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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밴드왜건 효과'와 ‘음원 사재기' 의혹

등록 2019.12.04 11:28:54수정 2019.12.04 13:4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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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밴드왜건 효과'와 ‘음원 사재기' 의혹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음원 사재기' 의혹도 가요계의 연례행사처럼 됐다. 때 되면 찾아온다. 그런데 이번은 좀 다르다. 가수가 다른 가수의 실명을 언급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그룹 '블락비' 멤버 박경이 지난달 24일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바이브처럼 송하예처럼 임재현처럼 전상근처럼 장덕철처럼 황인욱처럼 사재기 좀 하고 싶다"라고 썼다. 이후 가요계 곳곳에서 "나도 브로커로부터 음원 사재기 제안을 받았다", "누가 사재기를 했다고 들었다" 등의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박경이 거명한 가수들은 예상대로 법적대응을 했다. 박경 측도 맞대응하고 있다. 법정공방이 예고된다. 박경 발 포탄을 맞은 이들 중 가장 선배격인 보컬 듀오 '바이브'는 정부 기관과 음원 회사에 공개적으로 조사를 요청했다.

가요계는 이참에 약 10년 간 고질병처럼 똬리를 튼 음원 사재기 의혹을 뿌리 뽑자고 입을 모은다. 주기적으로 망령처럼 찾아오는 이 의혹에 의심하는 자든 의심 받는 자든 모두 피해자가 된다. 그간 음원 사재기 의혹은 정황, 의심만 있었다. 박경이 쏘아 올린 작은 공으로 실체가 밝혀질지 관심이다.

몇 년 새 가요계에 '음원 사재기' 의혹 못지 않은 논란을 일으킨 것은 소셜 미디어를 통한 '바이럴 마케팅'이다. 음원차트 1위에 올랐으나 인지도가 없는 터라 음원차트 조작 논란에 휩싸인 가수들이 이 마케팅의 수혜자라는 의심도 나온다. "사재기 편법에 불과하다", "거대 팬덤, 전통 미디어에 의지하지 않은 전략" 등 의견은 분분하다.

무엇이 맞든 가요계에 해를 끼치는 것이 맞다. 눈에 띄는 음악이 눈에 띄게 하려고 해서 눈에 띈 음악이라니···. 음원차트의 공정성이 불신을 받을 수밖에 없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이 부조리한 현상에 암묵적 공범이 있다는 얘기다. 대중과 언론이다. '밴드왜건 효과'의 실질적 사례다. 1950년 미국 서부개척 시대의 밴드왜건은 선두에 악대를 세웠다. 여기에 '금광이 발견됐다'고 외치면서 사람들을 마구 불러 모았다. 지금 한국 대중음악 시장에서 '음원차트 1위'는 '금광'이다.

인기곡이라고 해서 무조건 듣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면, 누군가는 굳이 사재기를 할 필요가 없었을 거다. '차트 싹쓸이' 등의 제목으로 쉽게 차트 기사를 쓰는 언론이 많지 않다면, 음원차트 1위곡에 굳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었을 거다.

한국은 '순위 매기기'의 나라다. 모든 이슈가 있다고 여겨지는 포털사이트만 봐도 안다.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순위가 그날 화젯거리가 된다. 네티즌은 그 실시간 검색어를 녹색창에 계속 입력하고, 언론은 그 검색어를 기반으로 하는 기사를 공장처럼 양산한다.
 
음원차트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실시간 차트 상위권에 들어야 주목도가 높아지고 언급이 된다. 그래야 인터넷 기사에 노출되고 방송 출연을 할 수 있다. 음원차트는 유명세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통한다. 음원 사재기 의혹은 무의식적으로 순위에 열광하는 우리 시대 민낯이다. 

음원 스트리밍 시대를 부정하지 않는다. 듣고 싶은 음악을 마음껏 듣게 해주고,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자유롭게 찾을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시내' '줄줄 흐르다' 등의 뜻을 가진 '스트림'의 원뜻처럼 그냥 음악을 흘러가는 것으로 바꿔 버렸다. 누군가는 소비하거나, 누군가는 그것에서 이득을 취하면 그만이다. 음악이 액세서리처럼 됐다.

이제 가요 관계자, 대중 모두 시내가 아닌 망망대해로 나갈 필요가 있다. 번거롭더라도 그곳에서 힘겹게 건져 올릴 음악을 소중하게 여겨 보자. 언제까지 작은 창에만 갇혀 세상의 모든 인기곡과 이슈를 파악하고 있다고 착각할 것인가. 사재기 의혹의 현상만 쫓을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만든 구조를 들여다보며 지혜를 모을 때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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