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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 대작 사건, 무지에서 비롯됐다?…진중권 '미학스캔들'

등록 2019.11.21 11: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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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 대작 사건, 무지에서 비롯됐다?…진중권 '미학스캔들'


[서울=뉴시스]임종명 기자 = "대중은 화가가 자기 그림을 남에게 대신 그리게 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수십년 전에 창작의 정상적인 방법으로 확립된 그 관행을 여전히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미학자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지난 2016년 불거진 가수 겸 화가인 조영남씨의 '그림 대작 사건'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

대작 사건은 조씨의 작품으로 알려진 것들이 온전히 본인이 그린 것이 아니라 한 무명화가의 선(先) 작업이 대부분을 차지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불거졌다.

조영남씨는 오랜 시간 그림을 그려왔고 개인전도 치를 정도였기 때문에 그를 화가로 바라보는 이들이 적잖았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화투 시리즈다. 조씨의 그림은 1점당 300만원에서 1200만원 선에서 유통됐을 정도라고 한다.

무명화가가 작품의 90% 정도를 그리면 조씨가 덧칠 등 10% 작업만 더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작품에는 조씨의 서명만 있었다. 구매자들은 항의했고 검찰은 조씨에게 사기죄, 저작권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조씨는 미술계 관행이라고 항변했지만 한국미술협회 등 다수 단체들은 조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재판 결과 1심은 유죄였으나 항소심에서는 무죄 판결이 나왔다. 검찰이 상고해 대법원의 판단이 남은 상태다.

진 교수는 당시 대작이 아닌 조씨의 작품으로 봐야한다는 목소리를 냈던 사람 중 한 명이다. 조씨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서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 교수는 이 사건에 대해 "현대미술에 대한 몰이해가 빚어낸 소극"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그 사건의 불편한 기억과 더불어 사건이 우리에게 던져준 교훈까지 흘려보내선 안 된다는 생각에서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그는 책을 통해 미켈란젤로, 루벤스, 렘브란트 등도 조씨의 사례처럼 조수에게 미술 작품의 기초를 맡겼고 이것은 르네상스 이래 서양미술의 전통이라고 전했다. 화가가 그림을 손수 그리는 친작(親作)의 관행은 19세기 이후 인상주의 시대에 보편화됐지만 20세기 초 현대미술에 일어난 '개념적 혁명' 이후에는 필수 요건으로 여기지지 않았다고도 설명했다.

진 교수는 자신이 조영남 대작 사건으로 불거진 사안에 끼어든 이유를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는 검찰이 무차별하게 예술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 위험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일부 언론에 의해 현대미술에 대한 오해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친작 숭배가 미래 예술의 상상력을 제한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그렇다고 진 교수가 미술사를 거론하면서 무조건적으로 조씨의 편을 드는 것만은 아니다.

진 교수는 "나는 조영남이 조수를 사용할 권리를 옹호했지, 그가 조수를 사용한 방식까지는 옹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작가와 조수 관계를 합리적으로 바꾸려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데, 조수 사용 자체를 불법처럼 몰아가고 검찰이 기소까지 하려한다면 이러한 논의 자체가 불가능해진다고 꼬집고 있다. 404쪽, 1만8900원.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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