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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 한 놈(?)만 팬다...'원 포인트 그림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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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12-06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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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살아생전 단 1점의 그림밖에 팔지 못한 예술가, 동생 테오를 제외한 가족에게조차 외면당했던 불우한 빈센트 반 고흐.
그의 데생 작품 '슬픔'은 알고보면 더 슬퍼 보인다.

"그녀의 둥근 배와 부푼 젖가슴, 그리고 고개 숙인 슬픔에는 이런 사연이 있다. 슬픔을 강조하는 신체 부위는 또 있다. 그녀의 왼쪽 새끼발가락이다. 새끼발가락의 표정이 애처롭다. 생기다가 만 것 같다. 겨우 새끼발가락임을 증명해 주는 꼴이다. 이 새끼발가락에 그녀의 생이 압축되어 있는 것만 같다. 새끼발가락이 못생겨서 더 슬픈 여자! 그렇다. 내게 그녀는 새끼발가락 때문에 더 슬픈 여자다."(p.21)
 
새끼발가락이 못생겨서 더 슬픈 여자! 빈센트의 마지막 연인이었던 시엔의 새끼발가락에 집중한 저자때문에 고개를 푹 숙인 그녀의 몸을 훑어 발가락까지 향하게 한다. 엄지 발가락은 긴데, 새끼발가락은 형태가 뭉개져있다. 누드화로만 기억되는 '슬픔'의 반전이다.

화가와 모델로 만나 연인으로 발전한 빈센트와 시엔. 빈센트의 모델을 서 주던 당시 시엔은 서른세 살의 나이에 남자에게 버림받고도 모자라 어린 딸 외에 태중에 아이까지 있었다. 빈센트는 시엔을 진심 사랑했지만 집안의 반대에 무릎을 꿇고 만다. 고흐는 알았을까? 그녀의 슬픔이 새끼발가락에 오므려져 있다는 것을?
 
이 책 '원 포인트 그림감상'은 이 처럼 그림속 요소 딱 하나만 공략한다. 마치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배우 유오성(무대포 역)이 “난 한 놈만 팬다”라고 외치며 한 목표물(?)에만 돌진했듯이, ‘그림의 한 요소 패기’ 전략이다. 그렇게 하면 작품 전체 혹은 작가의 의도를 꿸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저자 정민영은 아트북스 대표이자 미술책 애독자, '기쁨을 아는 독자'로 25년째 책 만드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다시 책속으로. 아니 그림속으로...조선시대 춘화의 극치를 보여주는 혜원 신윤복의 작품으로 추정하는 '사시장춘'(p231)을 보자. 주인공 격인 남녀가 일절 신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신발의 포즈만으로 에로틱한 감정과 관음증을 극대화하는 의뭉스런 그림이다. 쪽마루에 신발 두켤레만 놓여있는, 노골적인 표현하나 없는데 에로티시즘의 진수로 평가받는다.

저자의 원포인트는 무엇일까?

"신발의 포즈에는 긴박한 상황이 담겨 있다. 두 켤레의 신발이 가지런하지 않다. 여자의 것은 가지런한 데 비해, 남자의 것은 한 짝이 비뚤게 놓여 있다. 이 흐트러진 포즈는 무얼 의미할까? 남자가 달뜬 것 같다. 마음이 앞선 나머지 신발을 반듯하게 모아두지 못하고 급하게 방으로 들어간 모양이다. 비뚤어진 왼쪽 신발 한 짝이 상황을 실감나게 증언한다. 게다가 기둥 쪽에 흐드러지게 핀 꽃이 ‘염화시중의 미소’처럼 방 안의 열기를 전한다. 만약 남녀의 신발이 ‘가지런하게’ 놓였다면 에로틱한 감정은 덜했을지 모른다. 비뚤어진 신발 한 짝은 ‘신의 한 수’다."(p.232~233)

이 쯤 읽으면 그야말로 '크아~' 소리가 절로 난다. 저자의 눈썰미에 탄복당한다.

'이 따위가 무슨 예술이야, 죄다 사기지', '미술은 어렵다?'는 독자들을 홀릴 만한 책이다.

'60개의 감상 포인트로 본 60점의 그림 이야기'가 담겼다. 천천히 보고 찬찬히 살펴보는 ‘슬로 감상’의 묘미를 선사한다. 

그림, 왜 봐야 할까? "작품은 관람자의 눈을 통해 감상당함으로써 비로소 생명을 얻기 때문이다. 감상하는 행위를 배제하면 작품은 생명을 잃은 하나의 사물에 불과하다. 감상은 작품에 관람자의 마음을 주고 전달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아, 물론 작품 감상에 정답이란 없다. 344쪽, 1만8000원, 아트북스


◎공감언론 뉴시스 hyu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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