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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코 배상'은 금감원 무리수?…은행권, 분조위 수용 사실상 거부

등록 2020.03.06 18:5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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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 배임 고민에 줄줄이 불수용

DLF 중징계 앞두고 우리은행만 배상

"잘못 바로잡아야" vs "안정성 해쳐"

공대위, 배상 소극적인 은행에 반발

[서울=뉴시스]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23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소비자보호 강화 및 혁신지원을 위한 조직개편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금융감독원 제공) 2020.01.23.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지난달 23일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에서 소비자보호 강화 및 혁신지원을 위한 조직개편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금융감독원 제공) 2020.01.23.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박은비 기자 = 10년이 지난 키코(KIKO) 사태를 은행이 책임져야 한다고 본 금융감독원 판단은 윤석헌 금감원장의 무리수였을까. 금감원이 제시한 분쟁조정안을 받아든 은행들이 고심 끝에 불수용 입장을 밝히거나 결정을 유보하고 있다.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로 제재절차가 진행된 우리은행과 하나은행만 금감원의 눈치를 봤을 뿐이다. 우리은행은 마지막 제재심의위원회가 열리기 직전 배상을 결정했고, 하나은행은 수락 여부를 정하기도 전에 추가 협의체에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6일 금감원에 따르면 분쟁조정조정국은 분쟁조정안 수락 여부를 결정할 시간을 더 달라고 요청한 신한·하나·대구은행을 대상으로 기간을 연장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다. 요청이 받아들여지면 세번째 연장이다.

관련 은행들이 수용·불수용·보류 등 다른 선택지를 든 까닭은 배임 소지 때문이다. 씨티은행이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설명한 내용에 은행들의 고민이 잘 드러나있다.

씨티은행은 전날 "분조위의 일성하이스코에 대한 배상 권고는 수락하지 않기로 했다"면서도 "법원 판결을 받지 않은 기업 중 금감원이 제시한 일부 기업에 대해서는 사실관계를 검토해 법원 판결에 비춰 보상이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그에 합당한 보상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이 은행은 '배상'과 '보상' 개념을 구분했는데, 배상은 불법적 행위로 발생한 손해를 책임지는 것이고 보상은 합법적 행위로 생긴 손실을 갚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2013년 대법원 판결을 토대로 봤을 때 키코 상품이 불법행위에 기초한 배상 대상은 아니라고 잠정 결론내린 것으로 보인다.

또 법원 판결을 받지 않은 기업을 대상으로 구제 여지를 열어뒀지만, 금감원이 권고한 추가 배상 협의체에 참여하는 건 별개의 문제다. 현재 하나은행만 확실한 참여 의사를 밝힌 상태다.

이 때문에 윤 원장이 '소비자 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다 은행에 배임을 강요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불공정행위가 아니라고 본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온 사안에 대해 불완전판매 부분만 따로 떼서 보겠다고 한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피해를 주장하는 기업에 대해 배상한 뒤 각 주주가 은행에 배임 문제를 제기하더라도 금감원은 책임이 없다.

윤 원장을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시효가 지났더라도 과거의 잘못된 문제는 바로잡고 가는 게 시장 발전을 위해 도움이 된다"고 본다. 반대 입장에서는 "대법원 확정 판결이 있는 사안에 다시 문제 제기를 하는 건 사법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인지 궁금하다"며 "원칙 없이 법적 안정성을 해칠 수 있는 선례를 만든 건 윤 원장이 강조하는 소비자 보호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은행의 불완전판매가 인정되는 경우에는 배상액을 당초 지급해야 했던 건이라 배임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피해를 주장하는 기업들은 분쟁조정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은행을 대상으로 민사 소송에 나설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취지의 소송에서 패소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만큼 금감원 분조위 결정보다 유리한 법원 판단을 받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키코공동대책위원회는 이날 '씨티은행과 산업은행의 금감원 권고 정면거부를 규탄한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고 "금감원은 은행들을 사기죄로 검찰에 고발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씨티은행은 자본을 전환해 주식으로 가져갔음에도 일성하이스코에 대해 부채탕감을 했으므로 보상을 다했다는 기만적 사실왜곡은 엄중한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며 "산업은행의 설명의무 위반에 대한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국책은행으로써의 본분을 망각한 책임 회피도 국민적 지탄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키코는 미리 정한 범위 안에서 환율이 움직이면 기업이 환차익을 얻지만 반대의 경우 손해를 떠안도록 설계된 상품이다. 환율 하락을 예상하고 계약을 했던 중소기업들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환율이 급등하자 막대한 손실을 입고 줄도산했다.

이들 기업은 키코 상품의 불공정성을 지적하며 판매 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지난 2013년 불공정행위가 아니라고 최종 결론내렸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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