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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이분법 性 담론 넘어서다···연극 '후회하는 자들'

등록 2019.12.24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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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연극 '후회하는 자들'. (사진= 극단 산수유·이은경 제공) 2019.12.23. realpaper7@newsis.com

[서울=뉴시스] 연극 '후회하는 자들'. (사진= 극단 산수유·이은경 제공) 2019.12.23.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우리가 선택했다고 그 답안에 행복해할 수 있을까. 연극 '후회하는 자들'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위해 고른 선택지를 다시 포기함으로써, 좀 더 자신다워지기를 바라는 사람 이야기다.

극 중 주인공들은 생물학적 남성으로 태어났다. '미카엘'은 1994년 쉰 살의 늦은 나이에 성전환 수술을 했다. '올란도'는 1967년에 스웨덴 최초로 성전환 수술을 한 후 여성의 삶을 살다가 다시 재수술해 현재 남성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극 중 현재인 2008년. 60대가 된 이들은 서로 동일하게 가지고 있는 '후회', '성 정체성', '성적 재규정'과 관련된 주제를 마주하며 느낀 생각들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미카엘과 올란도에게 성전환 수술은 드디어 다른 세상으로 통할 것 같은, 번쩍 번쩍 빛나는 문이었다. 하지만 그 번지르르해 보이는 세상에서 두 사람은 다시 탈출하려 한다. 출구인 줄 알았던 곳은 사실 자신의 반사체에 불과했던 것이다. 

짐작으로만 엿본 저 건너 세상의 희망은 사실 신기루였던 셈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자신의 본질 그 자체. 올란도는 두 번의 크나큰 수술에 따른 고통을 감내하고, 자신을 향해 돌진하는 것을 택했다.

트랜스젠더를 통해 정체성에 대한 담론을 부각시킨다. 너무 다른 세계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관객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사실을 기반 삼은 이야기인 만큼  두 사람의 대화를 공유하다보면 어느새 공감대가 찾아온다.

미카엘과 올란도처럼 자신의 신체를 뒤바꿀 정도는 아니더라도 우리는 매분 매초 선택을 한다. 그리고 희망과 후회는 항상 공존한다. 그것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우리 존재 가치의 뿌리가 확실하지 않은 것을 새삼 절감한다.

[서울=뉴시스] 연극 '후회하는 자들'. (사진= 극단 산수유·이은경 제공) 2019.12.23. realpaper7@newsis.com

[서울=뉴시스] 연극 '후회하는 자들'. (사진= 극단 산수유·이은경 제공) 2019.12.23. [email protected]

스웨덴 극작가 겸 영화감독 마르쿠스 린딘의 데뷔작이다. 미카엘과 올란도가 다큐멘터리를 위해 인터뷰하는 것을 연극 자체로 만들었다. 그래서 두 사람의 담담한 대화에 귀 기울이다보면 이질감이 들지 않는다.

이번이 한국 초연으로 연출을 맡은 극단 산수유의 류주연 대표는 관객의 감정을 추동시키기보다 '바라보기의 미학'으로 이끈다. '알리바이 연대기'의 지춘성, '히스토리 보이즈'의 김용준이 각각 미카엘과 올란도를 연기했다. 두 배우 모두 캐릭터에 과도하게 몰입하기보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인간적 애정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따듯했다.  

연극은 이분법적인 성 구별에 대한 틀을, 여러 방면으로 깨려 한다. 그 시도가 관객의 고정관념을 뒤흔들어놓는다. 최근 대학로에서 불고 있는 흐름인 '젠더프리'를 넘어서는 성(性)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연극계에 성 담론을 넓힌 것만으로도 역을 해냈다.

극단 산수유와 두산아트센터가 공동기획했다. 25일까지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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