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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농부 뮤지션' 루시드폴 "반려견 위한 콘서트 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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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12-16 08:00:00
제주에서 귤농사 지으며 정규 9집 '너와 나' 발매
강아지 '보현'과 함께 만든 앨범...28~29일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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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루시드폴. (사진 = 안테나뮤직 제공) 2019.12.16 realpaper7@newsis.com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레몬은 아직 파래요. 요즘 (제주에서) 레몬 농사를 많이 하죠. 비닐에서 많이 하는데 저는 노지에서 하고 있어요. 생각보다 (익는 게) 늦네요. 하루 스케줄은 농번기랑 농한기랑 다른데, 농번기 기준으로 세 시 반에 일어나요. 먹을 것을 챙겨서 밭으로 가요. 집에서 20분 거리에요. 아홉시 반에서 열시 사이에 일을 끝내야 해요. 낮에는 너무 더워 일을 못하거든요."

 '농부 뮤지션'의 미국 대표가 제이슨 므라즈라면, 한국 대표는 루시드폴이다. 제주에서 사계절의 흐름을 따라 귤 농사를 짓는 루시드폴은 그런 마음으로 음악도 지어낸다.

2년 주기로 음반을 낼 때마다 만난 자리에서 자신이 정성스럽게 만들어낸 귤을 맛보게 해준다. 16일 발매하는 정규 9집 '너와 나'를 위해 최근 신사동 안테나뮤직에서 만난 자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음악처럼 음미할 수 있는 과즙이 가득 차 있다.

디지털 싱글이 수시로 쏟아지는 시대에 앨범 발매 주기 2년은 누군가에는 여유가 있어 보이는 시간. 하지만 농사일과 함께 365일 음악 프로세스를 돌리고 있는 루시드폴에게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다른 음악을 들어야 하고, 새로운 (컴퓨터 기능 확장용 소프트웨어인) 플러그인을 익혀야 하고, 그러려면 유튜브 강의를 들어야 하고, 외국 가서 자료도 가져와야 하고, 그러면 시간이 오히려 부족해요. 새로운 것을 배우는데 1년이 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곡을 쓰고 기타 연습도 해야 하고 녹음도 해야 하죠. 실제로는 빡빡한 터울이 되는 거예요. 2년 이라고 룰을 정한 것은 제게 자극이 되고 제 음악을 기다려주신 분들에게 최소한의 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이번 앨범의 특징은 루시드폴이 그의 반려견 '보현'과 함께 만든 앨범이라는 점이다. 반려견이 뮤지션과 대등한 위치에서 음악을 만드는 주체로 참여한, 대중가요 역사상 최초의 사례라는 점을 루시드폴과 소속사 안테나뮤직은 강조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개(犬)와 협업을 해서 앨범을 만들었다는 것이 단순 수식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12일 오후 6시에 미리 공개된 앨범 수록곡 '콜라비 콘체르토'를 들어본 사람은 그런 의문에 대한 답을 얻는다. 

'콜라비 콘체르토'에서 '콘체르토'는 협주곡이라는 뜻. 보현이 콜라비를 씹을 때 나는 소리를 채집해서 그래눌라 신테시스(granular synthesis)를 통해 템포와 음의 높낮이를 변주해 곡을 만들었다. 그래눌라 신테시스는 소리의 작은 단위부터 출발해 이를 배열, 가공, 조합해 다른 차원의 사운드를 만드는 디지털 음악합성 기법 중 하나를 가리킨다.

루시드폴은 "'콜라비 콘체르토'는 보현이 직접 연주하고, 넓은 범주의 의미에서 '작곡'까지 한 곡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저는 편곡을 한 거죠"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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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루시드폴. (사진 = 안테나뮤직 제공) 2019.12.16 realpaper7@newsis.com
"보현이가 야채를 먹을 때 나는 소리를 채집해서 조금 편곡을 한 뒤 그대로 앨범에 실었어요. 크레디트에 보현이 이름이 올라가 있기도 하고요. 그래서 보현이와 협업 앨범을 스페셜 앨범으로 내려는 계획을 바꿨어요. 아예 정규음반으로 내게 된 거죠. 반려견이 감상하기 위한 존재가 아닌 주체적으로 작품을 만든다는 느낌을 싣고 싶었거든요."

히든 트랙을 제외하고 12 트랙이 실린 앨범은 '너의 노래' '나의 노래' '너와 나의 노래'로 카테고리가 나뉜다.

'너의 노래'는 '보현이는 어떤 마음일까?'를 상상하면서 만든 노래들이다. '콜라비 콘체르토'가 여기에 포함된다. 그리고 '두근두근', '또 한 번의 크리스마스', '아이 윌 올웨이스 웨이트 포 유(I'll always wait for you)도 이 범주다. 이 세 곡에는 각각 차이(CHAI), 정승환, 미즈키가 피처링을 했는데 루시드폴은 세 명을 보현의 목소리를 대신하는 인터프리터로 명명했다.

'나의 노래'는 루시드폴의 마음을 대변하는 노래들이다. 타이틀곡인 '읽을 수 없는 책'을 비롯 '길 위' '불안의 밤' '뚜벅뚜벅 탐험대'가 있다 '너와 나의 노래'는 보현과 루시드폴을 둘러싼 것들이 영감을 준 연주곡들이다. '봄의 즉흥', '눈 오는 날의 동화', '산책갈까?', '너와 나'가 해당된다.

이 중 '산책갈까?'는 짖는 소리, 문을 긁은 소리 등 보현의 소리로 80%를 만들었다. 보현이 사진집도 함께 내는 루시드폴은 "사진으로 모습을 기록할 수 있겠지만 소리를 채집에서 여러가지 방식으로 기록해놓으면 마치 소리의 DNA를 영원히 매체에 남겨놓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루시드폴은 보현이의 저작권을 따로 관리할 수 있는 '보현이 통장'도 만들었다. "보현이가 직접 만들 수 없으니 대신 관리를 하고 있어요. 우리 어릴 때 부모님이 세뱃돈을 대신 맡아주시는 것 같은 우를 범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할 것"이라며 웃었다.

보현의 이름은 불교에서 실천의 상징인 보현보살에서 따왔다. 지금은 루시드폴의 부모님 집에 사는 또 다른 반려견 '문수'의 이름은 불교에서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에서 가져왔다. 문수는 루시드폴이 2009년 4집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 수록곡 '문수의 비밀'의 주인공이다. 이 곡을 소재로 한 그림책도 나올 예정이다.

이처럼 루시드폴의 반려견 사랑은 유명하다. 자신의 반려견뿐만 아니다. 조지 섀넌의 그림책 '손으로 말해요'의 번역료를 동네 유기견 보호소의 개들을 위한 사료를 사는데 모두 보태기도 했다. 

루시드폴의 일상의 시야가 넓어지는 만큼 음악의 범주도 넓어지고 있다. 농사를 짓다가 손가락을 다친 뒤 '모듈러 신스'(오실레이터, 필터, 엔벨로프 제너레이터, 앰프 따위처럼 각기 독특한 기능을 지닌 다수의 모듈들로 구성된 아날로그 신시사이저) 등을 사용하면서 작곡의 폭과 스케일, 사운드가 확장됐다. 이번에 보현이와 작업도 그런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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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루시드폴. (사진 = 안테나뮤직 제공) 2019.12.16 realpaper7@newsis.com
"음악의 스타일과 폭을 갈수록 넓혀가고 싶어요. 팔레트 위에 있는 색깔을 계속 늘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중요한 것은 제 음악의 길이 재미있고 갈수록 재미있기를 바라요. 오래 오래 음악을 하려면 가지고 있는 팔레트 색깔의 수를 늘려야죠."

스웨덴 작곡가 루드빅 심브렐리우스와 협업을 통해 완성된 '산책 갈까?'가 팔레트의 칸 수를 늘려준 대표적 곡이다. 산책을 떠날 때의 보현의 두근거리는 마음, 심장 소리가 킥 드럼 소리로 잘 표현됐다. "제주 목장의 새소리에서 시작해서 스위덴의 파도 소리까지 나와요."

루시드폴은 어느덧 데뷔 20주년을 넘겼다. 1998년 인디밴드 '미선이'로 데뷔, 2001년 첫 솔로 앨범 '루시드 폴'을 발표하며 이름을 알렸다. '오, 사랑'(2005) '국경의 밤'(2007) '레 미제라블'(2009) '아름다운 날들'(2011) '꽃은 말이 없다'(2013) 등 감성적인 멜로디와 서정적 노랫말로 '음유시인'이라 불리며 마니아를 양산했다.

그런데 루시드폴은 사실 공대생이다. 서울대학교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후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학대학원 생명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07년 스위스 화학회 고분자과학부문 최우수논문발표상을 수상하는 등 성과를 냈다.

루시드폴은 자신의 인생에 큰 세가지의 변곡점이 있었다고 돌아봤다. 미선이로 활약하던 인디 시절, 음악을 계속 할 것이냐 말 것이냐 고민을 하던 차에 안테나뮤직의 수장인 유희열를 알게 돼 그가 당시 속했던 토이뮤직과 계약하면서 오버 그라운드로 진출한 것이 첫 번째다. 두 번째는 연구자 생활을 그만두고 음악 전업자로 나섰을 때, 세 번째는 제주에 세 터전을 잡았을 때다.
 
루시드폴의 매번 결정에는 직관이 크게 작용했다. 소리에 대한 고민 역시 직관적인 것으로 수렴된다. 어쿠스틱한 기타를 중심으로 가공을 하지 않은 음악의 울림을 중요시했던 그는 지금 '소리의 음악'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보현이 소리를 앨범에 담은 것처럼 '나무들이 노래를 한다' 등이 예다. 그는 땅 속의 미생물을 소리로 바꾸려고 하는 작업을 누군가 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려주면서 다양한 사운드를 실험하는 '고요연구소'를 설립한 것도 그런 맥락에 있다고 했다. 루시드폴은 "연구원으로서 7년을 보냈는데 그 때의 삶과 같아요"라며 미소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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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루시드폴. (사진 = 안테나뮤직 제공) 2019.12.16 realpaper7@newsis.com
이번 앨범을 찬찬히 들으면서 떠올린 곡은 유희열이 2002년 내놓은 편집앨범 '어 워크 어라운드 더 코너(A Walk Around The Corner)'에 실련던 루시드폴의 '몽유도원'이다.

이 곡은 앰비언트 장르의 곡이다. 의식적인 음악 감상에 목적을 두지 않고, 환경의 일부로서 자연스럽게 청취하게 되는 음악을 가리킨다. 주변의, 둘러싼이라는 뜻처럼 공간감을 조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번 앨범에 실린 '산책갈까?'가 이런 풍의 곡인데 오래 전부터 루시드폴에게 잠재돼 있었던 셈이다. "예전 연구원 시절 스웨덴에서 스위스 취리히로 실험실을 옮겨온 뒤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앰비언트 음악을 하고 싶다고 했어요. 물 소리, 바람 소리를 채집하고 음악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죠."

그렇게 결국 루시드폴은 삶의 소리를 구현하고자 한다. 삶 자체가 음악적으로 발화하는 셈이다. 루시드폴은 "자연에서 듣는 소리 중 우리 귀를 아프게 하는 것은 없다"고 했다.

"날카로운 것이 없기 때문이죠. 제주에서 유유자적하며 살면 자연의 소리를 많이 들을 것 같은데 최근에 가장 많이 듣는 소리는 땅 파고 집 짓는 소리에요. 어디를 가나 공사를 하고 있죠. 그런 때 더 자연의 소리가 생각나요. 천둥소리가 굉음 같지만 귀를 아프게 하지 않거든요. 보현이를 매개로 적극적으로 자연의 소리를 찾는데 팔을 걷어 붙일 생각입니다. 이번 앨범은 제게 터닝포인트가 됐어요."

이명을 앓던 팬이 자신의 음악을 듣고 어느 순간부터 귀가 아프지 않다고 얘기해준 것을 잊지 못한다는 루시드폴은 뒷날 강아지들을 위한 콘서트를 열고 싶다고 했다. 이벤트성이 아니다. 반려견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진심이다. "사람의 기준에서 콘서트 준비를 생각하면 안 된다"고 했다.

"보현이가 음악을 좋아하고 있다고 100% 자신해요. 보현이가 음악을 들을 때 감정을 캐치하면 알죠. 편안해지거든요. 키스 재릿 음악을 들려주면 정말 편안해해요. 예전에 '약속할게'에 보현의 소리를 삽입한 적이 있었는 때 그 때는 들려주면 짖었거든요. 이번 앨범은 들려줘도 안 짖어요. 자신의 소리라는 걸 알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기술적인 작법으로 채우지 않고, 보이지 않지만 확연히 숨어 있는 음표들을 찾아 그것을 소리로 들려주는 루시드폴은 그런 음표를 찾아 떠나는 호기심 많은 '탐험대장'처럼 보인다.

루시드폴은 28일 오후 6시와 29일 오후 5시 연세대학교 백주년 기념관 콘서트홀에서 이번 앨범 발매를 기념하는 콘서트 '눈 오는 날의 동화'를 연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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