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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승전복지]청일전자 '미쓰리'가 진짜 사장인 이유는 '국민연금'에 있다

등록 2019.12.14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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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전자 미쓰리서 오만복 사장 하루 아침에 사라져

도산위기시 월급 안챙겨주면 직원 국민연금도 '손해'

올 상반기 '나몰라라' 사장에 46만 노동자 노후 불안

정부 운영 '기여금 개별 납부제도' 이용시 피해 줄어

복지부, 5년이내 납부기한 올해 10년으로 늘릴 계획

직장 잃었을 때는 정부 '실업크레딧' 신청할 수 있어

임금삭감 통해 직원 월급 지킨 '미쓰리'가 진짜 사장

[서울=뉴시스]청일전자 미쓰리(사진=방송화면 캡처)

[서울=뉴시스]청일전자 미쓰리(사진=방송화면 캡처)

[세종=뉴시스] 임재희 기자 = 청소기 부품 납품업체 '청일전자' 직원들에게 월급은 '신기루'이자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었다. 하은우 과장(현봉식) 말마따나 "본 것 같은데 실체가 없어서"다. 생활비나 카드값으로 입금되자마자 이체되기에 손에 쥘 수 없는 신기루였다.

비유가 현실이 되는 데엔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이 월급 버러지들아"라는 오만복 사장(김응수)의 폭언을 듣고도 "월급날이라 참는다"던 그들은 월급이 들어오지 않자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급기야 자체 제작한 청소기를 중국에 수출하며 직원들에게 '월급 인상'과 '보너스'를 약속했던 오 사장은 사라지고 그의 지갑이 한강 근처에서 발견됐다. 직원들 사이에선 스멀스멀 불안이 싹 튼다. '월급, 받을 수 있을까?'

지난달 종영한 tvN 드라마 '청일전자 미쓰리'는 크게 보면 대기업 횡포 속에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중소기업들 이야기다.

이때 '갑질'에 맞서 '모래알' 청일전자 직원들을 하나로 똘똘 뭉치게 만든 원동력은 '월급'이었다.

사장이 실종된 상황에서도 중국서 돌아온 청소기라도 팔아보자며 전 직원이 나선 건 월급을 받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청소기 94대를 팔아 마련한 돈 2820만원과 사장이 숨겨놓은 5억원을 받자마자, 정산하면 1인당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 계산기부터 두드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업 TM의 견제와 밀려오는 어음 결제 날짜에 월급 마련은 난관에 부딪힌다.

결혼을 앞두고 발생한 회사 부도 위기에 파혼하게 된 김기남 대리(명인호)는 월세가 밀려 결혼 반지라도 팔아보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집주인을 피해 퇴근하기 일쑤다. 결국 월세 대신 140만원 상당 결혼 반지를 저당 잡힌다.

송영훈 차장(이화룡)은 월급이 끊기니 휴대전화가 울릴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 헤어진 아내로부터 날아오는 양육비 독촉 문자메시지 때문이다.

그런데 날아간 월급과 함께 사라진 건 월세나 양육비만은 아니다. 직장인들의 노후, 국민연금도 사라지고 있었다.

직장인의 경우 국민연금 보험료를 노동자와 회사가 절반씩 부담한다. 둘 중 어느 한쪽이 보험료를 내지 않으면 국민연금 가입 실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문제는 직장인이 낼 보험료가 월급에서 꼬박꼬박 빠져나가도 회사가, 사장이 보험료를 제 때 내지 않으면 국민연금 가입 기간도 줄어든다는 데 있다.

최소 10년(120개월) 보험료를 내야 노령연금을 받을 수 있는 국민연금 제도에서 가입 기간은 노후 소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국민연금은 가입 기간이 길수록 유리하고 장애연금이나 유족연금 등은 미납 기간이 3분의 1 이상이면 연금 수급에 제한이 있다.

결제일이 불과 2주 뒤로 다가온 4억원 상당 어음을 막고 대금 체불 미지급으로 공장 설비 가압류를 막느라 청일전자 직원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때, 국민연금 가입 기간도 꼬박꼬박 줄었던 셈이다.

직장인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 이런 피해를 보지 않도록 사회보험료 통합징수 기관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체납이 발생한 날로부터 3개월 뒤 체납사실통지서를 보내고 있다. 올해 들어 상반기에만 누적 45만9926명이 체납 사실을 뒤늦게 통지받았다.

열심히 일한 잘못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청일전자 직원들을 위한 제도로 '기여금 개별 납부' 제도가 있다.

노동자가 체납 기간 전체 연금 보험료의 절반인 자신의 기여금(나머지 절반은 사용자 부담분)을 납부하면 납입 기간의 2분의 1을 가입 기간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제도다. 나중에라도 사용자가 체납한 연금 보험료를 납부하거나 체납처분으로 징수되면 이자를 더해 돌려받을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현재 5년 이내인 납부기한을 올해 안으로 10년까지 늘릴 계획이다. 노동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직장을 잃었다면 '실업크레딧'을 신청할 수 있다.

국민연금 가입자나 가입자였던 구직급여 수급자 중 소득이 없는 기간 보험료의 75%를 정부와 국민연금·고용보험기금 등으로 지원해주는 제도(본인부담 25%)다. 구직급여 수급기간에 대해 1회당 3~8개월씩 평생동안 최대 1년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서울=뉴시스]이수지 기자 = tvN 수목드라마 '청일전자 미쓰리' 제16회 (사진= 피알제이 제공) 2019.11.15. suejeeq@newsis.com

[서울=뉴시스]이수지 기자 = tvN 수목드라마 '청일전자 미쓰리' 제16회 (사진= 피알제이 제공) 2019.11.15. [email protected]

국민연금 보험료를 체납당한 45만9926명 노동자와 달리, 청일전자 직원들에게는 이름도 없이 '미쓰리'라고 불리던 신임 사장 이선심(이혜리)이 있었다.

오만복 사장이 숨겨둔 5억원 수표에 "한사람당 얼추 4000만원씩 가져가자"는 직원들 사이에서, 이선심 사장은 "이 돈으로 부도를 막고 회사를 계속해보는 건 어떨까요?"라고 되물었다.

경리직원 '미쓰리'가 대표 '이선심'으로 인정받는 과정에서 타고난 능력이나 기발한 아이디어는 없었다. 청일전자 직원들이 정수기 물 교체나 커피 심부름시키던 미쓰리를 대표라고 부르기 시작한 건 이선심이 월급을 챙겨줄 때였다.

직접 지은 집까지 팔아 한 번에 압류를 푼 이는 오만복 사장이지만 그 전에 그는 중국 판로가 막히자 직원들을 두고 도망쳤다.

반면 "뒈지게 열심히 해봤자 알아주는 사람 하나도 없고 다들 자기 생각만 하는" 청일전자 직원들 때문에 "지치고 힘들어 죽겠다"면서도 이선심 사장은 청일전자를 두고 사라지지 않는다.

손수 밥을 짓고 생일인 직원의 미역국까지 끓인다. 계란말이는 냉정한 유진욱 부장(김상경)도 "다른 건 몰라도 계란말이 하나는 먹을 만하네"라며 칭찬할 정도다. 협력업체 사장들을 찾아가 어음 결제일을 미루고 손수 편지를 적어 감옥에 갈 위기에 처한 식당 할머니(박혜진)를 구해낸다.

이선심 사장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 직원들을 지켜냈다. 직원들에게 월급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대표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물었다.

경영 정상화를 위해 정리 해고를 요구하는 원청업체 동반성장팀장 차서원(박도준)에 맞서 직원들을 설득해 모은 '임금 삭감 동의서'를 내밀었다. 월급을 받을 수 있고 4대 보험도 체납하지 않으려는 가운데 경영을 효율화하기 위한 이선심 사장의 리더십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결국 정리할 사안을 묻는 TM전자 차서원 팀장에게 오만복 사장도 "나는 우리 회사 대표도 아니니까 회사는 미쓰리랑 얘기해요. 우리 회사 사장은 미쓰리니까"라며 웃었다.

오만복 사장이나 45만9926명에게 체납사실통지서를 받게 만든 우리 삶의 현실 속 많은 사장들보다 '말단경리 미쓰리'라 불리던 이선심이야말로 노후가 불안한 지금과 같은 시대에 가장 필요한 진짜 사장이 아닐까.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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