한되고 궁극적으로 국내 자본시장 자체가 '후진'하게 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혁신금융' 기조 아래 규제 개선을 주창해온 온 이번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라고 한다.

"그야말로 은행들에게 '70년대 스타일'로 돌아가라는 거죠. 나름대로 IB(투자은행)산업, 펀드 등을 열심히 공부해온 은행원들이 선진화된 금융상품은 못 팔고 예·적금이나 정책상품만 다뤄야 한다는 얘긴데, 소비자들의 선택권은 물론, 전반적으로 국내 금융산업이 퇴행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토로한다.

기본적으로 금융시장에서 금융회사에 비해 소비자가 약자인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금융당국은 약자의 편을 우선적으로 들어줄 수 밖에 없다.

DLF 피해자들의 심정을 헤아려야 한다. 금융감독원장이 말했듯 DLF는 사기였고 선의의 피해자는 반드시 구제를 받아야 한다.

또 이번 DLF 사태는 금융당국 스스로가 불러온 참사로 볼 수 있다. 은행들은 수익과 실적에 눈이 멀어 원금 손실이 우려된다는 내부 경고에도 소비자들에게 판매를 강행했다. 판매 직원도 DLF의 리스크 등 관련 정보를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무분별하게 팔아치웠다. 금융당국은 현장 관리 감독에 소홀했다. 일부 은행들의 비양심적인 판매 행태와 금융당국의 안일함이 사태를 키운 것이지, 상품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는 얘기다.

따라서 금융사고가 발생했다고 아예 '싹' 자체를 말리기 보다는, 금융사에 대한 사후제재와 내부통제를 강화하고, 투자자 사전교육 등 선진 투자문화를 확립하는 것이 먼저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라는 한 의원의 평가처럼, 지나친 규제는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금융위는 "향후 2주일간 업계의 의견을 수렴해 최종 방안을 확정한다"고 했다. "지금이야 수익률이 낮아 문제지만, 만약 몇 달 후 'DLF 15~20% 수익 시대'라는 기사가 연일 신문지상을 장식하는 날이 온다면 그땐 당국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다"는 한 금융사 직원의 말 처럼, 업계와 피해자의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된 정책이 나오길 기대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channa224@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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