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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우왕좌왕' 기업은행 인사 원칙은 있는가

등록 2020.01.02 15: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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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우왕좌왕' 기업은행 인사 원칙은 있는가

[서울=뉴시스] 정옥주 기자 = '윤종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 유광열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 정은보 한미 방위비협상 수석대표, 최희남 한국투자공사 사장'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관료 출신이자 올해 차기 금융위원장, 한국수출입은행장을 거쳐 IBK기업은행장에 이르기까지 하마평에 나란히 이름을 올린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이 명단만 놓고서는 어느 공공기관 수장의 하마평인지조차 구분하기 어렵다. '내 사람'에게 적당한 자리를 내주는 '보은인사', '나눠먹기식 논공행상'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김도진 전 기업은행장이 지난달 27일 임기만료로 기은을 떠났지만, 후임인사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불과 한달여 전만 해도 정은보 대표가 가장 유력하단 소식이 들리더니, 2주전쯤엔 갑자기 반장식 전 청와대 일자리수석비서관이 차기 행장으로 내정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반 전 수석은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1분과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참여하는 등 현 정부와 인연이 깊다. 그런데 이번 주 들어서는 윤종원 전 수석으로 무게중심추가 옮겨진 분위기다.

통상 늦어도 현 행장의 임기만료 1~2주전 차기 행장 임명절차가 마무리된 관례를 감안하면, 상당히 이례적이다. 행장 공석 상태가 된 기업은행은 중소기업은행법에 따라 직무대행 체제에 돌입했다.

물론 기업은행이 직무대행 체제에 들어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지난 2007년 강권석 전 행장이 지병으로 별세하며 대행체재로 운영됐고, 2004년엔 김종창 전 행장이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으로 선임되며 대행된 적이 있다. 지난 2010년엔 임기를 마친 윤용로 전 행장이 후임 없이 퇴임하자 조준희 당시 전무가 직무대행을 맡기도 했다(이후 조 전무는 후임 행장이 됐다).

정부가 '낙하산 인사'를 앉히려다 여론에 부딪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지금과는 상황 자체가 다르다.

기업은행 내부적으로도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인사를 비롯한 내부 후속 인사가 '올스톱' 중이다. 올 한해 역시 경영환경이 녹록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지만, 고삐를 바짝 죄기는커녕 내부 혼란 수습에 우선하는 모습이다. 노조는 만약 청와대가 낙하산 인사를 강행할 경우 출근저지, 파업 등 투쟁 강도를 높여갈 것을 예고했다.

기업은행은 지난 1961년 설립 이후 정권 교체 때마다 줄곧 낙하산 논란에 시달렸다. 하지만 지난 2010년 조준희 전 행장을 시작으로 권선주·김도진 전 행장까지 3연속 내부출신 행장을 배출하며, 관치 금융의 고리를 끊어냈다.

특히 2013년 권 전 은행장이 최초의 '여성은행장'이란 타이틀을 쥐면서 기업은행에는 능력만 있다면 성별, 정권, 출신에 관계없이 은행장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움텄다.

물론 '외부영입'을 꼭 나쁘게 볼 것만은 아니다. 적재적소의 인사라면 외부인사도 조직에 새 바람과 혁신을 불러일으키는 방아쇠 역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보은 인사'라면 다르다. 더욱이 지난 10년간 안정적으로 질적, 외적인 성장을 거듭해온 기업은행에는 혼란만 키울 뿐이다.

더욱이 기업은행은 국책은행이긴 하나, 민간 기업이기도 하다. 경영능력이 아닌 친분이나 이해관계를 우선시하는 인사는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기업은행장 자리가 정권의 전리품이 되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현 정부는 '적폐 청산'을 기치로 내걸고 낙하산과 보은 인사를 강력 비판해 왔다. 지난 2013년 국회 정무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박근혜 정부가 기업은행장으로 기획재정부 출신을 내정하자 '관치는 독극물이고 발암물질'이라고까지 했었다. 외부 인사든 내부 인사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적어도 인사 원칙은 일관돼야 조직이 멍들지 않는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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