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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기괴한 색채로 현실 확대…한태숙 '대신목자'

등록 2020.03.08 10:5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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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연극 '대신목자'. (사진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2020.03.07. realpaper7@newsis.com

[서울=뉴시스] 연극 '대신목자'. (사진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2020.03.07.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극단 물리를 이끄는 한태숙 연출의 신작 '대신목자'는 검퍼렇다. 동물원을 탈출한 늑대와 그 늑대를 돌봐온 사육사의 이야기다. 늑대와 사육사는 검은빛을 띠면서 퍼렇기도 한 외로움을 앓고 있다. 암흑 속에서 빛을 찾을 수 없다. 

그 외로움을 촉발시킨 근원은 '버림'이다. 사육사 '유재'는 어릴 때 가난한 엄마로부터 산속에 버려진 기억이 있다. 죄책감에 돌아온 엄마가 내내 한 자리에 있었던 그를 다시 데리고 갔다. 하지만 원점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둘 사이에는 거리가 생겼고 트라우마까지 합세했다.

동물원에 딸린 사옥, 정확히 말하면 동물원이 들어서기 전부터 떠돌이들이 살아가던 공간에서 사육사와 엄마는 같이 산다. 하지만 마음은 각자 떨어져 있다. 엄마는 키우고 있는 개 '목자'와 동네의 수리공에게 애정을 갈구한다. 동물에 대한 애정이 큰 사육사는 집에 오면 목자에게 신경도 쓰지 않는다.   

사육사가 돌보던 늑대는 자신의 새끼를 물어뜯어 죽였다. 우리에 손을 내민 아이의 손도 다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사육사는 그 늑대를 미워할 수 없다. 사육사는 그 늑대에게서 엄마를 본다.  

아이를 다치게 만든 늑대 사건을 조사하는 경찰 수사관도 외로워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경찰대 출신의 엘리트지만, 주류와는 거리가 멀다.

한 연출이 극작까지 맡은 이 연극은 그녀의 작품답게 기묘한 의식 같다. 이번 '대신 목자'는 세상에서 내동댕이쳐진 이들이 자신들의 방식으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에 대한 제사처럼 보인다.

보통 한 연출의 작품에는 그로테스크한 정서가 배어 있다. '오이디푸스' 같은 신화, '레이디 맥베스'처럼 고전을 재해석한 작품에는 물론 근현대적인 '세일즈맨의 죽음'에도 기괴한 분위기가 흐른다.

이를 통해 인간의 내면에 똬리를 튼 어두운 정서를 극에도 끼워 넣는다. 밝음과 어두움의 경계를 흩트리는 한 연출식 장기다. 모호하고 희미한 것에 대해 더 생각할 여지를 준다.

[서울=뉴시스] 연극 '대신목자'. (사진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2020.03.07. realpaper7@newsis.com

[서울=뉴시스] 연극 '대신목자'. (사진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2020.03.07. [email protected]

'대신목자'의 기괴한 색채는 인간성 상실로 보인다. 극 막바지에 늑대는 죽고, 사육사는 사라진다. 산속에서 그를 봤다는 말만 떠돌뿐 실체는 불분명하다. 엄마는 동물원에서 사육사를 기다린다. 수사관도 그 주변을 맴돈다. 우리는 인간을 제대로 마주할 수 없다. 그 주변부만 뱅뱅 돌 뿐이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는 뭉근한 희망이 보인다. 사육사는 자연 속에 들어가버린 듯하다. 마치 자연과 합일을 바라는 것처럼.

배우들 호연이 극의 완성도를 높였다. 전박찬이 연기한 사육사의 눈과 표정은 세상의 모든 슬픔을 떠안은 듯 하염없이 무너진다. 한 연출 작품에서 강한 여성을 전담하는 수사관 역의 서이숙은 좀 더 다층적인 캐릭터를 보여준다. 사육사 모친 역의 성여진은 우리 사회의 광포함이 한 인간에게 어떤 광기를 전염시키는지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대신목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 지원사업 '2019 공연예술창작산실–올해의신작' 중 하나다. 8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한다. 애초 15일까지 공연 예정이었으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로 인해 공연 기간이 축소됐다. 지난 6일 개막했으니, 이런 작품이 단 3일만 공연한다는 사실이 아쉽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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